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오크통까지 만드는 고집…실버오크, 한국에 잔을 건네다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와인 한 병을 위해 오크통까지 직접 만든다. 나무를 고르고, 24개월간 말리고, 불에 굽는 시간까지 살피는 이유는 명확하다. 잔에 담겼을 때 느껴지는 향과 질감을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미국 와이너리 실버오크가 자사 아시아 최대 시장인 한국을 찾아 이 같은 '오크의 고집'을 풀어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WSA 와인아카데미에서 열린 '더 오크 아카데미'. 이날 와인 클래스는 포도 품종과 산지에 앞서 나무 이야기로 시작됐다. 미주리산 오크를 선택한 이유부터 목재를 말리고 통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와인을 담는 용기 정도로 여겼던 오크통이 어떻게 한 잔의 개성을 완성하는지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행사에는 팀 던컨 실버오크 공동 소유주 겸 최고매출책임자(CRO)와 아시아 담당자 아미야 첸이 참석했다. 김송희 하이트진로(000080) 프리미엄기획팀 차장의 통역으로 배럴 제작 설명과 와인 4종 시음,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나무부터 고른다…한 잔을 위한 24개월의 준비

1972년 설립된 실버오크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한 와인을 만들어왔다. 음식과 잘 어울리고, 출시 직후에도 즐길 수 있으면서 오랜 숙성도 가능한 와인을 지향한다.

이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배럴 제작소의 직접 운영이다. 실버오크는 오랜 기간 협력해온 미국 미주리주 소재 제작소를 2015년 완전히 인수했다. 와인에 사용할 오크통의 품질과 공급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서다.

미주리산 오크를 고른 기준도 와인에 있었다. 이 지역의 목재가 실버오크가 원하는 향과 개성, 질감을 부여하는 데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오크통을 만드는 일은 기다림에서 출발한다. 판재를 야외에 쌓아두고 비와 바람, 햇볕을 맞히는 '시즈닝' 과정이다. 생나무 특유의 향을 줄이고 와인 숙성에 적합한 상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오래 말린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실버오크는 제작소 인수 이후 시즈닝 기간을 달리하며 비교 실험을 진행했다. 그렇게 찾은 답이 24개월이다. 추구하는 향과 질감을 얻는 데 가장 적합한 기간이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건조를 마친 목재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판재를 하나씩 살펴 흠집이 있거나 나뭇결이 고르지 않은 것을 걸러낸다. 선별한 판재는 장인의 손을 거쳐 둥근 통으로 조립된다. 너비가 제각각인 판재를 맞춰 하나의 배럴로 만드는 과정에도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현장 설명에 따르면 제작소는 직원 10명이 하루 약 25개, 연간 약 5000개의 배럴을 생산하는 규모다. 이곳에서 만든 배럴 대부분은 실버오크로 향한다.

◆코코넛부터 커피까지…오크를 굽는 이유

통의 모양을 갖춘 다음에는 불이 향을 만든다. 배럴 안쪽을 굽는 '토스팅'이다. 이날 설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은 얼마나 오래 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향의 변화였다.

실버오크는 40분에서 1시간가량 굽는 미디엄 토스팅을 적용한다. 추구하는 향의 범위는 '코코넛부터 커피까지'. 오크의 특성과 토스팅을 조합해 실버오크다운 풍미를 구현하는 것이다.

세심함은 통의 안쪽에만 머물지 않는다. 와인과 맞닿는 양쪽 마개도 같은 기준으로 굽는다. 조립을 마친 뒤에는 물을 넣고 압력을 가해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목재 선별부터 마지막 누수 검사까지, 와인이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차례 품질을 점검하는 셈이다.

던컨은 제작소를 완전히 인수한 뒤 달라진 점으로 숙련된 장인 확보와 목재 품질 관리, 작업 환경 개선 등을 꼽았다. 원하는 배럴을 만들기 위해 공정 전반을 직접 조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크가 와인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날 설명에서는 좋은 포도와 양조 과정이 먼저라는 점도 강조됐다. 오크는 그렇게 만든 와인의 향과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이다. 배럴을 직접 만드는 이유 역시 그 기본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차 빈티지, 다른 오크…네 잔으로 확인한 철학

설명은 네 잔의 와인을 비교하는 시음으로 이어졌다. 알렉산더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2와 2022,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9, 타임리스 나파 밸리 2019가 준비됐다.


먼저 비교한 것은 같은 알렉산더 밸리 와인의 10년 차 빈티지였다. 던컨은 2022 빈티지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의 뚜렷한 특징과 힘을, 2012 빈티지에서는 숙성을 거치며 한층 부드러워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시 직후에도 즐기기 좋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성숙한 매력을 보여주는 와인. 두 빈티지를 나란히 놓은 구성은 실버오크가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나파 밸리 2019는 카베르네 소비뇽에 메를로 등 총 다섯 품종을 섞은 와인이다. 새 아메리칸 오크 사용 비율은 84%로, 이날 소개한 알렉산더 밸리의 50%보다 높다. 산지와 품종 구성, 새 오크 비율에 따른 차이를 비교하는 순서였다.

마지막 잔에는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한 타임리스 2019가 담겼다. 실버오크 공동 창립자 레이 던컨에게 헌정하는 와인으로, 소다 캐년 랜치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한 포도를 사용한다.

아메리칸 오크 제작소까지 보유한 와이너리가 프렌치 오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질의응답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왔다. 던컨은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버오크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타임리스를 통해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양조 방식에도 조화를 중시하는 철학이 담겼다. 던컨은 품종별로 각각 숙성한 뒤 섞는 대신, 먼저 블렌딩한 와인을 배럴에서 숙성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품종과 오크가 숙성 과정에서 함께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아시아 최대 시장"…스테이크 곁에서 한식으로

이날 던컨이 한국 소비자에게 전한 제안은 다양한 음식과 실버오크를 함께 즐겨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을 실버오크의 아시아 최대 시장으로 소개하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에 선보인 지 약 20년이 된 만큼,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더해 한식당에서도 실버오크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아시아 방문 기간 스테이크를 여러 차례 먹었다는 일화도 나왔다. 익숙한 조합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각국의 음식과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취지였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프리미엄 와인의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품질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소비 경험이 쌓일수록 더 나은 품질을 찾는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제품군도 넓힌다. 이날 행사에서는 실버오크 이름을 붙인 소비뇽 블랑을 내년 국내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사용한 오크통에서 숙성한 화이트 와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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