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자사주 모두 소각하는 샘표… ‘해묵은 과제’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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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표가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 샘표
샘표가 보유 중이던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 샘표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중견 식품기업 샘표가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정책에 따른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자사주 보유 비율이 29.9%에 달했던 데다, 오랜 세월 경영권 방어 및 최대주주 지배력 강화에 활용돼 온 만큼 ‘해묵은 과제’를 털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쏠쏠하게 활용했던 자사주, 제도 개선에 결국 소각

샘표는 지난 9일, ‘주식소각 결정’을 공시했다. 이날 이사회를 통해 보유 중인 자사주 86만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분 기준으로는 29.9%에 해당한다. 이사회 결의 전날 종가 기준 370억원 규모이며, 장부가액은 263억원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도입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후보 시절부터 자본시장 개혁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은 자사주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며 악용을 막기 위한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자사주는 주주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회사 가치는 그대로인 가운데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주가치가 상승하게 된다. 반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며 경영권 방어나 승계 등에 활용하는 경우엔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

이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연이은 상법 개정으로 자본시장 개혁에 박차를 가해온 정부·여당은 지난 2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도 실행에 옮겼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이 개정안에 따르면, 자사주는 취득 1년 이내에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임직원 보상이나 경영상 목적 등 예외적인 자사주 활용이 필요한 경우엔 주총을 통해 자사주 보유처분계획을 승인받아야 한다. 아울러 기존에 보유 중이던 자사주의 경우 법 시행 시점을 기준으로 1년 6개월 내에 소각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했다.

이처럼 자사주 관련 제도 개선이 예고되고 실제 단행되면서 주식시장에선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주목을 받았다. 자사주 소각 등에 따른 주주가치 상승이 기대되면서 주가가 들썩인 것이다. 또한 제도 도입에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사주를 처분하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샘표는 자사주 보유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을 뿐 아니라 이를 경영권 방어 등에 활용하기도 했다. / 샘표
샘표는 자사주 보유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을 뿐 아니라 이를 경영권 방어 등에 활용하기도 했다. / 샘표

샘표 역시 자사주 관련 제도 개선 움직임 속에 주목받은 기업 중 하나다. 자사주 보유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다만, 샘표는 선제적인 자사주 처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법 시행 이후에도 뚜렷한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올해 반기보고서를 통해서도 샘표는 “상법에서 규정한 자사주 의무 소각 기한 도래 이전에 처분 또는 소각 장기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며 현재는 처분 및 소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주주가치 제고, 재무 건전성 강화, 주가안정 및 경영상 목적 달성 등을 위해 시장 상황과 당사의 성장 가능성, 재무적 여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자사주 처분 및 소각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상당한 규모의 자사주가 앞서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및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도 샘표를 더욱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샘표는 1990년대 후반 오너일가 2세 이복형제 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으며, 당시 박진선 현 샘표 대표의 부친인 고(故) 박승복 회장이 승리했다. 하지만 2000년 중반 이복형제 측이 지분을 사모펀드에 넘기면서 또 한 차례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다. 

이 같은 경영권 분쟁을 매듭지은 건 다름아닌 자사주였다. 샘표가 300억원 규모의 공개매수를 통해 자사주를 대거 매입했고, 경영권 분쟁 상대도 공개매수에 응하면서 갈등이 해소된 것이다. 

샘표의 자사주는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유지 및 강화하는데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샘표는 2010년대 중후반 지주사 전환을 단행했는데, 자사주가 이 과정을 한결 수월하게 해준 것이다. 분할 과정에서 지주사가 자사주를 모두 승계해 큰 비용 지출 없이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고 지주사 요건도 충족할 수 있었다. 특히 기존 자사주에 없던 의결권이 지주사 보유 지분엔 부여돼 소위 ‘자사주 마법’이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샘표는 소각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 없이 자사주를 계속 거머쥐고 있었다. 오히려 2022년과 2023년 자사주를 추가 매입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자사주를 승계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자사주 관련 제도 개선이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전량 소각이란 결말을 맞게 된 모습이다. 이로써 샘표는 14년 만에 자사주 관련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의 대표주자였던 샘표가 전량 소각이란 결단을 내린 가운데,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기업들의 행보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 보유 중이던 자사주의 소각 기한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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