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오는 10월 9일이면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던 ‘췌장장애’가 장애인 등록 대상에 정식 포함된 지 100일을 맞는다. 오랜 시간 제도 밖에 머물렀던 췌장장애인들이 비로소 국가의 장애인 복지체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1일 등록 가능한 장애유형에 ‘췌장장애’를 신설했다고 밝혔다. 췌장장애가 새로운 장애유형으로 추가된 것은 2003년 △호흡기 △간 △안면 △장루‧요루 △뇌전증 등을 장애로 인정한 이후 23년 만이다.
췌장은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혈당을 조절하고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관이다. 이번에 신설된 췌장장애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크게 저하돼 지속적인 혈당 관리가 필요한 중증 당뇨병 환자를 주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제도 시행 100일을 앞둔 지금, 췌장장애인들에게 실제 어떤 변화들이 찾아왔을까.
지난 7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부설 한국췌장장애인협회 사무실에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미영 대표는 가장 먼저 ‘관심의 변화’를 꼽았다. 췌장장애가 법적 장애유형으로 인정되면서 여러 지자체와 장애 관련 기관들이 췌장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협회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늘었다는 것이다.
- 오는 9일이면 췌장장애가 정식 장애유형으로 인정된 지 100일을 맞는다. 지난 100일 동안 현장에서 체감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췌장장애는 질환을 바탕으로 한 장애이기 때문에 의료비 지원이 굉장히 큰 관심사다. 지난 9월 정부가 췌장장애인의 경우 연령과 관계없이 인슐린자동주입기 구입비용을 기준 금액의 90%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오는 12월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의료비 지원에 있어 변화를 체감하는 것 같다.
두 번째는 기존 장애인들이 이용해 온 여러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점이다. 각종 할인이나 돌봄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환우들끼리 ‘어디에 갔더니 이런 할인을 받을 수 있더라’는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고 있다. 그동안 장애제도 밖에 있었던 분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오면서 여러 지원을 하나씩 알아가고 누리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기존에는 의료 영역의 환자단체로서 목소리를 냈다면, 이제는 장애인단체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췌장장애는 23년 만에 새롭게 추가된 장애유형이다 보니 장애계에서도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지방자치단체나 장애 관련 기관에서 췌장장애에 대해 알고 싶다며 강의를 요청하는 등 먼저 이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질환으로만 여겨졌을 때는 우리가 계속해서 ‘이 질환이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정부기관이나 장애 관련 기관의 담당자들이 먼저 췌장장애가 무엇인지를 묻고 알려고 한다. 그런 관심의 변화가 장애유형으로 인정된 이후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 협회에 소속된 환우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1형 당뇨가 있다고 해서 모두 췌장장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형 당뇨 진단 기준보다 췌장장애 판정 기준이 더 엄격하다. 그러다 보니 환우 커뮤니티 내에서는 장애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판정 기준이 0.6 미만인데 검사결과가 0.61로 나오는 경우처럼 수치가 조금 차이 난다는 이유로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생긴다.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똑같이 의료기기를 부착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관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장애등록 여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료비 지원이나 복지 혜택에 차이가 생기다 보니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다.
장애로 인정받은 분들은 정부로부터 이용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담긴 안내를 받기도 하고, 실제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환우들끼리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만 같은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장애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함께 있다 보니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 췌장장애가 정식 장애유형으로 인정되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저희 아이가 세 살이던 2012년에 처음 1형 당뇨 진단을 받았다. 내년 1월이면 어느덧 15년 차가 된다. 그동안 워낙 관리가 어렵고 아이의 삶의 질도 떨어지다 보니 초기에는 사실 제도 개선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2024년 태안에서 1형 당뇨를 앓는 자녀를 둔 일가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을 계기로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췌장장애를 정식 장애유형으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것 같다.
그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나 보건복지부 등의 연구용역 인터뷰에 참여하면서 저희 사례를 이야기하고, 왜 장애로 인정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왔다. 그 과정에서 진행 상황을 조금씩 전해 듣기도 했다. 당시에는 대외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다 췌장장애가 새로운 장애유형으로 최종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다. 그 과정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하나의 질환이 장애로 인정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23년 만에 새로운 장애유형이 추가됐다는 사실만 봐도 장애 인정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지 않나. 실제 연구용역에 참여했을 당시 저희뿐 아니라 장애 인정을 필요로 하는 다른 질환의 환우분들이 많이 계셨다. 그 가운데 췌장장애가 새로운 장애유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어서 더욱 감격스러웠다.”
- 소아‧청소년기에 췌장장애를 겪게 되면 지속적인 혈당 관리가 필요한 만큼 학교생활에서도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되는지 궁금하다.
“혈당이 떨어지면 수업 중이라도 주스를 마셔야 하고, 인슐린 주사가 필요하면 수업 중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학기 초 담임선생님께 이런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놓더라도 중학교에 올라가면 과목마다 교과 담당 선생님이 달라지지 않나. 담임선생님과는 ‘수업 중 손을 들면 혈당이 높아 주사를 맞으러 가야한다는 신호’로 사전에 약속해 놨는데, 이런 내용이 교과 선생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아이가 혼이 나는 일도 있었다. 수업 중 저혈당 때문에 주스를 마시다가 ‘수업 시간에 뭘 먹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특히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시험을 볼 때 어려움이 커졌다. 혈당 관리를 위해 착용하는 의료기기는 긴급한 저혈당 상황이나 인슐린이 제대로 주입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경고음을 울린다. 시험 도중 경고음이 울리면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학교마다 대응 방식이 제각각이다.
친구들과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싶어도 별도 고사장에서 시험을 보도록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이가 별도 고사장에서 시험을 보고 싶어도 학교에서 별도의 교실이나 감독 교사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경고음이 울릴까봐 불안해하는 아이의 경우엔 의료기기나 전자기기를 반납하고 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저혈당이 심해져 쓰러지거나 의식을 잃으면 시험 자체를 치르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높은 비율로 아이들이 평소보다 혈당을 높인 상태에서 시험을 치른다. 시험을 볼 때 긴장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의 영향으로 혈당이 더 올라가 전반적으로 고혈당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 결국 아이들이 공부한 만큼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 올해 3월부터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이 시행되면서 수업 중 스마트기기 사용이 원칙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장애학생이 보조기기로 사용하는 경우 등은 예외로 두고 있으나, 실제 혈당 관리를 위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해야 하는 췌장장애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없는지 궁금하다.
“췌장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혈당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고, 인슐린 주입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조작한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혈당을 관리하기 위한 의료기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법이 개정되기 전에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교육부로부터 ‘장애학생이 보조기기로 사용하는 경우’에 대한 예외 조항에 췌장장애 학생도 포함된다는 해석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되자 학교 현장에서 이를 해석하는 게 다 달랐다. 법에 ‘의료기기용으로 사용하는 전자기기’라고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보니 학교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이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의학적 치료 또는 모니터링이 필요한 학생이 보조기기로 사용하는 경우’를 예외 사유로 명시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결국 현재로서는 췌장장애 학생들이 치료와 혈당 관리에 필요한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 혈당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급성 저혈당으로 혈당이 매우 낮은 상태가 30분 정도 지속되면 의식을 잃을 수 있고, 산소 공급이 어려워져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고혈당 상태가 장기간 누적되면 여러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망막병증으로 시력을 잃거나 신장 기능이 악화돼 투석을 받아야 할 수도 있고, 말단까지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피부가 괴사하면서 절단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전신에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혈당을 확인해야 한다.
혈당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워낙 많아 예측하기 쉽지 않아 더 어렵다. 인슐린 주사를 맞고 1~2시간 뒤에 저혈당이 오기도 하고, 반대로 고혈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시로 혈당을 확인하면서 관리해야 한다. 수업 중에 혈당이 갑자기 떨어지면 빨리 주스를 마셔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확인하고 대처하면 괜찮지만, 수업을 듣거나 친구들과 놀다 보면 혈당을 확인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부모가 원격으로 혈당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 ‘주스 마셔’, ‘인슐린 주사 맞아’라고 알려줘야 한다. 결국 혈당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를 갖고 다니며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 현재 췌장장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최근 장애인고용공단 경기동부지사에 강의를 갔는데 ‘직업능력평가사’분들이 계시더라. 장애인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직업을 갖기 위해 어떤 교육이나 지원이 필요한지를 평가하는 분들인데 그분들조차 췌장장애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셨다. 장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도 잘 모를 정도라면 일반 국민들은 더욱 생소할 거라고 생각한다.
1형 당뇨를 알리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아직 1형 당뇨에 대한 이해조차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췌장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데 무슨 장애냐’는 시선이다. 실제로 최근 저희 협회에 있는 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SNS에 장애로 인정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멀쩡한데 무슨 장애냐’는 식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고 하더라.
반대로 췌장장애가 있는 사람을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아픈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췌장장애인은 저혈당이나 고혈당에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소지할 수 있고, 의료기기에서 긴급 알람이 울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일생상활을 하면 안 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왜 학교에 다니지?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췌장장애는 장애 특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당사자가 자신의 역량에 맞는 직업을 갖고 충분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장애유형임에도 인식이 양극화돼 있다. 결국 췌장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췌장장애가 어떤 장애인지 제대로 알리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슈가’도 실제 저희 환우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 영화를 통해 1형 당뇨나 췌장장애를 처음 알게 됐다는 분들이 많더라. 앞으로도 여러 매체를 통해 췌장장애를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 장애로 인정받은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췌장장애인을 위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는 무엇이라고 보나.
“일반적으로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복지나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췌장장애에 특화된 서비스 모델은 없는 상태다. 앞으로 췌장장애의 특성을 반영해 어떤 제도와 지원이 필요한지 하나씩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들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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