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50대 여성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진의 안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반복되는 가운데,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된 보호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일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흉기를 휘둘러 정신의학과 교수를 다치게 한 50대 여성 A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전날 신촌세브란스병원 5층 진료실에서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휘둘러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다. 피해 교수는 얼굴과 손 등에 부상을 입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2월에는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중이던 고(故)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과 의료기관 종사자의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회는 2019년 4월 이른바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를 입힌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병원에는 보안전담인력을 1명 이상 배치하고, 정신의료기관의 비상경보장치(비상벨)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의료진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에도 진료 현장에서의 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8월에는 부산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퇴원 권고에 불만을 품은 입원 환자가 원장을 흉기로 살해하는가 하면, 2022년 6월에는 경기 용인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70대 남성이 응급실 의사를 흉기로 공격해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처럼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피습 사건이 반복되자 의료계에서는 현행 보호대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보다 근본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의료진에 대한 폭력은 해당 의료인뿐 아니라 다른 의료진과 환자, 나아가 국민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의료기관 내 흉기 반입과 폭력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의료기관의 안전관리 책임을 개별 병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료기관의 안전관리 책임을 개별 병원에만 전가하지 말고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피해 의료진의 신체적 치료뿐 아니라 심리적 회복과 법률적 대응까지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역시 성명을 통해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는 사후처벌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의료진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안전관리 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의료진 개인의 신체와 생명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상적인 진료를 중단시키고 다른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까지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흉기범죄는 사후처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현행 의료인 폭행 방지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한 출입통제와 위험 상황 대응체계, 신속한 경찰 출동 및 의료진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정부는 의료진에게 환자의 생명을 지킬 책임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의료진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받지 않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보호대책이 실질적인 안전 확보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의료법 개정으로 정신의료기관에 비상벨을 설치하도록 했지만, 개인 의원의 경우 비용 부담만 커질 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세원법’은 특정 장비나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데 집중돼 있다”며 “의료진이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진료할 경우 다른 환자들에게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료진을 대상을 한 폭력을 의사와 환자 간 개인적인 문제로만 바라보는 인식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의료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신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홍보이사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는 모든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급성기 증성이 악화된 환자의 경우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병상 부족이나 ‘정신건강복지법상’ 입원 요건 등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시스템 전반을 되돌아보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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