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정수미 기자]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두고 자산운용업계가 재논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지배주주가 보유 지분을 먼저 전량 매각할 수 있는 현행안으로는 주주 간 매각 기회의 차이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자산운용사 18곳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인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안의 처리를 보류하고 추가 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참여 운용사의 합산 수탁고는 약 87조원이다. 이들은 오는 30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상장사의 경영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반주주에게도 보유 주식을 매각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추진됐다.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거쳐 2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안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영권 인수 시 인수자가 최종적으로 ‘50%+1주’를 확보할 때까지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운용사들이 문제 삼은 것은 ‘50%+1주’라는 기준 자체가 아닌 지배주주 지분을 먼저 살 수 있도록 한 ‘선행매수’ 구조다.
현행안에서는 인수자가 지배주주의 지분을 장외에서 먼저 사들인 뒤 50%+1주에 부족한 물량만 공개매수하면 된다. 지배주주는 보유 지분을 모두 매각할 수 있는 반면 일반주주는 공개매수 물량에 따라 보유 주식 일부만 팔거나 매각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게 운용사들의 주장이다.
가령 지배주주가 지분 40%를 보유한 회사를 인수한다면 인수자는 해당 지분을 먼저 전량 사들인 뒤 일반주주에게 10%+1주만 공개매수하면 된다. 일반주주가 보유한 나머지 60%가 모두 공개매수에 응하더라도 실제 팔 수 있는 물량은 각자 보유 지분의 약 6분의 1에 그친다. 인수자가 사들이는 전체 물량의 80%가 지배주주 몫이 되는 셈이다.
지배주주 지분이 이미 과반인 기업에서는 일반주주에게 매각 기회 자체가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지배주주 지분을 먼저 사들이는 것만으로 50%+1주 기준을 충족할 수 있어서다.
운용사들은 같은 가격에 일부 주식을 매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일반주주 보호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영권이 넘어간 뒤 매각하지 못한 잔여 지분의 가치가 하락하면 공개매수로 얻은 프리미엄보다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안으로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함께 참여하는 ‘비례적 공개매수’를 제시했다. 지배주주 지분을 먼저 사들이지 않고 모든 주주가 같은 가격으로 공개매수에 참여한 뒤, 응모 물량이 목표치를 넘으면 같은 비율로 나눠 매수하는 방식이다.
지배주주가 40%를 보유한 기업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인수자는 지배주주에게서 약 20%, 일반주주에게서 약 30%를 사들이게 된다. 양측 모두 보유 주식의 절반가량을 같은 가격에 팔 수 있다. 인수자가 매입하는 전체 물량과 가격은 달라지지 않아 추가적인 인수자금 부담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운용사들은 과거 국내 제도와 해외 사례도 근거로 들었다. 1997년 도입됐다가 이듬해 폐지된 국내 의무공개매수제도도 50%+1주를 기준으로 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지분 취득은 원칙적으로 공개매수를 거치도록 해 지배주주도 다른 주주와 함께 공개매수에 참여하도록 했다.
일본은 일정 기준을 넘는 지분 취득을 원칙적으로 공개매수로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홍콩, 싱가포르 등은 선행매수를 허용하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잔여주식 전부에 매수 제안을 하도록 한다는 게 운용사 측 설명이다.
운용사들은 현행안이 시행되면 인수자가 법에서 정한 최소 기준에 맞춰 거래를 설계하면서 오히려 기존 시장의 주주 보호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자체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잔여주식 전량을 공개매수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가장 부합하지만, 인수자금 부담과 M&A 위축을 고려해 ‘50%+1주’를 택한 국회의 판단도 존중한다고 밝혔다. 결국 쟁점은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에게 매각 기회를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것이다.
참여 운용사들은 “선행매수를 허용했을 때의 영향과 남은 일반주주를 보호할 방안을 본회의 처리 전에 충분히 따져 보고 처음부터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며 “충분한 공론화와 보완 없이 정무위안을 처리하지 말 것을 국회와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