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방사능 흙’ 후쿠시마 밖으로… 시민단체 “무책임한 확산”

포인트경제

[포인트경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거한 제염토 일부를 도쿄 소재 일본 총리실 건물 부지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 중이다. 방사능 농도가 낮은 흙을 공공사업 등에 사용하는 ‘재생 이용’ 정책의 첫 공식 사례가 될 전망으로, 정부는 이를 계기로 전국적 활용 확대를 노리고 있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원전 주변에서 대량 수거된 제염토는 현재 후쿠시마현 오쿠마마치(福島県 大熊町)와 후타바마치(双葉町)에 걸쳐 있는 중간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일본 정부는 2045년 3월까지 이 토양을 현 외 지역에서 최종 처분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안고 있다.

그러나 보관량은 약 1400만㎥(도쿄돔 11개 분량)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4분의 3은 일정 기준을 충족할 경우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환경성은 방사성 세슘 농도가 킬로그램당 8000베크렐 이하인 흙에 한해 사용을 허용하며, 이 경우에도 일반 주민의 연간 추가 피폭량이 1mSv(밀리시버트)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정했다.

‘방사능 흙’ 총리실 정원으로… 일본 정부, 제염토 재이용의 상징 사례로 활용 추진 중/NHK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방사능 흙’ 총리실 정원으로… 일본 정부, 제염토 재이용의 상징 사례로 활용 추진 중/NHK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이번 시범 적용은 일본 총리실 정원이나 화단 등에 소량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정부는 ‘국가가 선도적으로 나서 이해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관방장관과 복구 담당상 등 주요 각료들은 관련 회의에서 정보 공개와 국민 신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처 차원의 적극적 홍보를 지시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시범 사례를 여름까지 확정하고, 향후 5년간의 구체적인 활용 로드맵도 마련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재생 이용지 견학 프로그램 확대, 최종 처분장 후보지 선정 절차의 구체화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일본 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강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영리 단체인 원자력시민위원회는 올해 초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가 방사성 오염토를 사실상 일반 토사처럼 전국에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법적 절차 없이 진행되는 매립형 처분은 실질적 최종처분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환경성이 규제자이자 사업 주체라는 점에 주목하며, 이해충돌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방사능 확산에 반대하는 모임은 도쿄 신주쿠의 ‘신주쿠교엔’에서 제염토를 활용하려는 계획에 대해 “이 지역은 침수 피해 이력이 있음에도 환경성이 단순히 ‘덮개를 씌우면 안전하다’는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상대로 해당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문을 전달하기도 했다.

도쿄 및 사이타마 지역의 주민 단체들도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주쿠교엔에 방사능 오염토를 반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모임”은 설명회 개최와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지방정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가 “사전 동의 없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일본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대학 이토나가 코우지(糸永 浩司) 교수는 과거 후쿠시마현 이이다테무라에서 시행된 실증 사업에 대해 “주민에게 고통스러운 결정을 강요한 것은 민주국가로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염토의 재생 이용은 “농민과 농지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표현했다.

교토대 전 조교수 이마나카 테츠지(今中 哲二)는 “오염토는 어디까지나 도쿄전력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사안”이라며, “30년 내에 최종 처분을 완료한다는 정부 계획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최소 100년 단위로 계획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NHK가 지난 4월 전국 47개 도도부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단 한 곳도 ‘조건부 수용’을 포함해 재생 이용이나 최종 처분을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하지 않았다. 지자체들은 수용 거부 사유로 ‘풍문 피해’, ‘방사능 불안’, ‘농림수산업 및 관광산업과의 충돌’ 등을 언급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실 부지 활용을 통해 국민의 이해를 끌어내겠다는 계획이지만, 일반 시민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방사선량 측정 및 결과 공개 등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이용 논란” 후쿠시마 오염토가 쌓인 중간저장시설 전경/NHK 보도분 캡쳐(포인트경제)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호타카 토쿠오(保高 徹生) 부소장은 “지자체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며 “2045년이라는 기한은 멀어 보이지만, 지역 합의와 입지 선정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 주도는 출발선을 넘었지만, 그 길이 사회적 공감과 지역 신뢰를 확보하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Copyright ⓒ 포인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이슈]‘방사능 흙’ 후쿠시마 밖으로… 시민단체 “무책임한 확산”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