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빅4, 주주가 온다④] 모비스 0.33% 정의선…순환출자 해법, 주주 손에

마이데일리

[편집자주] 총수 일가가 제한적인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이사회가 이를 뒷받침해 온 대기업 경영 방식에 변화가 시작됐다. 개정 상법은 이사의 책임을 전체 주주로 확장하고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자사주를 활용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전통적인 경영권 방어 방식도 제약을 받는다. 총수의 지배력은 앞으로 지분율뿐 아니라 이사회와 주주의 동의를 끌어내는 능력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마이데일리는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개정 상법이 이사회 운영과 총수 리더십, 향후 승계 구도에 가져올 변화를 살펴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차그룹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2차 개정 상법 시행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해묵은 지배구조 개편 과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를, 현대차가 기아를, 기아가 다시 현대모비스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세 회사의 등기이사로 경영 전면에 서 있지만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은 0.33%에 그친다.

정 회장 체제를 완성하려면 부친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승계하는 동시에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개정 상법으로 합병·분할·주식교환 과정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의 책임이 강화되면서 선택할 수 있는 해법은 이전보다 까다로워졌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2018년 현대모비스 분할과 현대글로비스 합병을 결합한 개편안을 내놨다가 국내외 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경험이 있다. 새로운 개편안은 그룹 차원의 필요성을 넘어 각 회사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과 거래 조건의 공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정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은 결국 보유 지분과 자금 동원력보다 국민연금과 해외 기관투자자, 소수주주의 동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그래픽=윤진웅 기자

◇모비스→현대차→기아→모비스…정의선 체제 떠받치는 순환고리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축은 현대모비스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2%대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현대차는 기아 지분 약 34%를 갖고 있다. 기아는 다시 현대모비스 지분 17.66%를 보유한다.

세 회사가 서로의 최대주주 또는 주요 주주로 연결된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형태의 환상형 출자구조다. 현대모비스를 지배하면 현대차와 기아를 거쳐 그룹 핵심 사업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정 회장의 핵심 계열사 직접 지분율은 높지 않다. 정 회장은 현대차 지분 2.73%, 기아 지분 1.78%, 현대모비스 지분 0.33%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총수로서 경영을 주도하고 있지만 지분만 놓고 보면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은 제한적이다.

반면 정 명예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대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이 지분이 정 회장에게 증여되거나 상속되면 현대모비스에 대한 직접 지배력은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수조원대로 평가되는 지분을 이전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도 승계 재원으로 거론된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약 20%를 보유하고 있다. 물류·해운·자동차운반선 사업 성장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질 경우 일부 지분을 매각하거나 현대모비스 지분과 교환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개인 지분 20%를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잠재적인 재원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2021년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당시 개인 자금을 투입했다. 향후 기업공개와 기업가치 상승이 현실화하면 보유 지분을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나 승계 재원 마련에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대글로비스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활용한 지배구조 개편은 시장에서 거론되는 시나리오일 뿐 현대차그룹이 공식화한 계획은 아니다.

개정 상법 아래에서는 총수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그룹 핵심 회사가 인수하거나 주식교환에 활용하는 과정도 더욱 엄격한 검증을 받게 된다. 거래가격과 교환비율이 정 회장에게 유리하고 일반주주에게 불리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해당 거래를 승인한 이사들이 충실의무 위반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정 회장에게는 승계 재원을 마련하는 일과 함께 거래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각 회사 주주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2018년 주주 반발에 개편안 철회…더 높아진 공정성 문턱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계획대로라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정 회장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합병비율과 사업가치 평가가 현대모비스 일반주주에게 불리하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비롯한 해외 주주와 국내 기관투자자,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까지 반대 의견을 내면서 현대차그룹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개편안을 자진 철회했다.

이 경험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총수 일가와 계열사가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더라도 합병이나 분할의 경제적 타당성을 외부 주주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개편안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개정 상법 시행으로 거래를 승인하는 이사들의 부담은 당시보다 커졌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면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이사회는 각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룹 지배구조 단순화나 경영 효율성만으로 거래를 정당화하기도 어려워졌다. 합병비율과 분할 대상 사업의 가치, 주식교환 조건, 개편 이후 예상되는 기업가치 상승분을 주주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는다면 2018년보다 높은 수준의 절차적 정당성과 경제적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현대차·기아 서울 양재동 사옥. /현대차그룹

◇독립이사 7명이 과반…정의선은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현대차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과 독립이사 7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독립이사가 전체 이사의 과반을 차지한다.

사내이사는 정 회장과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 사장, 진은숙 사장, 이승조 부사장, 최영일 사장이다. 독립이사는 심달훈·이지윤·장승화·최윤희·김수이·도진명·벤자민 탄 이사로 구성됐다.

정 회장은 현대차 대표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그룹 총수와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을 겸하면서 회사의 주요 경영전략과 이사회 운영을 함께 주도하는 구조다.

현대차는 지난해 독립이사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선임독립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선임독립이사는 독립이사 회의를 주재하고 독립이사와 경영진 사이의 의사소통을 조율하며 이사회 운영에 관한 의견을 제시한다.

감사위원회와 지속가능경영위원회, 보상위원회,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주요 위원회에서도 독립이사가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다만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구조에서는 경영진을 감독해야 하는 이사회가 최고경영자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개정 상법은 독립이사에게 총수나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할 책임을 부여한다. 정 회장이 추진하는 대규모 투자와 계열사 간 거래, 지배구조 개편 역시 독립이사들의 별도 검증과 동의를 거쳐야 한다.

정 회장이 이사회를 주도하는 리더십도 안건을 통과시키는 힘보다 독립이사에게 경영 판단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방향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년 독립이사 두 자리 교체…집중투표제 첫 시험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심달훈·이지윤 독립이사의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다.

두 자리의 후임을 동시에 선임하는 형태로 안건이 구성되면 현대차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후 첫 본격적인 이사 선임 절차를 밟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복수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한 주식 수에 선임할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는 의결권을 여러 후보에게 나눠 행사하거나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현대차는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의 지분 비중이 높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와 해외 연기금·자산운용사,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판단에 따라 후보별 찬성률이 달라질 수 있다.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선출 과정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합산 3%로 제한된다. 정 회장과 현대모비스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전체 지분을 활용할 수 없어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커진다.

주주가 추천하거나 지지한 후보가 현대차 이사회 또는 감사위원회에 진입하면 계열사 내부거래와 대규모 투자, 합병·분할, 그룹 내 자금 지원에 대한 감시도 강화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에는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와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마다 별도의 이사회가 존재한다. 정 회장이 세 회사의 등기이사로 참여하더라도 각 이사는 자신이 속한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그룹 전체에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계열사에 비용이나 위험을 집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정 회장은 하나의 그룹 전략을 각 회사 주주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개별적인 이익으로 설명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미국 로보틱스메타플랜트응용센터(RMAC)에서 자동차 제조 작업을 학습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로봇·수소·미국 투자…‘그룹 시너지’만으로 부족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제조기업에서 로봇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수소, 도심항공교통을 아우르는 모빌리티그룹으로 전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배터리 생산단지를 비롯해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 소프트웨어 계열사 포티투닷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와 미국 통상정책 변화에 대응해 하이브리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현지 공급망을 구축하는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투자금을 부담하는 개별 상장회사 주주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 투자 위험과 예상 수익이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사이에서 어떻게 배분되는지가 중요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당시에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정 회장이 각각 자금을 투입했다. 향후 추가 출자나 지분 거래가 추진되면 각 회사 이사회는 투자 조건과 기업가치, 예상 수익률을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실적이 부진한 미래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우량 계열사의 자금을 계속 투입하거나 총수가 보유한 지분을 계열사가 높은 가격에 인수한다면 주주와의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개정 상법 아래에서는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이나 ‘그룹 시너지’라는 설명만으로 이사회의 판단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해당 투자가 자금을 부담하는 회사와 전체 주주에게 어떤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정 회장의 모빌리티 전환도 기술 경쟁력과 투자 규모뿐 아니라 계열사 간 자본 배분의 공정성, 독립이사와 외부 주주에 대한 설득력으로 평가받게 됐다.

◇‘순환출자로 이어진 정의선’에서 ‘주주가 선택한 정의선’로

개정 상법 시행이 당장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흔드는 것은 아니다. 정 회장은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로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완성차 사업의 실적과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도 정 회장의 경영 리더십을 뒷받침한다.

기존 순환출자도 법적으로 인정되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당장 이를 해소해야 할 의무는 없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당분간 그룹 지배력의 안전판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승계하고 정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완성하려면 순환출자 문제를 계속 미뤄두기는 어렵다.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와 승계 재원 마련, 순환출자 해소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개편안 철회는 지배구조 개편이 총수와 그룹의 판단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개정 상법 이후에는 거래의 결과뿐 아니라 설계 과정에서부터 각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이 반영됐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동시에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배력을 높여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며 “2018년에는 그룹이 마련한 개편안을 주주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설계 단계부터 각 회사 주주의 이익을 반영해야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정 회장이 보유한 자산이나 동원할 수 있는 자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과 해외 기관투자자, 소수주주가 거래 조건의 공정성과 개편 필요성을 인정하느냐가 정 회장 체제를 완성하는 마지막 관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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