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투(夏鬪) 청구서 ①] 임금 넘어 경영까지 흔드는 ‘新노조’

마이데일리

[편집자주] 하투(夏鬪). 노조와 사측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집중되며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는 여름철 노동계 투쟁으로, 여기에는 한국 노사관계의 아젠다가 압축돼 있다. 올해 하투를 이끈 대표 아젠다는 ‘영업이익 N% 성과급’이다. 영업이익·순이익에 연동한 성과급 요구가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의 투자 재원 마련과 노노 갈등 해소, 사회적 기여 확대 등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지고 있다. 마이데일리는 올해 노사 임단협 타결 이후 산업계에 남겨진 부담과 구조적 현안을 짚어본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인근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 신년 투쟁 선포식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행진하고 있다. /금속노조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삼성전자 노조 총파업 타결 이후 본격화된 올해 여름 노동계 하투가 현대자동차 임금 및 단체협상 합의로 마침표를 찍고 있지만 산업계가 떠안은 청구서는 어느 때보다 무겁다.

단순한 임금 인상률을 넘어 영업이익·순이익에 연동한 성과급, 원·하청 교섭, 정년 연장 등 기업의 비용 구조와 노사관계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의제들이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 후 원·하청 근로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하는 새로운 판이 열리며 노사 갈등의 범위가 빠르게 넓어진 것도 부담이었다.

◇ SK하이닉스가 불붙인 ‘N% 성과급’, 산업계 전반으로 퍼져

올해 하투의 가장 뚜렷해진 변화는 성과급 산정 방식이다. 과거에는 임금 인상률이나 정액 성과급 등이 주된 쟁점이었다면, 올해는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를 성과급 재원으로 달라는 요구가 산업계 전반에서 등장했다.

발단은 SK하이닉스였다. 2021년 노사는 기존 경제적 부가가치(EVA) 방식 대신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상한 없이 10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영업이익 270조원대 추정에 임직원 1인당 평균 성과급 7억~8억원이 거론되면서, ‘영업이익 몇 %’라는 프레임이 업종 불문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다.

파장은 산업계 전반으로 번졌다. 현대차 노조는 순이익 30%를, HD현대중공업 노조도 영업이익 30%를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통신업계에서는 LG유플러스 노조가 영업이익 30%를 요구했고, 철강업계에서도 포스코가 격려금 600%를 요구하며 같은 흐름을 탔다.

정점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12월 11일 임금교섭을 시작했지만, 노조가 영업이익 15%를 상한 없이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하면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노조는 3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3.1% 찬성으로 쟁의권을 확보했고,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해외출장 귀국 후 공개 사과에 나서고 정부까지 중재에 뛰어드는 등 사태가 커졌지만, 예정된 총파업 개시를 코앞에 둔 5월 20일 밤 노사가 사흘간의 벼랑 끝 협상 끝에 잠정합의안에 서명하며 파국을 피했다. 조합원 74% 찬성으로 가결된 합의안에는 DS부문 영업이익의 12%를 재원으로 최장 10년간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금 대신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사 간 이견을 절충했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경기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크레인에 올라 투쟁사를 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이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뉴시스

문제는 이 같은 성과급 구조가 일회성 합의를 넘어 업계 전반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실적에 따라 보상 규모가 자동으로 커지는 구조가 확산하면 실적이 좋을 때는 비용 부담이 급증하고, 실적이 나빠질 때는 노사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발간한 ‘임금·HR연구’ 2026년 하반기호에서 ‘N분의 1’ 성과급 방식이 오히려 핵심인재 이탈과 조직 동기 저하를 부를 수 있다며, 직무가치·기여도 중심 보상체계 재설계를 주문했다.

고용노동부 통계로도 올해 1분기 상용근로자 월평균 명목임금은 455만5000원(전년 동기 대비 3.4%↑)이었지만, 물가 반영 실질임금은 384만7000원(1.3%↑)에 그쳤다. 인크루트가 직장인 1305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연봉 인상률은 7.5%로 전년(5.4%) 대비 뛰었지만, ‘인상됐다’는 응답 비율은 61.4%로 오히려 5.3%포인트 줄었다. 인상률은 오르는데 그 몫을 받는 사람은 줄어드는, 성과급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수치다.

결국 올해 하투에서 성과급은 단순한 임금 협상 의제를 넘어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 인지에 대한 문제로 확대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임금뿐 아니라 이익 배분 방식까지 노조와 협상해야 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진 셈이다.

금속노조 울산지부가 지난 7월 29일 울산시청에서 현대차를 상대로 원청교섭 요구에 응할 것과 부품사 하청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 ‘노란봉투법’ 시행 6개월…원·하청 리스크 현실화

지난 3월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도 올해 하투를 뒤흔든 핵심 변수였다. 개정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을 사용자 범위에 포함하고, 정리해고·아웃소싱 등 경영상 결정까지 쟁의행위 대상으로 확대했다.

파장은 시행 첫날부터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시행일 하루 동안 221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407개 하청 노조·지부·지회가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교섭단위 분리 신청도 31건에 달했다. 다만 즉시 교섭 절차를 공고한 원청은 한화오션·포스코·쿠팡CLS·부산교통공사·화성시 등 5곳이었다.

하반기 들어서도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교섭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소희 의원실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기준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 사업장은 456곳이다. 이 가운데 실제 교섭이 진행된 곳은 102곳이다.

경영계는 하나의 원청에 수십 개 하청노조가 동시다발적으로 교섭을 요구할 경우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총 조사에서도 매출액 5000억원 이상 주요 기업의 87%가 노란봉투법 시행이 노사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부정적 영향을 예상한 이유로는 ‘하청노조의 원청 대상 교섭 요구와 과도한 요구 증가’가 74.7%로 가장 많았고, ‘법 규정의 모호성으로 인한 법적 분쟁 증가’가 64.4%로 뒤를 이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정부 “책임 있는 노사관계로”…후속 입법도 대기 중

이에 정부는 노란봉투법 시행 전부터 노사·전문가 참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현장 지침 마련에 나섰다. 무조건적 파업 면책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책임 있는 노사관계로 가기 위한 기반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년연장 입법 의지도 재확인했다. 권창준 노동부 차관은 전날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입법이 국회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해서 연내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 부담과 청년 고용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무·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는 한편, 공공기관 정원과 총인건비 관리 방식 개선, 청년고용의무제 실효성 강화 등을 병행할 방침이다.

올해 하투는 ‘타결’이라는 결과보다 ‘다음 협상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고에 가깝다는 인상을 남겼다. 정년연장·근로자추정제 등 후속 입법도 대기 중인 만큼 노동 이슈발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는 노동 현안을 둘러싼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 변화에 앞서 노사가 수용할 수 있는 합의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봉수 강남노무법인 노무사는 “경영진은 성과급이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근로자 입장에서는 임금과 마찬가지로 근로조건의 일부로 볼 수 있다”며 “법으로 일률적으로 정해진 부분이라기보단, 노사 간 자율적인 교섭을 통해 풀어야 할 문제”이라고 지적했다.

또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과 하청 간 교섭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것은 제도가 아직 현장에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법 취지 자체는 맞지만 아직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 향후 제도가 정착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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