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빅4, 주주권 시대②] 이재용의 ‘1.65% 지배력’…이사회 밖 리더십 시험대

마이데일리

[편집자주] 총수 일가가 제한적인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이사회가 이를 뒷받침해 온 대기업 경영 방식에 변화가 시작됐다. 개정 상법은 이사의 책임을 전체 주주로 확장하고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자사주를 활용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전통적인 경영권 방어 방식도 제약을 받는다. 총수의 지배력은 앞으로 지분율뿐 아니라 이사회와 주주의 동의를 끌어내는 능력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마이데일리는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개정 상법이 이사회 운영과 총수 리더십, 향후 승계 구도에 가져올 변화를 살펴본다.

이재용 삼성그 회장. /뉴시스

[마이데일리=윤진웅 기자]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전자 이사회에 없다. 삼성전자 직접 지분도 1.65%에 그친다. 대신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 20.82%를 토대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장악하고 있다.

적은 직접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이끄는 삼성의 지배구조가 2차 개정 상법 시행을 계기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에 따라 최대주주가 회사 측 이사 후보의 선임을 주도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정관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하며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현재 이사회 구성원 8명 가운데 5명을 독립이사로 채우고 이사회 의장도 독립이사에게 맡겼다.

변화의 파장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체화할 전망이다. 신제윤 이사회 의장과 조혜경 독립이사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서다. 후임 선임 방식에 따라 소수주주와 기관투자자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도 가늠할 수 있다.

개정 상법이 이 회장의 경영권을 당장 흔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계열사 지분을 통한 지배력만으로는 이사회의 동의를 안정적으로 끌어내기 어려워졌다. 주주와 독립이사를 설득해 경영 판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능력이 이재용식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1.65%·삼성물산 20.82%…지배력의 출발점은 물산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는 약 9741만주다. 전체 보통주의 1.65% 수준으로 그룹 총수라는 위상에 비하면 직접 지분율은 높지 않다.

삼성전자에 대한 이 회장의 영향력은 직접 지분보다 계열사 간 출자구조에서 나온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다.

이 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지난해 말까지 19.76%였다. 올해 초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전량인 1.06%를 이 회장에게 증여하면서 지분율은 20.82%로 높아졌다.

삼성그룹의 핵심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약 8.5%를 가진 최대주주이며 삼성물산도 삼성전자 지분 5.01%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과 총수 일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전체의 17% 안팎이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에 직접 투자한 지분보다 계열사를 통해 확보한 우호 지분의 영향력이 훨씬 큰 구조다.

이 가운데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동시에 연결하는 핵심 축이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 최대주주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전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홍 명예관장의 지분 증여 역시 이 회장에게 삼성물산 지분을 집중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을 공고히 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삼성전자에서는 총수 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모두 더해도 독자적으로 주총 의결권을 좌우하기 어렵다. 외국인과 국내외 기관투자자의 지분 비중이 큰 만큼 주요 이사 선임과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는 외부 주주의 지지가 필요하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이러한 삼성전자의 지분 구조에서 더욱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총수 측이 보유한 지분율만으로 이사회 구성을 사실상 결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후보별로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의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이사가 이사회 과반…이재용은 7년째 이사회 밖

삼성전자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과 독립이사 5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됐다. 독립이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내이사는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과 노태문 대표이사 사장, 김용관 사장이다. 독립이사는 신제윤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조혜경·김준성·허은녕·이혁재 이사로 구성됐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도 분리돼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데 이어 2020년부터 독립이사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겼다.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한 조치다.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김용관 사내이사와 감사위원이 되는 허은녕 독립이사가 새로 선임됐다. 김 사내이사 선임안에는 출석 주식의 94.07%, 허 독립이사 선임안에는 85.56%가 찬성했다.

반면 그룹 총수인 이 회장은 삼성전자 이사회 구성원에 포함돼 있지 않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미래 사업 발굴 등 주요 전략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사회 표결과 그에 따른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나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로 확대되면서 이사회 구성원들의 판단 기준도 달라졌다. 총수나 경영진이 추진하는 사업이라도 개별 이사는 해당 결정이 삼성전자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계열사 간 거래나 합병·분할, 대규모 자산 매각처럼 총수의 지배력과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은 더욱 엄격한 검토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룹 전체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삼성전자 주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불분명하면 이사회가 결정의 근거를 별도로 설명해야 한다.

이 회장이 이사회 밖에서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등기이사들이 이를 심의·의결하는 현재 방식도 제도 변화에 맞춰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뉴시스

◇집중투표제 받아들인 삼성…내년 3월 첫 표 대결 가능성

삼성전자는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에 있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했다. 해당 안건은 99.95%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2차 개정 상법 시행에 앞서 정관을 정비한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복수의 이사를 동시에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 주식에 선임 대상 이사 수를 곱한 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는 확보한 표를 여러 후보에게 나눠 행사하거나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집중하면 최대주주 측이 추천하지 않은 인사도 이사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생긴다. 한 번에 선임하는 이사가 많을수록 소수주주가 최소 한 명을 당선시킬 가능성도 커진다.

삼성전자는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없애는 동시에 이사의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로 변경했다. 회사는 경영상 필요와 이사회 운영 계획에 따라 이사별 임기를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됐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사의 임기 만료 시점을 분산하면 집중투표제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차례 주총에서 선임하는 이사 수가 줄어들면 소수주주가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필요한 지분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첫 시험대는 내년 3월 주총이 될 전망이다. 신제윤 이사회 의장과 조혜경 독립이사의 임기가 만료될 예정인 만큼 삼성전자는 후임 독립이사 선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

두 명을 한꺼번에 선임하는 안건이 구성된다면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열린다. 반대로 후보별 선임 방식과 임기가 다르게 설계되면 집중투표제의 영향은 제한될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도 부담이다.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뽑을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보유 지분을 모두 합쳐 발행주식 총수의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총수 일가와 계열사가 삼성전자 지분 17% 안팎을 보유하고 있어도 감사위원 선출에서는 영향력이 크게 제한되는 것이다.

올해 허은녕 독립이사 선임안의 찬성률이 다른 주요 안건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후보의 전문성과 독립성, 기존 이사회 활동 등에 따라 해외 기관투자자와 의결권 자문사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회사가 추천한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안정적인 선임을 장담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어떤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고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주주를 어떻게 설득하는지가 이사회 주도권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사법 리스크 벗어난 이재용…등기이사 복귀 선택지 부상

이 회장은 2016년 10월 삼성전자 임시 주주총회에서 95.98%의 찬성률로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등으로 삼성전자가 위기를 맞은 시점에 이사회에 직접 참여해 책임경영에 나선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회장은 2019년 10월 임기가 만료된 뒤 재선임되지 않았다. 이후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고 그룹의 대규모 투자와 사업 재편을 이끌었지만 삼성전자에서는 7년째 미등기 임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사법 리스크가 등기이사 복귀를 제약한 주요 배경으로 꼽혔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를 둘러싼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등기이사 복귀를 가로막던 사법적 부담은 사실상 해소됐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책임이 강화되면서 이 회장이 경영 판단과 법적 책임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지난 2월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 책임경영을 하는 것이 지배구조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 사내이사로 복귀하면 반도체 투자와 대형 인수합병, 계열사 거래 등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경영 성과뿐 아니라 이사회가 내린 결정의 법적 책임도 다른 이사들과 함께 부담하게 된다.

반론도 있다. 이 회장이 등기이사가 아니더라도 그룹 총수이자 최대주주로서 대규모 투자와 사업 재편에 대한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논리다. 삼성전자 이사회에 들어가면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그룹 전체 현안을 조율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최대주주이자 총수로서 이미 법적·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며 “등기이사 복귀가 곧 책임경영 강화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지분 변수까지…기존 지배구조 개편은 고난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삼성물산과 함께 주목해야 할 계열사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약 8.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를 잇는 핵심 연결고리다.

국회에서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 논의가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가치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도록 법이 바뀌면 삼성생명은 총자산 대비 보유 한도를 맞추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처분해야 할 수 있다.

보험업법 개정 여부와 실제 처분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줄이면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안 마련도 쉽지 않다. 과거에는 계열사 합병이나 분할, 주식교환 등을 통해 총수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었지만 개정 상법 아래에서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지배구조 개편이 회사에는 이익이 되더라도 총수 일가와 일반주주 사이에 이익이 불공평하게 배분되면 이사들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합병비율과 주식교환 조건, 계열사 자산 거래의 적정성도 이전보다 엄격한 검증을 받게 된다.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 여지도 좁아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주총에서 자기주식 보유·처분계획을 승인받았다. 자사주를 계속 보유하거나 임직원 보상 등에 활용하려면 목적과 수량, 처리 방식을 공개하고 주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매각해 의결권을 확보하거나 인적분할 과정에서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도 활용하기 어려워졌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를 손질하려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안정뿐 아니라 각 상장회사와 전체 주주가 얻게 될 이익을 입증해야 한다.

/뉴시스

◇주주가 온다…이재용 리더십도 ‘장악’에서 ‘설득’으로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삼성물산 지분 20.82%를 확보한 데다 총수 일가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도 여전히 견고하다.

집중투표제가 시행된다고 소수주주 추천 후보가 곧바로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후보 추천 절차를 밟고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주주의 지지를 결집해야 실제 당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가 이미 독립이사 중심의 이사회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급격한 변화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곧바로 총수의 경영권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총수 일가의 지분과 계열사 간 연결고리가 자연스럽게 이사회 장악력으로 이어지던 시대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독립이사와 감사위원은 총수의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판단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 회장에게도 반도체 경쟁력 회복과 인공지능 투자, 대형 인수합병 등 미래 전략을 제시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 결정의 타당성을 이사회와 주주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업 성과만큼 의사결정 절차와 주주 간 이익 배분이 중요해진 것이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는 달라진 제도가 삼성전자 이사회에 미칠 영향을 확인하는 첫 시험대다. 독립이사 후보와 이사 임기, 감사위원 선임 방식에 따라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의 영향력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여부도 삼성의 선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수 있다. 이사회 밖에서 그룹 전체를 조율하는 현재 방식을 유지할지, 이사회 안으로 들어가 권한과 책임을 함께 부담할지가 향후 지배구조의 방향을 가를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개정 상법이 총수의 경영권을 곧바로 무너뜨리는 제도는 아니지만 이사회와 주주를 대하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며 “이 회장에게도 보유 지분과 계열사 지배력을 넘어 장기 전략에 대한 주주의 신뢰와 독립이사의 동의를 끌어내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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