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오는 4일 ‘점자의 날’을 앞둔 가운데, 시각장애인들이 의약품에 표시된 점자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의약품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의약품에 점자 표시가 의무화됐지만, 점자의 위치나 표시 방식 등으로 인해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24년 7월 시행된 개정 ‘약사법’에 따라 시각‧청각 장애인이 의약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일부 의약품의 용기와 포장에는 제품명 등을 점자와 음성‧수어영상변환용 코드로 표시해야 한다. 의무표시 대상은 완제의약품 28종과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안전상비의약품 11종 등 총 39종이다.
◇ 있어도 읽을 수 없는 점자… 포장에 가려진 정보
의약품 점자 표시가 의무화 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시각장애인이 정확한 의약품 정보를 확인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점자가 비닐 형태의 포장재에 가려져 손끝으로 정확히 읽기 어렵거나, 음성‧수어변환용 코드의 위치를 알려주는 양각테두리가 없어 코드 자체를 찾기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발표한 ‘2026년 의약품 점자 및 접근성 코드 표시 실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가운데 시각장애인 조사원이 실제 구매할 수 있었던 의약품은 34종이었다.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3종과 시중에 재고가 없어 구매하지 못한 2종은 조사에서 제외됐다.
구매 가능한 34종 가운데 △점자 △양각테두리 △접근성 코드 △연결코드 등 접근성 요소를 모두 충족한 제품은 58.8%(20종)에 그쳤다. 나머지 14종은 일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으며, 이 가운데 점자와 코드가 모두 표시되지 않은 제품도 7종에 달했다.
세부 평가에서도 한계가 드러났다. 12개 지표를 5점 만점으로 평가한 결과, ‘점자 판독성’은 평균 3.51점, ‘점자 위치’는 3.49점에 머물렀다. 코드의 경우 관련 의약품에 표시돼 있더라도 양각테두리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코드의 위치를 찾기 어려운 사례가 다수 확인되면서 평균 2.76점에 그쳤다.
특히 진통소염제 ‘제일쿨파프’는 점자가 표시돼 있음에도 비닐이 겹겹으로 포장돼 있어 손끝으로 점자를 인식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해당 모니터링에 조사원으로 참여한 김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점역팀 교정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의약품 포장지와 용기의 재질이 다양하다 보니 점자가 표시돼 있어도 불편한 사례가 있었다”며 “비닐로 포장돼 있거나 포장지 자체가 비닐 재질인 경우 현실적으로 점자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실리콘과 같은 재질을 제품 위에 뿌린 뒤 굳혀 점자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유통 과정에서 떨어지는 사례가 있다”며 “의약품 용기에 점자로 표시되는 정보는 사실상 제품명 정도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복약정보 등을 QR코드에 담아 함께 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이 카메라로 QR코드를 인식하려면 우선 코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위치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며 “QR코드를 인식하더라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거나 정보에 접근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경로가 복잡해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을 보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점자 표시 의무 의약품 0.1%에 불과… “처방의약품도 확대돼야”
점자 표시의 실효성뿐 아니라 의무표시 대상 자체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국내 허가‧신고된 전문의약품은 약 2만7,000개, 일반의약품은 약 8,600개로 총 3만5,000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점자 표시가 의무화된 의약품은 39개로, 전체의 약 0.1% 수준에 불과하다.
의무표시 대상 품목을 살펴보면 비슷한 종류의 제품이 여러 개 포함돼 있다. △프렌즈아이드롭 △리프레쉬플러스 △코솝 △알파간피 △크라비트 등 점안액이 5종이며, △신신파스아렉스 △케토톱플라스타 △케펜텍플라스타 △제일쿨파프 등 붙이는 형태의 외용제도 4종이다. 점자 표시가 의무화 된 의약품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비슷한 종류의 제품이 여러 개 포함돼 있어, 시각장애인이 다양한 의약품 정보를 점자로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정한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책국장은 "점자 표시가 의무화 된 의약품은 39개에 불과한데, 그 안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제품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에서 처방받는 의약품도 어떤 약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처방의약품을 포함해 점자 표시 의무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의약품을 사용하다 보면 종이 박스는 헤지거나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알약이 들어 있는 1차 포장에도 점자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알약의 경우 일회용이 아닌 일정 기간 보관하며 사용하는 통 형태는 용기 자체에 점자 표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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