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요즘 점심 한 끼 먹기가 겁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직장인들이 즐겨 찾던 식당의 점심 메뉴는 어느새 1만원을 훌쩍 넘겼고, 커피 한 잔까지 더하면 한 끼에 2만원 가까이 쓰는 일도 낯설지 않다. 그래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는 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 현상을 점심값에만 가둬 두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오르는 것은 점심만이 아니다. 아침도 저녁도, 장바구니에 담기는 거의 모든 먹거리가 오른다. 그래서 지금은 점심에 국한된 런치플레이션이 아니라, 먹는 일 전체가 비싸지는 '잇플레이션(Eat-flation)'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먹는다는 뜻의 'Eat'에 물가 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을 더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뼈아픈 역설이 하나 숨어 있다. 먹거리 물가는 이렇게 오르는데, 정작 제대로 된 한 끼는 점점 더 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가에 쫓긴 사람들의 선택은 대개 비슷하다. 밥보다 싸 보이는 쪽으로 옮겨 간다. 쌀밥 대신 밀가루 음식으로, 정성 들여 차린 상 대신 간편식과 간식으로. 한 끼를 제대로 차리기보다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으로 때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더 싼 선택일까.
찬찬히 따져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에서 지은 밥 한 공기를 중심으로 한 끼를 구성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반면 간편식과 간식은 한 번의 값은 작아 보여도 자주 사고 자꾸 덧붙이게 된다.
빵을 먹고 나서 다시 출출해 커피와 디저트를 더하고, 부족한 한 끼를 야식으로 메우기도 한다. 낱낱의 지출은 작지만 합치면 결코 작지 않다. 싸다고 여겨 택한 길이 오히려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잇플레이션 시대의 아이러니다.
이 아이러니의 끝에서 우리는 점점 더 공장에서 만든 것을 찾게 된다. 균일하고, 저장이 쉽고, 언제 어디서나 비슷한 품질로 만날 수 있는 가공식품. 편리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장의 먹거리는 분명 강점이 있다. 다만 그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밥이 본래 어디에서 오는지를 잊는다.
밥은 공장이 아니라 땅에서 온다. 어느 논에서 자란 쌀, 어느 바다에서 걷어 올린 김, 어느 밭에서 자란 나물. 밥상은 본래 그 로컬의 땅과 바다가 차려 주는 것이었고, 신토불이란 바로 그 사실을 일깨우는 말이었다. 우리가 사는 땅에서 난 것을 먹는다는 오래된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잇플레이션은 이 익숙했던 밥상의 풍경마저 흔들고 있다.
여기에 쉽게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 있다. 먹거리가 원물과 멀어질수록 정작 그것을 길러 내는 로컬은 힘을 잃을 수 있다. 밥상에서 지역의 식재료가 자리를 잃는 사이, 이를 길러 내는 생산자의 설 자리도 함께 좁아진다. 애써 길러도 제값을 받지 못하면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지역의 생산 기반도 약해진다. 생산 기반이 약해지면 공급은 불안해지고 가격 변동은 다시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싸고 편하게 먹으려던 선택이 돌고 돌아 우리 밥상의 지속 가능성을 흔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장은 로컬의 힘을 잃게만 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공장은 로컬을 살려 내는 힘을 키워 주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농산물은 생산량과 날씨에 따라 가격이 크게 출렁인다. 풍년이 들면 값이 떨어져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생산량이 부족하면 값이 뛰어 소비자가 부담을 진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불안한 이 수급 문제를 제철 원물 중심의 유통만으로 충분히 흡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바로 그 '공장'에 있다. 원물과 이어진 식품산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로컬에서 난 농산물을 저장성과 활용도를 높이는 기술로 가공해 분말과 소스, 간편식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생산량이 많을 때 가공해 저장하고 필요한 시기에 소비함으로써 수급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외형이나 크기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지던 원물도 새로운 가치를 얻고, 생산자에게는 또 하나의 안정적인 판로가 생긴다.
공장이 원물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 공장은 로컬을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로컬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것이 푸드테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푸드테크라고 하면 인공지능이나 로봇, 첨단 제조시설부터 떠올리기 쉽다. 물론 그것도 푸드테크다. 하지만 기술의 목적은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
땅에서 난 것을 더 오래 먹을 수 있게 하고, 버려질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 생산자에게는 안정적인 판로를, 소비자에게는 합리적인 한 끼를 돌려주는 것. 기술이 원물과 로컬을 만날 때 비로소 우리의 밥상을 지키는 기술이 된다.
그러니 잇플레이션은 단지 지갑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결국 누가 그것을 생산하고, 어떤 땅에서 계속 생산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로컬의 생산자가 버틸 수 있어야 지역의 식재료가 살아남고, 그래야 우리의 밥상도 지속될 수 있다. 결국 밥을 지킨다는 것은 그 밥을 만들어 내는 땅과 사람을 함께 지키는 일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밥을 먹는 일, 그리고 그 밥이 어느 땅에서 왔는지 한 번 더 헤아리는 일. 로컬의 원물을 살려 낸 것을 골라 드는 작은 선택이 생산자를 살리고 지역의 먹거리를 이어 간다. 그것이 멀리 있는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밥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식량주권이다.
잇플레이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어쩌면 '싼 한 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한 끼'인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에는 밥 한 공기를 지어, 그 밥이 어느 땅에서 왔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권한다.
다음 끼니에 뵙겠습니다.

- ㈜ 잇더컴퍼니 대표
- 제주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 서울대학교 푸드테크 최고책임자과정
수료 및 월드푸드테크협의회 정회원
전) 매일유업 조리식품 브랜드매니저
전) WK 마케팅그룹 브랜드컨설팅 컨설턴트
전) 한화 S&C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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