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신경은 우리 몸 모든 곳을 연결하는 ‘정보 통신망’이다. 뇌와 척수, 근육, 장기 모두 신경을 통해 운동 명령이 이뤄지고 구동한다. 때문에 신경이 망가진다면 단순한 감각 저하를 넘어 신체 기능 자체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손상된 신경을 치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신경세포의 매우 낮은 재생능력, 복잡한 해부학적 구조, 억제 환경 등 복합적 문제가 원인이다. 이때 과학·의학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기술 분야가 있다. 바로 ‘인공 신경도관’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끊어진 신경 사이를 이어주는 것을 넘어, 손상된 신경이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최근에는 생분해성 소재, AI, 전기자극·성장인자 등 차세대 기술 기반으로 급격한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 신경 끊어진 쥐의 다리, ‘3D프린터’로 만든 인경 신경도관이 살렸다
먼저 ‘인공 신경도관(Nerve Guidance Conduit·NGC)’이란 손상돼 끊어진 신경 사이를 통로로 연결, 신경섬유의 재생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유도하는 기술이다. 신경세포 재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의학 기술로 주목도가 높다.
현재 끊어진 신경 재생은 ‘자가신경이식’이 대표적 기술이다. 환자 몸에서 채취한 자가신경을 손상 부위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면역거부 위험이 낮고 신경 재생에 필요한 구조적·생물학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장점이다.
이 같은 장점에 자가신경이식은 현재 말초신경 손상의 표준 치료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식에 필요한 신경의 길이와 양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정상 신경을 추가로 손상시키는 것도 단점이다.
반면 인공 신경도관은 정상 신경을 따로 채취하지 않는다. 생체적합성 소재로 손상 부위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신경 재생을 유도한다. 즉, 기존 자가신경이식의 한계인 자원 부족과 신경 손상을 최소화해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인공 신경도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와 관련한 가장 대표적 연구는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UCSD)’ 연구진의 발표를 꼽을 수 있다. 연구팀은 생체적합성 소재를 이용, 여러 개의 미세 통로를 갖춘 신경도관을 만들었다. 소재는 폴리에틸렌글리콜 디아크릴레이트(PEGDA)와 젤라틴 메타크릴로일(GelMA)을 결합한 복합 하이드로젤이다.
10㎛ 수준의 매우 얇은 생체도관은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제작했다. 제작 시간은 수분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이 인경 신경도관을 신경이 절단된 실험용 쥐 좌골신경에 삽입, 경과를 관찰했다. 17주간의 관찰 결과, 생쥐는 전체적인 운동기능을 신경 손상 전 수준까지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기능 회복 능력도 기존 자가신경이식 방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UCDS 연구팀은 “말초신경 손상 치료를 위한 효과적인 신경유도관의 필요성이 임상적으로 대두되고 있다”며 “이번 신경도관 연구는 임상 적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으로 향후 인체 대상 연구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실제 신경처럼 ‘다발형’으로… KIST의 차세대 신경도관
인공 신경도관과 관련, 주목할 만한 주요 연구는 국내 연구진도 보유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진은 16일 ‘다발형 인공 신경도관(MFNGC)’을 새롭게 개발했다. 생체재료연구센터 정영미 책임연구원 연구팀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박종웅 교수 연구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와 공동 진행했다.
인간의 말초신경은 가는 신경섬유들이 여러 다발을 이루는 구조다. 현재 개발된 기존 인공 신경도관은 대부분 속이 빈 단순한 관 형태다. 때문에 새로 자라는 신경이 방향을 찾도록 세밀한 조정이 어렵다. 이에 KIST 연구팀은 실제 신경처럼 신경도관에도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어주는 다발형 구조를 고안했다.
먼저 KIST 연구진은 사람의 손과 구조·기능이 유사한 붉은털원숭이 손목의 신경구조를 분석했다. 그 다음, 하나의 큰 도관 안에 세 개의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도관 바깥쪽은 유연성이 높은 고분자 소재(PLCL)로, 내부는 3개의 작은 통로로 구성했다.
새로 고안한 다발형 인공 신경도관은 붉은털원숭이의 손목 정중신경 15mm 결손 부위에 이식됐다. 그 다음, 12개월간 신경 재생, 손 기능 변화를 추적·관찰했다. 실험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 움직임과 운동장애가 개선됨을 확인했다. 신경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근육 반응 측정 검사에서도 수술 6개월 이후부터 신호가 다시 나타났다.
특히 12개월 뒤, 도관 내부에서 새로 자란 신경은 실제 신경처럼 여러 다발로 정돈됨을 확인했다. 연구진이 고안한 다발형 도관이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는 의미다.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도 다시 형성됐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 도관 소재 PLCL의 분자량은 생체 내에서 자연분해 돼 이식 전보다 약 94% 감소했다. 만성 염증 등 부정적 반응도 관찰되지 않았다.
졍영미 KIST 책임연구원은 “사람의 손과 구조가 유사한 영장류에서 실제 신경의 다발 구조를 본뜬 인공 신경도관의 재생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검증 규모를 확대해 국산 신경재생 의료기기의 임상 적용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이영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내 의료기기와 바이오소재 기술의 임상 전환을 위한 영장류 기반 유효성 검증을 지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시장 성장 기대감↑… 북미·아시아 지역 시장 성장 주도 예상
우수한 성능, 자가신경이식의 단점을 보완할 것이란 기대감이 인공 신경도관 기술 시장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글로벌 의료·헬스케어 시장조사업체 ‘투워드헬스케어(Towards Healthcare)’에 따르면 인공 신경도관 기술 시장 규모는 오는 2034년 4억3,055만달러(약 5,933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시장 성장률은 10.4% 수준이다.
투워드헬스케어는 “손상된 신경을 복구하는 신경 도관의 잠재력은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고 그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새로운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며 “많은 연구자들이 신경 도관 제작을 위해 새로운 소재 또는 나노소재의 활용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지역은 ‘북미’다. 미국·캐나다 등 글로벌 핵심 바이오 연구기관·기업들이 다수 포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NINDSS)’ 지난 2022년부터 인공 신경도관 연구 및 개발, 관련 교육 분야에 25억1,300만달러(약 3조4,674억원)을 투자했다. 앞서 예상되는 시장 성장 규모보다도 6배 많은 수치다.
실제 사업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말초신경 재생·복구 전문 의료기기·바이오 기업 ‘엑소젠(Axogen)’은 지난해 매출이 2억2,520만달러(약 3,105억원)으로 전년 대비 20.2% 늘었다. 올해는 최소 24%의 매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엑소젠에서는 인공 신경도관을 포함, 동종신경이식재·신경보호재·커넥터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시장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는 ‘인구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 특히 중국의 경우 국가 핵심 연구 개발로 인공 신경도관을 포함하고 있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는 “말초신경 손상의 증가, 첨단 신경 복구 솔루션에 대한 수요 증가, 생체공학재료의 지속적 개발에 힘입어 신경도관 시장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시장 성장 주요 트렌드로는 2차 수술 없이 자연적인 신경 재생을 지원하는 생분해성 및 생체 흡수성 신경도관이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산업 및 기술 개발은 특히 북미와 유럽에서의 투자 증가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 지역에서는 선진적인 의료 인프라와 신경 복구 기술에 대한 인식 제고가 새로운 최첨단 제품의 출시를 촉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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