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의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서면 제청’에 대해 “헌정사 초유의 사태”라고 지적했던 청와대가 결단을 내렸다. 대법원장에게 손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청하기로 하면서다. 청와대는 이번 대법관 임명 절차가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한 시도라고 보고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지만,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지적에선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28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노태악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제청된 손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협의를 거쳐 제청에 이르러 온 것도 ‘각 기관 간의 권한을 상호 존중하라’는 헌법의 취지”라며 대법원장의 협의 없는 제청권 행사가 그 자체로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청와대는 이러한 제청권 행사가 단순히 헌법기관 간 상호존중의 결여를 넘어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봤다. 강 대변인은 “제청과 임명은 삼권분립 원칙 하에 서로 다른 헌법기관에 배분된 권한”이라며 “제청권은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권한이 아니라 임명권이 올바르게 행사되도록 뒷받침하는 권한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권한이 아니라 헌법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부여한 실질적 임명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권한”이라며 “재제청 요청은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예정한 상호견제의 한 방식으로서 제청이 각 기관에 대한 존중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응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국민적 요구를 고려했다는 점도 역설했다.
◇ 해소되지 않은 ‘쟁점’… 갈등 불씨 되나
청와대가 이날 손 후보자에 대한 재제청을 요청하면서 이번 논란은 ‘87년 체제’ 이후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 요구를 반려한 첫 사례로 남게 됐다. 청와대는 애당초 이번 제청 요구가 절차적 완결성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잘못된 선례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이를 둘러싼 정치적 쟁점까지 말끔히 해소되진 못했다는 점이다.
이후 대법관 후보자를 어떤 과정으로 제청할 것인지가 대표적 문제다. 추천위를 재구성할 것인지, 남은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제청이 이루어지는 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통상적으로 대법관 후보자 제청은 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3배수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후보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여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즉, 기존에 후보추천위가 추천한 4명의 후보자 중 손 후보자를 배제하고 나머지 세 명의 대법관 후보자 중 한 명을 다시 제청해 줄 것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이는 곧 청와대가 우선순위로 고려한 김민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손 후보자를 제외하고 남은 세 후보자 중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경우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이 되면서 후보자 제청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점이 한계로 지목된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나아가 국회의 임명 동의권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오늘 청와대의 결정은 사법부와 입법부의 헌법상 권한을 훼손하는 명백한 삼권분립 부정행위”라며 “임기 중 22명의 대법관을 모두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하기 위한 사법부 길들이기의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입장문을 통해 “사법부 인사를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려는 시도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인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선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의 경우 청와대와 대법원 간 합의를 거쳐 의견이 모아진 만큼 절차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국민의 온전한 재판청구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후속 절차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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