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며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현 가능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동시에 친환경 에너지 국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태양광 발전소, 원자력 발전 등 다양한 정책과 기술을 가져야겠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에너지 자립 마을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은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재생에너지 기술을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실험실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 성공 사례를 분석하면 에너지 자립 마을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첫 번째는 태양광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지역의 일조량과 기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태양광 중심 모델의 대표 사례로 이곳이 독일 내에서 가장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특성을 간파했다. 이 도시의 슐리어베르크(Schlierberg) 태양광 주택단지는 건물 자체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최적 각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돼 주민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지역에 판매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등 일조량이 풍부한 남부 지역에서 이러한 모델을 적극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순환형 에너지 모델로,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부산물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접근법이다.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Burlington)이 바이오매스 활용 모델 선두주자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목재와 시민이 버린 가구까지 모두 연료로 활용한다. 별도의 벌목 없이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환경 보호와 에너지 생산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나 경상북도 같은 산림 자원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임업 부산물과 농업 폐기물을 활용한 바이오매스 발전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복합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통합형 모델로, 다양한 친환경 기술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방식이다.
영국 베드제드(BedZED)가 대표적인 복합형 모델이다. 태양광과 태양열, 자연 통풍 시스템을 결합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다. 건물 배치와 교통 시스템까지 친환경적으로 설계해 주민이 자연스럽게 환경친화적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 수도권이나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 근교에서는 복합형 모델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모델의 공통점은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최적화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남 공주를 시작으로 진도, 홍성, 홍천 등 전국 곳곳에서 에너지 자립 마을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농업 중심 지역에서 소규모 실험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들의 성공 경험이 축적되면서 도시 근교와 산업 단지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태양광 패널과 농업을 결합한 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농가 소득 증대와 에너지 생산을 동시에 실현하는 혁신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제주도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우리나라 에너지 자립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연중 강한 바람과 높은 일조량이라는 천혜 자연조건을 갖춘 제주는 이미 재생에너지 비중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더욱이 육지와 분리된 섬이라는 특성상 에너지 수급 불안정 문제를 겪어왔던 만큼, 에너지 자립에 대한 절실함이 다른 지역보다 클 수밖에 없다.
서해안은 해상풍력 발전의 골든벨트로 불릴 만하다. 인천부터 충남 태안, 전북 군산에 이르는 서해안은 수심이 얕아 건설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계절풍 영향으로 안정적인 바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중의 장점을 지녔다. 특히 이 지역은 대규모 산업단지와 인접해 생산된 전력의 즉시 소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핵심 기술 부문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태양광 시장만 봐도 중국산 제품이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한다. 국제 정세 변화나 공급망 교란 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풍력 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터빈 블레이드부터 기어박스, 발전기에 이르기까지 핵심 부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한 에너지 독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기회도 남아 있다. 해상풍력은 거친 해양 환경을 견뎌야 하는데, 바로 이 부유식 터빈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도 초기 단계에 있다. 우리가 선점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겠다.
농촌에서 시작된 변화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도시로 확산이 필수적이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는 우리나라에서 농촌만의 변화로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건설되는 신도시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태양광 패널 설치나 지역 냉난방 시스템 도입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 희망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계 동참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 소비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마을이 에너지 자립을 달성해도 국가 차원의 탄소 중립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를 공급업체에까지 확대하면서, 우리 제조업체에게도 친환경 전력 사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새 정부는 이미 수립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문가와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현재 수준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현실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실행 가능한 정책을 통해 마을 단위의 작은 성공들이 모여 국가 차원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
|심준규.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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