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평화로운 한국의 밤거리, 갑자기 미사일 폭격이 발생한다. 웃음소리로 가득한 도시는 순식간에 화염으로 휩싸인다. 아수라장과 혼돈의 도가니 속, 피투성이,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우왕좌왕 대피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로 국군과 미군이 고함을 지르며 무장한 채 뛰쳐나간다.
23일 출시된 FPS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4(Call of Duty: Modern Warfare 4)’ 캠페인의 첫 미션 ‘대혼란 (Mayhem)’의 시작 장면이다. 기존 모던워페어 리부트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콜 오브 듀티는 미국 게임사 액티비전(Activision)이 2003년부터 선보인 세계적인 밀리터리 FPS 게임 시리즈다.
세계적 인기 게임인 만큼 이번 작품 배경이 ‘한국’인 것에 수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물론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한국 도시가 배경은 아니다. 미션에처 폭격당한 도시도 서울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가상 도시 ‘하진시(Hajin City)’를 배경이다.
다만 이 같은 관심과 함께 한반도 전쟁을 게임으로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고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서 가상의 전쟁을 상업적 오락물로 재구성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 출시마다 ‘주목’…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 캠페인의 이슈들
콜 오브 듀티 시리즈가 북한의 남침을 묘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출시된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는 2054년 미래를 배경으로 북한군이 한국을 침공했다는 미션이 포함돼 있다. 해당 미션에서는 실제 미래 서울까지 상세히 묘사, 청계천이 주 전투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어드밴스드 워페어의 경우 한국 침공 미션은 1편 뿐이다. 반면 모던워페어4는 스토리 라인 자체가 제2차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주석궁까지 시원하게 폭격한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파괴하거나 북한군 플레이 시, 북측 지도자 사진을 총으로 가격하면 게임 내에서 처형을 당하는 등 묘사도 이뤄졌다.
물론 북한 진형을 절대악으로만 묘사하진 않는다. 게임 내에선 북한 지도부의 내부 권력 갈등을 전쟁 발발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또한 북한군 병사가 민간인을 보호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선택지도 담고 있다.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 캠페인이 이슈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출시 마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논쟁’거리를 불렀다. 이번 모던워페어4 발표 이전엔 거의 대부분 ‘러시아’와 ‘중동’이 악역으로 등장하면서 관련 국가들의 항의나 비판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던워페어 캠페인 스토리는 주로 러시아 극단주의자 세력이 중동 테러리스트 조직과 암약해 세계를 위협하고 공격하고 이를 서방 세력이 막는다는 내용이다. 이후 리부트 작품에서도 러시아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군사적 도발에 미국·영국 등 서방 세력이 맞서는 구도가 반복됐다.
가장 논란이 컸던 것은 2009년 발매된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2’다. 이번 리부트 시리즈의 이전 원작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해당 작품에 포함된 ‘러시아어 사용금지(No Russian)’ 미션 때문이다. 해당 미션은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러시아 국제공항에서 민간인 테러를 저지르는 내용이다.
이때 플레이어는 테러리스트 중 하나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했다. 비록 테러를 막기 위해 잠입한 요원이었으나 실제 테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거나 심지어는 같이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때문에 전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일본,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선 일부 캠페인 진행 과정에 제한을 걸었다. 또한 플레이 직전 ‘불쾌할 수 있는 콘텐츠 알림(DISTURBING CONTENT NOTICE)’ 경고 문구를 삽입, 플레이하지 않고 건너 뛸 수 있도록 조치했다.
뿐만 아니라 2019년 기존 모던워페어 시리즈의 리부트 1편이 출시되면서 ‘악역’ 국가인 러시아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러시아군 장군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악역으로 등장하면서다. 이에 2019년 출시된 모던워페어 리부트 1편, 2020년 출시된 모던워페어 2편 리마스터는 러시아 내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판매 중단 및 출시 거부가 이뤄졌다.
◇ 흥행과 논쟁 사이… 전쟁 게임의 사회적 영향력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명실상부 가장 인기 있는 FPS게임이다. 특히 현대전 배경의 모던워페어 시리즈는 손꼽히는 흥행작이다. 시리즈 유통을 담당하는 ‘액티비전(Activision)’에 따르면 2007년 출시된 원작 1편은 1,300만장이 판매됐다.
특히 시리즈를 새롭게 재구성한 리부트 1편은 누적 판매량 4,100만장을 기록했다. 2022년 출시된 리부트 2편은 10일 만에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했다. 2024년 10월 기준 콜 오브 듀티 전체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은 5억 장을 넘어섰다. 모던워페어 시리즈들만 집계할 경우, 약 1억2,000만장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게임 콘텐츠는 실제 배경과 역사, 전쟁을 다룰 경우 논란과 논쟁의 중심이 되곤 한다. 물론 실제 역사, 전쟁 등 사건을 기반, 가상의 스토리로 구성된 콘텐츠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이것을 제한하는 것 자체는 창작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논란이 커지는 배경은 지리적 특수성이 있다는 게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은 종전국이 아닌 ‘휴전국’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70년 넘게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한국 플레이어 입장에선 북한의 남침 가상 시나리오가 현실서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훨씬 더 큰 위협이나 트라우마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6.25 전쟁 당시 참전용사들을 비롯, 생존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실제 전쟁의 상처를 경험한 세대가 여전히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국내 도시의 파괴와 군인·민간인의 희생을 상업적 오락물로 소비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제기되는 비판이다.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23년 출시된 ‘식스 데이즈 인 팔루자(Six Days in Fallujah)’ 사례가 있다. 2004년 이라크 팔루자 전투를 재현한 이 게임은 개발 당시 이라크전 참전용사와 전사자 유가족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된 사실을 게임으로 제작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다. 이에 2009년 게임 유통을 추진하던 일본의 코나미는 발매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새로운 제작·유통 체계를 통해 2023년 출시됐지만, 전쟁의 참상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됐다.
◇ 게임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까…‘합성 기억’의 의미
콜 오브 듀티처럼 현실감이 뛰어난 전쟁 게임의 경우, 특정 국가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미디어, 전쟁과 갈등(Media, War & Conflict)’에 게재된 미국 볼링그립주립대 소속 타일러 워츠(Tyler Wertsch) 박사의 연구다.
타일러 워츠 박사는 2019년에 출시된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 리부트 1편의 역사 재현 방식을 지적했다. 그가 비판한 것은 게임 내에서 묘사한 고속도로 전투 부분이다. 게임에서는 해당 사건을 러시아군의 민간인 피란 행렬 폭격 사건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1991년 실제 역사는 미군 주도 연합군의 이라크군 폭격으로 알려진 ‘죽음의 고속도로(Highway of Death)’다.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던 이라크군 차량 행렬을 미군이 이라크 쿠웨이트 간 80번 고속도로에서 폭격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워츠 박사는 이를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과 기억을 결합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는 ‘합성 기억(Synthetic Memory)’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재구성 과정에서 실제 사건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이 사라지고 특정 국가를 일방적인 가해자나 피해자로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는 게임 속 가상의 전쟁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특정 국가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워츠 박사는 “이러한 역사적 재구성은 실제 사건의 복잡한 정치적·도덕적 맥락을 지우고, 전쟁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바꾼다”며 “실제 사건에서는 미군 주도 연합군의 공격이 정당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었으나 게임에서는 러시아군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묘사하면서 이러한 논란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전쟁의 폭력과 비극을 다루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콘텐츠 자체 제작을 강제로 검열하거나 주제를 기피하도록 만들어선 안 된다”며 “다만 이러한 게임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 23일 정식 출시된 모던워페어4는 이용자들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릴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최근 ‘DMZ 지뢰 매설 사건’ 등 북한의 잇따른 군사적 도발도 국내 이용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현실의 역사와 가상의 전쟁을 구분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논쟁이 콘텐츠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도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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