[홍대스트리트북스] 계절의 틈에서 나를 세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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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디자이너 강은영]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

장마가 코앞인데 새삼 봄이 아쉬워 봄을 봄이라 부르지 못한 채 지낸 몇 해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 역시 봄꽃 한 송이 제대로 보지 못했다니. 계절을 계절답게 느껴본 지가 언제더라. 새해 다짐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계절은 매년 어김없이 바뀌고 나는 늘 그 안에서 바쁘게만 움직였다. 벚꽃이 피었다는 소식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속에서 지나가고 장마는 뉴스 속 강수 확률로 흘러갔다. 삶이 바빠질수록 계절을 살고 있다는 감각마저 잃고 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보이는 절기가 오늘따라 눈에 띈다.

태양이 궤도에 따라 움직이는 각도에 맞추어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 해서 계절을 구분한 것이 이십사절기다.

입춘에는 문을 활짝 열어 봄기운을 들이고, 우수에는 내려앉았던 기운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경칩이 오면 책상 위 작은 화분을 쓰다듬고, 청명이 오면 창밖을 오래 바라본다.

달력을 넘기듯 절기를 따라 읽다 보면, 삶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절기서당>은 절기 안에서 몸과 마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절기보다 더 깊이 다가오는 건, 절기를 살아낸 두 저자의 태도다. 그들은 단순히 설명하지 않고, 매 순간을 자기 몸으로 통과해 기록했다.

계절마다 다른 깨달음을 적어 가며, 두 사람은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했고, 그 배움을 글로 엮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아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 얼핏 계절의 시작이니 들 입(入)을 쓰겠거니 생각하지만 ‘설 립(立)’을 쓴다. 계절이 우리에게 오는 게(入) 아니라 우리 안의 계절을 찾아서 세우는(立) 과정이다.

소만에는 농부가 씨를 뿌린 후, 가뭄 속에서도 물을 지고 논두렁을 걷듯, 때로 우리도 묵묵히 견뎌야 할 시기가 있다. 그저 참고 지나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질문한다.

15일마다 바뀌는 절기를 따라 자신 마음을 점검하는 데 이만한 길잡이가 또 있을까. 우리 마음에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있음을 일깨운다.

절기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절기 속에서 스스로를 기다릴 수 있다. 절기란 스스로 리듬을 되찾는 공부다.

어쩌면 지금 내 안의 계절은 어떤 모습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점이 아닐까.

|강은영. 표1 보다 표4를 좋아하는 북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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