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삼성전자가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글로벌 테크 기업 최초로, 숫자만 보면 대기록이다. 하지만 사업부문별 성적표만 떼어 보면 뼈 아프다.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공급 부족이 반도체 사업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지만 이로 인한 반도체 부품 가격 상승은 스마트폰 등 완제품 사업의 수익성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 안에서 메모리 호황의 수혜와 부담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 실적은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매출로 연결하고 있다는 신호다. 동시에 반도체에 대한 이익 의존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앞으로의 평가 기준은 최대 실적 경신 여부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고객 기반 △파운드리의 수익성 △완제품의 원가 대응력으로 넓어질 전망이다.
◇반도체가 사실상 전사 이익 책임졌다…호실적 속 집중 위험
29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3분기 매출은 195조3000억원, 영업이익은 107조4000억원이다.
이 중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의 영업이익은 106조5000억원으로 전사 영업이익의 약 99%에 달했다. 반면 스마트폰·TV·가전 등을 담당하는 DX부문은 8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사업 규모의 차이를 넘어 이익 구조의 무게중심이 반도체로 쏠렸다는 의미다. 여러 사업을 보유하더라도 수익원이 특정 업황에 집중되면 사업 다각화의 완충 효과는 약해진다. 메모리 가격과 AI 투자 흐름이 바뀔 때 전사 실적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DX 전체의 적자를 스마트폰 사업의 적자로 해석하기에는 성급하다. 삼성전자는 MX사업이 프리미엄 제품 비중 확대에 힘입어 전분기 대비 실적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TV와 네트워크의 매출 감소, 생활가전의 비용 상승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HBM4가 바꾼 평가…기술 개발에서 고객 매출로
그럼에도 이번 실적에서 단연 빛난 대목은 HBM4로의 판도 변화다.
삼성전자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 HBM4 매출이 전분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고, 전체 HBM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내년 HBM 공급 물량도 목표 수준의 가격으로 협상을 마쳐 이미 판매가 확보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설명은 제품 개발이나 샘플 공급과 달리 매출 확대는 고객의 제품 채택과 실제 공급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HBM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이제 개발 일정뿐 아니라 고객이 얼마나 구매하고 다음 세대에서도 거래를 이어가는지로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다만 HBM4 매출 증가를 곧바로 시장 전체의 점유율 우위나 장기적인 기술 격차로 확대 해석하기는 어렵다. 매출은 출하량과 가격, 제품 구성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4E에서도 고객 평가와 양산 일정을 지키고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해야 경쟁력 회복이 지속성을 갖는다.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 효과도 분리해서 봐야 한다. 트렌드포스는 지난달 말 4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이 전분기 대비 10~15%, 낸드플래시는 15~20%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고유의 제품 경쟁력과 함께 산업 전반의 공급 부족도 실적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의 반대편…완제품이 감당해야 할 비용
반도체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에 일방적인 호재가 아니다. 메모리를 판매하는 사업에는 수익 개선 요인이지만 이를 구매해 스마트폰 등을 만드는 사업에는 원가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MX사업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생활가전도 판매는 호조였지만 원자재와 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익이 줄었다. 제품을 많이 파는 것만으로 수익성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의미다.
완제품 사업의 선택지는 판매가격 인상, 고가 제품 비중 확대, 비용 절감 등이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 수요가 위축될 수 있고 프리미엄 판매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 원가 상승을 어느 정도까지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지가 수익성을 좌우한다.
소비시장에서는 이미 가격 저항의 징후도 나타난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최근 수요 부진에 대응해 할인 판매에 나섰으며 낸드 현물시장에서도 가격 하락이 나타났다. 현물가격을 삼성전자의 서버용 제품 계약가격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AI 수요와 소비자용 시장의 체감경기가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
완제품 사업이 제품 차별화로 가격을 방어하고 서비스·플랫폼 등으로 수익원을 확대해 하드웨어 원가 변동에 대한 민감도를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기계약은 호황을 붙잡을 장치…수익 보증서와는 달라
삼성전자가 대형 고객과의 장기공급계약을 확대하는 것은 메모리 사업의 변동성을 낮추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대형 고객 10곳과 다년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다른 주요 고객 10곳과도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생산능력의 60~70%를 장기계약으로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는 현재 확보한 계약 비중이 아니라 향후 목표다.
메모리 공장은 투자를 결정한 뒤 실제 생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기계약은 미래 구매 수요를 확인한 상태에서 투자할 수 있게 해 증설 판단의 불확실성을 줄인다. 고객 역시 공급 부족 때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계약 기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가격 조정 방식과 구매 의무, 물량 변경 조건 등에 따라 실질적인 안정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파운드리의 기회는 커졌다…내부 물량 다음은 외부 고객
HBM4 성장은 삼성전자의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연결하는 사업 기회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이번 분기 파운드리 실적 개선 요인으로 HBM 베이스 다이 매출 증가를 들었다. 메모리 수요가 파운드리 생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연계는 기술 개발과 공급 대응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내부 제품 수요에 기반한 성장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단점도 있다. 외부 고객이 삼성 공정을 선택하고, 수주가 안정적인 양산과 이익으로 전환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삼성전자는 올해 2나노 수주 과제 수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고, 내년에는 HPC 관련 매출 비중이 전체 파운드리 매출의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수주 확대는 긍정적이지만 과제 수가 계약 금액이나 이익 증가율을 뜻하지는 않는다.
내년 테일러 팹과 2나노 AI·HPC 양산 본격화는 이 기회를 검증할 무대다. 생산시설 가동 이후 고객 물량을 확보하고 수율과 가동률을 높여야 투자비와 감가상각 부담을 흡수할 수 있다.
◇투자와 환원 모두 커졌다…지속 가능성은 현금흐름에 달려
삼성전자는 올해 시설투자에 84조4000억원을 투입하고, 총 90조~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추진한다. 호황의 성과를 미래 생산능력과 주주에게 동시에 추진하는 '정면 돌파' 선언인 셈이다.
투자는 현재의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다음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하지만 투자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의 수요가 지금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공장 건설과 장비 도입, 양산 시점까지 고려해 고객 수요와 공급 증가 속도를 맞추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대규모 주주환원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삼성전자는 3분기 배당 30조원을 결정했으며, 올해 잔여 환원 재원 55조~75조원의 최종 규모와 실행 방안을 내년 1월 말 확정할 예정이다. 세금과 운전자본, 설비투자 등을 반영한 현금 창출력이 대규모 환원을 얼마나 뒷받침하는지 살펴야 한다.
단기 여건은 우호적이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도 AI 투자와 공급 제약에 따른 반도체 강세를 예상하고 있으며, HBM 판매 확보와 장기계약 확대는 이를 뒷받침한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인 기업가치는 가격 상승기에 얼마나 벌었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면서 "HBM의 고객 신뢰를 차세대로 이어가고 파운드리를 수익 사업으로 정착시키며, 완제품이 자체적으로 이익을 지키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107조원 이후’ 삼성전자의 과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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