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호빈 기자] 췌장암은 국내 주요 암 가운데서도 예후가 좋지 않은 암으로 꼽힌다.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발견이 늦는 경우가 많고, 진단 당시 수술이 가능한 환자도 20~30% 수준에 그친다.
다만 최근에는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한 뒤 수술 가능성을 높이는 치료 전략이 확대되고 새로운 표적치료제도 등장하면서 치료 선택지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5일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한 췌장암 환자는 9748명으로 전체 암 가운데 8번째로 많았다. 사망자 수 기준으로는 폐암과 간암, 대장암에 이어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특히 2019~2023년 전체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이 73.7%인 데 비해 췌장암은 17.0%에 머물렀다. 1993~1995년보다 6.3%포인트 높아졌지만 여전히 주요 암 가운데 생존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췌장암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으로는 흡연과 당뇨병, 만성췌장염, 가족력, 육류와 지방이 많은 식습관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흡연은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된 위험요인이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2~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흡연과 관련된 췌장암은 전체 발생의 약 20%를 차지한다.
당뇨병도 주의해야 한다. 당뇨병 자체가 췌장암 위험을 높일 수 있지만 반대로 췌장암 때문에 당뇨병이 새롭게 발생하기도 한다. 성인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당뇨병이 생기거나 기존 당뇨 환자에게 체중감소와 복통, 황달, 식욕부진 등이 동반되면 췌장 질환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족력 역시 중요한 위험인자다.
김완배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가족력은 췌장암 발생 원인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직계 가족 가운데 췌장암 환자가 2명인 경우 발생 위험이 6.4배, 3명인 경우에는 32배까지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며 “직계 가족 중 환자가 2명 이상이라면 전문의와 상담해 주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췌장암이 위험한 이유는 초기에 뚜렷한 신호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식욕부진이나 복통 등 비교적 흔한 소화기 증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질환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기 쉽다. 이 때문에 진단 당시 암이 이미 주변 조직이나 다른 장기로 진행된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암이 췌장에 국한된 경우 47.8%지만 주변 장기나 인접 조직, 림프절까지 침범하면 23.5%로 떨어진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원격 전이 단계에서는 2.4%에 불과하다.
비교적 먼저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은 식욕부진이다. 복통이나 황달이 나타나기 수개월 전부터 식욕이 떨어지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식욕 감소만으로 췌장암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복통은 환자의 약 70%에서 나타난다. 주로 명치 주변을 비롯한 복부 중앙과 위쪽에 통증이 생기며, 통증이 지속되면서 등 쪽으로 퍼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이 장기간 이어지거나 점차 심해진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췌장암 환자의 약 절반에서 나타나며 눈의 흰자위나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도 주요 신호다. 특히 췌장 머리 부분에 암이 발생하면 종양이 담관을 막으면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황달이 나타날 수 있다.
췌장암 치료에서는 수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양을 완전히 절제할 수 있다면 현재까지 생존기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는 치료법으로 평가된다.
암이 췌장에 국한돼 바로 절제가 가능한 경우 수술 후 보조 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췌장 머리에 암이 생기면 췌장 머리와 십이지장, 담도, 담낭 등을 함께 절제하는 췌십이지장절제술을 주로 시행한다.
최근에는 처음부터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게 항암치료를 먼저 시행하는 ‘선행 항암치료’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항암치료를 통해 종양 크기를 줄이거나 진행을 억제한 뒤 수술 가능성을 다시 판단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국소 진행성 췌장암에서 수술을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항암치료 후 종양을 줄이거나 진행을 억제한 뒤 수술하는 치료 전략을 통해 적극적인 치료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치료제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먹는 췌장암 표적치료제 ‘라손크(성분명 다락손라십)’를 승인했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췌관선암 환자 가운데 기존 항암치료를 한 차례 이상 받았거나 여러 항암제를 함께 사용하기 어려운 성인 환자가 대상이다.
임상시험에서는 라손크를 투여한 환자의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이 13.2개월로 기존 항암화학요법을 받은 환자의 6.7개월보다 두 배 가까이 길었다. 암이 다시 진행되거나 환자가 사망하기까지의 기간도 7.2개월로 기존 치료군의 3.6개월보다 길었다.
라손크는 하루 한 차례 복용하는 알약이다. 다만 미국에서 책정된 30일치 도매 정가는 3만9800달러로 약 5500만원에 달한다.
치료가 까다로운 3기 이상 췌장암도 간담췌외과와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통해 최적의 치료 전략을 찾고 치료 이후 재발 여부를 면밀히 추적하면 생존율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예방을 위해서는 우선 담배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친 음주를 피하고 적색육과 가공육 섭취를 줄이는 등 식습관 관리도 필요하다. 당뇨병과 만성췌장염 역시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김 교수는 “흡연과 가족력 등 위험요인을 함께 가지고 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며 “췌장암은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지만 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술과 항암치료를 통해 생존기간을 늘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진단 이후에도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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