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K팝 기획사들의 시선이 중남미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기존의 아시아와 북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높은 인구 규모와 가파른 음악 시장 성장세를 보이는 중남미가 새로운 전략적 거점으로 떠오른 결과다. 대규모 스타디움 투어는 물론, 현지 음악 장르 차용과 아티스트 협업, 나아가 K팝 육성 시스템의 현지 이식까지 진출 방식도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 중남미 현지에서는 K팝 아티스트들의 활동 반경이 크게 넓어졌다. 방탄소년단(BTS)은 콜롬비아,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5개국 14회에 달하는 남미 스타디움 투어를 진행했다. 스트레이 키즈는 글로벌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과 함께 자신들의 이름을 딴 순회형 음악 축제 '스트레이시티'를 론칭해 현지 아티스트들과 무대를 꾸미고 있으며, 브라질의 대표 음악 축제 '록 인 리우'에 K팝 가수 최초로 헤드라이너로 참여했다.
음악적 문법 역시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이티즈의 '배드', 엔하이픈의 '블러디 파라다이스', 캣츠아이의 '후티 프루티' 등은 브라질 빈민가 파벨라의 댄스 파티에서 유래한 '브라질리언 펑크' 리듬을 전면에 내세웠다.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가사를 차용하는 수준을 넘어, 엔믹스가 브라질 싱어송라이터 파블로 비타르와 협업 음원을 내고 현지 카니발 무대에 서는 등 직접적인 교류도 정례화되는 추세다.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단순한 음원 수출을 넘어 현지화 시스템 구축에 직접 나섰다. 하이브는 멕시코시티에 하이브 라틴아메리카를 설립하고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5인조 보이그룹 '산토스 브라보스'를 데뷔시켰다.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K팝 트레이닝 시스템을 적용한 라틴 걸그룹 발굴 프로젝트 'L2K'를 진행 중이다.
기획사들이 중남미에 투자를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파른 시장 성장 잠재력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중남미 음반 산업 매출은 16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연간 성장률은 17.1%로 글로벌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전체 매출의 88% 이상이 스트리밍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중심 시장이라는 점도 온라인 기반 팬덤에 강한 K팝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루미네이트 집계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정규 5집 '아리랑'의 발매 첫 주 스트리밍은 브라질(7,869만 회)과 멕시코(7,590만 회)에서 국내 수치(5,830만 회)를 상회했다.
미국 본토 공략을 위한 '전략적 우회로'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6,000만 히스패닉계는 북미 대중문화 소비의 핵심 축이다. 중남미에서 형성한 대중적 인지도와 라틴 팝 감각을 발판 삼아 미국 내 히스패닉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범위한 이동 거리와 높은 물류비, 불안정한 현지 환율 등은 오프라인 투어의 수익성을 제약하는 현실적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포르투갈어권인 브라질과 스페인어권 국가들의 문화적 차이를 세밀하게 구분하지 못하거나, 현지 문화를 표피적으로만 차용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남미가 K팝의 일시적인 대체 시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교한 현지화 전략과 문화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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