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 취임 6주년을 맞는다. 지난 2020년 10월 그룹 회장에 오른 뒤 현대차그룹을 판매량 중심의 추격자에서 수익성과 브랜드 가치를 갖춘 '글로벌 완성차 톱3'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그룹 주요 계열사인 현대차·기아는 지난 2022년 처음 세계 판매 3위에 오른 뒤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글로벌 고급차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는 그룹의 외형과 수익성을 동시에 지탱할 정도로 체력을 갖췄다.
정 회장의 시선은 자동차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 로봇, 인공지능(AI), 수소를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로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닌 이동과 산업 현장을 연결하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 뒤에 숨은 과제도 만만찮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세 정책, 러시아 사업 철수, 전기차 수요 둔화, 조지아 배터리공장 이민 단속 등의 변수는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지배구조 개편과 자율주행과 도심항공교통 등 미래사업의 수익화도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다.

◇판매량보다 이익 바꿨다…‘글로벌 3위’로 도약
정 회장 취임 당시 현대차그룹이 마주한 첫 위기는 코로나19였다. 세계 각국의 공장이 멈추고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까지 겹치면서 정상적인 생산과 판매가 어려웠다.
현대차그룹은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익성이 높은 차량에 생산 역량을 집중했다. 세단보다 SUV, 대중차보다 제네시스, 내연기관차보다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의 판매 비중을 확대했다. 무리한 할인 판매를 줄이고 평균판매가격을 높이는 전략도 병행했다.
결과는 실적으로 입증됐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2020년 약 4조5000억원에서 2023년 26조원을 넘어섰고 2024년에는 약 27조원까지 증가했다. 판매 대수가 두 배로 늘지 않았는데도 영업이익은 6배가량 커졌다.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도 달라졌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2년 도요타그룹과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글로벌 판매 3위로 올라섰다. 2024년에도 약 723만대를 판매하며 3위권을 유지했다. 같은 해 도요타그룹은 1080만대, 폭스바겐그룹은 900만대 수준을 판매했다.
정 회장 취임 전까지 현대차그룹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패스트 팔로어’로 평가받았다면 취임 이후에는 수익성과 상품성을 함께 갖춘 선두권 업체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세계 3위라는 순위가 안정적인 지위로 굳어진 것은 아니다.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 BYD가 판매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고,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유럽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시장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는 3위 달성보다 이를 장기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제네시스·아이오닉·하이브리드…‘현대차의 가격표’ 바꾸다
정 회장 체제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브랜드와 제품의 고급화다.
제네시스는 G80과 GV80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중동 시장을 확대했다. 2015년 독립 브랜드 출범 이후 2023년 글로벌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돌파하며 현대차그룹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핵심 브랜드로 성장했다.
전기차 부문에서는 현대차그룹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기아 EV6·EV9 등을 잇달아 출시했다. 아이오닉5는 2022년, 아이오닉6는 2023년, EV9은 2024년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전기차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던 현대차그룹이 상품성과 충전 기술, 디자인을 앞세워 글로벌 경쟁의 중심에 진입한 것이다.
전기차 시장이 예상보다 느리게 성장하자 하이브리드차를 확대한 것도 실적 방어에 힘을 보탰다. 현대차는 2024년 3분기 전기차 판매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하이브리드 판매가 전년 동기보다 40% 이상 늘면서 수익성을 지켰다.
정 회장이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기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함께 가져가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순수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는 구간에서는 하이브리드차가 수익성을 지키고, 충전 인프라와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면 전기차 비중을 다시 확대하는 다중 전략이었다.
다만 전기차 경쟁의 중심이 차량 성능에서 가격과 배터리 원가로 이동하면서 부담도 커졌다. 중국 업체들은 저가형 배터리와 현지 공급망을 바탕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고급 전기차뿐 아니라 대중형 모델과 배터리 내재화, 원가 절감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미국 생산 승부수…IRA 넘었지만 관세·비자 벽 만났다
미국 시장은 정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투자처다. 2022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전기자 보조금 혜택이 막히자 정 회장은 현지 생산 시점을 앞당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건설하고 당초 계획보다 빠른 2024년 생산에 들어갔다. 전기차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차종도 전기차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차로 확대했다.
조지아 생산능력은 당초 연간 30만대에서 50만대 수준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 비중을 높여 보조금과 관세 정책 변화에 대응하고 미국을 연구개발부터 부품·배터리·완성차 생산까지 연결된 핵심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룹은 미국 시장 점유율을 2020년 8%대에서 11%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현지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공급망 리스크'도 노출됐다. 2025년 9월 미국 이민 당국은 조지아 전기차공장 인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현장을 단속했다. 공사는 일시 중단됐고 한국인 300여명을 포함한 근로자들이 구금되면서 한미 간 외교 현안으로까지 번졌다.
현대차 직접 고용 인력이 단속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규모 해외공장 건설 과정에서 협력사의 비자와 고용관계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배터리공장 가동 일정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현대차그룹은 단속 이후에도 조지아공장에 27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연간 생산능력을 50만대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유지했다.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정책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품고 ‘로봇 회사’ 선언…AI로 공장 바꾼다
정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현대차그룹의 사업 영역을 자동차 밖으로 넓혔다.
대표적인 선택이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다. 현대차그룹은 약 11억달러의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했다. 정 회장도 개인 자금을 투입해 지분 20%를 확보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물류로봇 ‘스트레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을 별도 제품으로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 생산과 물류, 안전 점검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AI와 로봇을 생산 혁신의 중심에 놓고 있다. 조지아공장을 포함한 글로벌 생산기지에 휴머노이드와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고, 차량과 로봇이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기반을 구축하는 전략이다. 그룹은 SDV 플랫폼 ‘플레오스’를 공개하고 차량용 운영체제와 앱 생태계 구축에도 나섰다.
자동차가 하드웨어 판매로 끝나는 제품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로봇과 AI 투자가 노사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생산현장에 휴머노이드를 투입하면 노동 강도를 낮추고 위험 작업을 대체할 수 있지만 기존 인력의 업무와 고용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공장 헐값 매각·품질비용…성장 뒤 남은 상처
정 회장 취임 이후 글로벌 공급망은 잇따라 흔들렸다.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에서 연간 4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현지 수입차 시장 선두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부품 공급과 금융거래가 막히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차는 결국 2024년 공장을 약 14만원에 매각했다. 일정 기간 되살 수 있는 조건을 붙였지만 전쟁과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재매입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현대차는 공장 매각 과정에서 약 2870억원의 손실을 반영했다. 한때 핵심 시장이었던 러시아에서 생산기반과 판매망을 동시에 잃은 사례다.
품질비용도 반복적으로 실적에 부담을 줬다. 현대차는 2024년 3분기 미국에서 판매한 싼타페 엔진과 관련해 약 3200억원의 보증비용을 반영했다. 같은 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7% 감소했다.
완성차 업체에 대규모 리콜과 보증비용은 피하기 어려운 위험이지만, 전기차·하이브리드차·소프트웨어 차량이 동시에 늘어날수록 관리해야 할 기술과 부품도 복잡해진다. 판매량과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만큼 작은 품질 문제도 글로벌 소비자 신뢰와 대규모 비용으로 연결될 수 있다.

◇모비스 지분 0.33%…‘정의선 체제’ 마지막 퍼즐
정 회장의 경영권 승계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를, 현대차가 기아를, 기아가 다시 현대모비스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 지분 2.73%, 기아 지분 1.78%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0.33%에 그친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과 정 회장이 약 20%를 가진 현대글로비스 지분 등이 향후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정 회장이 개인 지분 20%를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도 장기적으로 승계 재원과 연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의 일부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개편안을 내놨지만 국내외 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했다. 당시 경험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구조만으로는 시장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개정 상법 시행으로 지배구조 개편의 문턱은 더 높아졌다. 합병과 분할, 주식교환을 추진하려면 각 회사 이사회가 해당 거래가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국민연금과 외국인·기관투자자가 거래가격과 교환비율의 공정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편안 통과도 쉽지 않다.
◇‘3위 달성’ 넘어 ‘3위 수성’…다음 6년은 증명의 시간
정 회장의 취임 첫 6년은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바꾼 시간이었다. 세계 판매 3위,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 제네시스의 성장, 전기차 전용 플랫폼 구축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성과다.
다음 6년의 경영환경은 더 녹록지 않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보조금과 관세, 현지 생산 규정을 산업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기차·하이브리드차·내연기관차를 동시에 개발하면서 AI와 로봇, 자율주행에도 투자해야 하는 만큼 자본 배분의 중요성도 커졌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관세와 수요 둔화 속에서 수익성을 방어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SDV와 자율주행, 로봇 사업을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하고 배터리 원가 경쟁력도 확보해야 한다. 생산현장의 로봇 도입 과정에서 노조와의 충돌을 줄이고 품질과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는 일도 피할 수 없다.
그룹 내부에서는 순환출자 해소와 승계, 현대모비스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각 회사의 주주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개편안을 마련해야 정의선 체제를 제도적으로 완성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첫 6년이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을 세계 시장에 증명한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중국 업체의 추격과 산업 전환의 충격을 견디며 미래기술의 수익성과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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