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고 지는 브랜드① 명품] 160만원인데 중국산…구찌 '배짱장사' 명품 제국에 균열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한 켤레에 160만원에 달하는 구찌 운동화에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라벨이 붙었다.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앞세워 고가 정책을 유지해 온 명품 브랜드의 이례적인 선택이다. 구찌는 제조 기술력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비용 절감 의혹에 선을 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3년 새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가격에 걸맞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명품이라는 이름만으로 지갑을 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오픈런 열풍에 올라타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렸던 명품 브랜드들이 소비자 이탈과 실적 부진이라는 부메랑을 맞고 있어서다. 한때 없어서 못 팔던 가방과 신발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명품 소비자는 3년 만에 6000만명 감소했다. 반면 에르메스 등 일부 초고가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명품 소비 자체가 사라지기보다 가격과 희소성, 브랜드 가치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이 갈리는 모습이다.

◆140만원 중국산 구찌…'메이드 인 이탈리아' 공식 흔들

29일 로이터통신과 명품업계에 따르면 구찌는 최근 출시한 스니커즈 '드립(Drip)'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유럽 판매가는 약 800유로, 미국에서는 1000달러다. 일부 가죽 슬립온 제품에도 중국산 원산지 표시가 붙었다.

그동안 이탈리아 생산을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으로 내세워온 구찌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구찌 측은 해당 제품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고려해 중국 제조업체를 선택했다는 입장이다. 이탈리아가 여전히 주요 생산 거점이며 다른 제품까지 생산지를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 생산 자체가 품질 저하나 원가 절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의 가격을 뒷받침해 온 유럽 생산과 장인정신의 상징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이러한 결정이 실적 악화와 맞물리면서 브랜드 가치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구찌의 매출은 최근 3년 사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 22일 모회사 케어링이 발표한 실적에 따르면 구찌의 올해 3분기 매출은 12억91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 환율과 사업 범위 변동을 제외한 비교 가능 기준이다.

올해 1~9월 누적 매출도 40억4800만유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줄었다. 3분기 직영 매장 매출은 9% 감소했다.

케어링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점포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들어 그룹 전체에서 매장 105곳을 순감축했으며 연말까지 최소 125곳을 줄일 계획이다.

구찌의 위기는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때 구찌를 대표하던 큼지막한 GG 로고와 화려한 디자인은 젊은 소비자들의 과시적 소비를 상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가 하나의 소비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 디자인 전략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 명품 성장의 80%는 가격 인상…6000만명 등 돌렸다

명품업계가 직면한 위기의 배경에는 수년간 이어진 가격 인상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와 패션 전문매체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의 분석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명품 산업 성장의 80% 이상은 판매량 증가가 아닌 가격 인상에서 비롯됐다.

팬데믹 당시만 해도 가격 인상은 희소성을 높여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통용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는 한계가 있었다.


베인앤컴퍼니와 이탈리아 명품산업재단 알타감마에 따르면 명품 소비자 수는 2022년 약 4억명에서 지난해 3억4000만명으로 감소했다. 3년 만에 6000만명이 명품 소비자층에서 이탈한 셈이다.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주기적으로 명품을 구매하던 이들의 횟수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도 올해 3분기 핵심 수익원인 패션·가죽제품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하며 고전했다. 명품업계의 오랜 성장 공식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펜디 매출 40% 넘게 급감…디올은 장인정신 논란

국내 명품시장에서도 브랜드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펜디코리아에 따르면 2023년 1522억원까지 증가했던 매출은 이듬해 1188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000억원 아래로 내려왔다. 유행 상품 중심의 소비가 저물고 소장 가치를 따지는 흐름에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디올은 최근 이탈리아 법원 조사를 통해 하청업체 노동 착취 문제가 불거지며 '장인정신'이라는 브랜드 신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매장에서 2600유로에 팔리는 가방의 하청 조립 단가가 53유로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소비자가 수백만원의 고가 제품에 지불하는 비용 안에는 그에 걸맞은 투명한 관리 체계와 윤리적 가치까지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가방 욕심 내려놓은 버버리…본업 복귀에 실적 반등

반면,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는 맹목적인 고급화 전략을 버리고 본업으로 돌아가 반등에 성공했다. 


과거 초고가 가죽제품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소비자의 기대치와 괴리가 발생하자, 브랜드의 핵심 유산인 트렌치코트와 스카프에 다시 집중한 것이다. 

무리한 가격 인상 대신 소비자가 버버리를 찾는 '진짜 이유'를 회복한 덕분에 버버리의 최근 회계연도 조정 영업이익은 전년(2600만파운드) 대비 6배 이상 급증한 1억6000만파운드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또한 1.0%에서 6.6%로 개선됐다.

◆구찌는 추락하는데 에르메스는 성장…명품시장도 양극화

모든 명품 브랜드가 소비자 이탈을 겪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격에 걸맞은 희소성과 차별화된 가치를 유지한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에르메스다.

에르메스의 올해 3분기 매출은 40억96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환율 영향을 제외한 기준이다. 특히 버킨백과 켈리백 등을 생산하는 가죽제품·마구 부문 매출은 10.8% 성장했다.

이는 에르메스가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생산 방식과 희소성 관리 전략이 핵심 제품군에서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르메스는 숙련된 장인 중심의 생산 체계를 유지하면서 수요 증가에도 공급량을 급격히 늘리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브랜드의 대표 제품을 중심으로 충성 고객층을 확보한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다만 에르메스 역시 시장 둔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올해 3분기 전체 매출 증가율은 시장 기대치에 못 미쳤고, 일부 제품군에서는 성장세가 약화했다.

◆가방 대신 주얼리·향수…돈 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소비자들은 수백만원대 가방 구매를 줄이는 대신, 화장품이나 향수, 주얼리 등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제품이나 중고 시장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 

LVMH의 3분기 패션·가죽 매출은 줄었지만 향수·화장품(1%), 시계·주얼리(6%) 부문은 성장했고, 케어링 역시 주얼리 부문 매출이 11% 늘었다.

과거에는 가격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희소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택지가 다양해진 지금은 이유 없는 가격 인상이 오히려 소비자를 떠나게 만든다. 

비싸서 외면받는 시대가 아니라, 비싼 가격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명품이 외면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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