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빅4, 하반기 승부수④] 정의선, 관세 넘고 ‘피지컬 AI’로…하반기 두 전선 승부

마이데일리

[편집자주] 2026년 대한민국 4대 그룹의 시계가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회장은 상반기 인공지능과 반도체, 모빌리티, 에너지 등 미래 산업을 둘러싼 승부수를 잇달아 던지며 각자의 성장 방향을 선명히 했다. 마이데일리는 상반기 이들의 선택과 성과를 되짚고, 발표한 투자와 전략을 실제 생산·수주·실적으로 증명해야 할 하반기 승부처를 5회에 걸쳐 짚어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튀르키예 이스탄불 인근 항구도시 이즈미트에 위치한 현대차 튀르키예 공장의 아이오닉 3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커뮤니케이션센터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하반기 ‘두 개의 전선’에서 승부를 건다. 미국 관세와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경쟁 심화에 맞선 자동차 본업의 수익성 회복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과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자율주행을 앞세운 ‘피지컬 AI 기업’ 전환이 바로 승부처다. 본업은 현지화로 방어하고, 미래사업은 AI로 공격하는 전략인 셈이다.

본격적인 행보는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정 회장은 당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의 경계를 넘어 자율주행, 로보틱스, AI 팩토리 등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선언한 후 브라질과 튀르키예 생산현장을 연이어 찾아 지역별 성장전략과 전기차 양산 품질을 직접 점검했다. 국내에서도 향후 10년간 영남권에 42조원을 투입하는 첨단산업 육성 계획을 내놓고, 전사 AI 전환(AX)의 성과 등을 공개했다. 상반기에 펼쳐놓은 전략을 하반기 들어 실제 사업과 생산현장으로 옮기는 단계에 들어선 모습이다.

정 회장이 하반기 들어 부쩍 속도를 올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은 95조154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5조3656억원으로 25.8%나 급감했다. 자동차 판매가 늘며 외형이 컸지만 관세와 공급 차질,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비용이 급증한 탓이었다. 더욱이 로봇과 SDV, 자율주행 등 미래사업은 아직 수익 창출 이전 단계에 있다. 현재의 이익을 지키면서 미래의 이익원을 동시에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 하반기 첫 숙제는 ‘수익성’…현지화로 관세 파고 넘는다

가장 시급한 전선은 자동차 본업이다. 미국은 현대차그룹의 최대 수익시장 가운데 한 곳이지만 현재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입관세는 15%가 적용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비중을 높일수록 관세와 물류비, 환율 등 외부 변수에 대한 노출을 낮출 수 있는 구조다.

현대차그룹이 일찌감치 미국 현지화에 베팅한 이유다. 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연간 생산능력을 기존 30만대에서 2028년까지 50만대로 확대하고, 현대차 앨라배마공장과 기아 조지아공장까지 합쳐 미국에서 연 12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2030년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80% 이상을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현지화 범위는 완성차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총 260억달러를 투자해 자동차 생산능력과 부품 공급망, 철강, 로봇 생산거점을 함께 구축한다. 당초 210억달러였던 계획을 50억달러 확대했다. 현지에서 차를 조립하는 수준을 넘어 배터리팩과 자동차 강판, 로봇까지 생산하는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전기차에만 기대지 않는 것도 정 회장 특유의 ‘유연성’ 전략에서 비롯된다. 현대차의 상반기 글로벌 하이브리드 판매는 35만3668대로 전년 동기보다 25% 늘었다. 2분기에는 18만7661대를 판매해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썼고, 전체 판매에서 하이브리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18.9%까지 올라갔다. 전기차 수요가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서 내연기관·하이브리드·전기차를 동시에 운영해 수요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정 회장 역시 지난 4월 한국과 미국의 하이브리드 생산 확대와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생산거점 확충을 언급하며 현대차그룹의 강점으로 ‘유연성과 회복력’을 꼽았다. 하반기 본업 전략은 결국 잘 팔리는 차를 잘 팔리는 곳에서 만드는 능력을 극대화해 수익성을 되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6월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양재사옥에서 4족 보행로봇 스팟(Spot)과 자율주행 모빌리티 로봇 모베드(MobED)에 사인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샌프란시스코서 선언…“車 넘어 피지컬 AI 기업으로”

본업을 지키는 동시에 정 회장이 하반기 가장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미래 승부수는 피지컬 AI다.

정 회장은 지난달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에 참석해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전략을 직접 설명했다. 자동차와 로봇 같은 개별 기기를 지능화하는 단계에서 출발해 제조공장 전체를 AI로 연결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시 단위의 지능화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무기도 분명하다. 현대차그룹이 수십년간 쌓아온 ‘현실 세계의 데이터’다. 자동차를 설계하고 수백만대를 생산해 전 세계에서 운행하면서 쌓이는 데이터,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로봇 데이터, 공장과 물류 과정의 데이터를 AI 학습에 다시 투입할 수 있다. 학습한 AI를 자동차와 로봇, 공장에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데이터를 다시 확보하는 이른바 ‘데이터 플라이휠’ 구조다.

정 회장은 이를 위해 엔비디아와 웨이모, 구글 딥마인드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엔비디아와는 AI 인프라·제조 디지털트윈·자율주행을 협력하고, 보스턴다이나믹스는 구글 딥마인드와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피지컬 AI를 모든 영역에서 자체 개발하기보다 현대차가 가진 제조·하드웨어 경쟁력에 빅테크의 AI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는 연초 정 회장이 내놓은 판단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 신년회에서 데이터와 자본, 제조 역량을 갖춘 현대차그룹에 AI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상반기에 방향을 제시했다면 하반기부터는 이 판단을 사업으로 증명하는 단계인 셈이다.

◇ 아틀라스가 공장으로…자동차 제조능력을 로봇 사업에 이식

정의선식 피지컬 AI 전략의 중심에는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월 CES 2026에서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단순히 걷고 물건을 드는 시제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생산체계 안에서 로봇을 학습시키고 검증한 뒤 대량생산하겠다는 구체적인 상용화 로드맵도 내놨다.

오는 2028년부터 미국 HMGMA에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우선 부품을 생산 순서에 맞춰 배치하는 ‘시퀀싱’ 작업부터 시작하고 2030년에는 부품 조립 공정으로 영역을 넓힌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다른 로봇기업보다 유리하다고 보는 대목도 여기다. 개발한 로봇을 시험할 자동차 공장을 이미 전 세계에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기아는 대량생산 능력, 현대모비스는 핵심 부품, 현대글로비스는 물류를 담당할 수 있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로봇을 개발하면 그룹 내부에서 개발→학습→검증→양산→물류→서비스까지 처리할 수 있는 구조다.

향후에는 물류와 건설, 에너지, 시설관리 등 외부 산업으로 판매처를 확대한다. 자동차 공장을 ‘아틀라스의 첫 고객’이자 ‘거대한 테스트베드’로 활용한 뒤 로봇을 자동차와 별개의 수익원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브라질 상파울루 한 호텔에서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새만금 9조 이어 영남권 42조…하반기 국내 투자도 가속

피지컬 AI를 뒷받침할 국내 생산·연구 기반도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월 전북 새만금 112만4000㎡ 부지에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9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5조8000억원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4000억원 규모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1조원 규모 200MW 수전해 플랜트, 1조3000억원 규모 태양광 발전시설, 4000억원 규모 AI 수소 시티를 구축한다.

AI 데이터센터에서 자동차와 로봇의 ‘두뇌’를 만들고, 로봇 클러스터에서 몸을 생산하며, 태양광과 수소를 통해 필요한 에너지까지 공급한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와 수소를 각각의 신사업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반기에는 투자지도가 영남권으로 넓어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7월 3일 영남권에 향후 10년간 42조원을 투자해 AI 기반 제조혁신과 미래 핵심부품, 미래항공모빌리티, 에너지 인프라를 아우르는 첨단산업 거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울산 전기차 공장과 수소연료전지 공장, 미래 핵심부품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기존 생산시설도 제조 AI가 적용되는 지능형 공장으로 바꾼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발표한 2026~2030년 125조2000억원 규모 국내 투자계획과도 맞닿아 있다. 기존 자동차 생산기반에 AI와 로봇, 에너지 사업을 얹어 제조업 자체를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 플레오스로 車도 바꾼다…‘판매 후에도 돈 버는 자동차’

자동차 자체의 수익모델을 바꾸는 작업도 하반기 중요한 승부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를 공개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 에이전트 ‘글레오 AI’와 앱마켓, 무선 업데이트 기능 등을 하나로 묶었다. 현대차그룹이 수년간 추진해온 SDV 전환이 실제 양산차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더 뉴 그랜저를 시작으로 디 올 뉴 아반떼 등에 실제 적용됐으며 글로벌 시장으로 순차 확대된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플레오스 커넥트 탑재 차량 약 2000만대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판매 이후다. 앱과 콘텐츠, AI 서비스, 소프트웨어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면 자동차 한 대를 팔고 거래가 끝나는 기존 사업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SDV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결국 자동차를 ‘한 번 판매하는 하드웨어’에서 ‘계속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 이미 AI로 52억원 절감…‘피지컬 AI’ 청사진만은 아냐

하반기 들어 AI가 실제 생산성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결과도 내놨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2일 전사 AI 전환 성과를 공개했다. 생산라인을 AI로 분석하는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를 글로벌 생산거점 약 70곳에 적용해 연간 52억4000만원 규모의 비용을 절감했다.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기존 시험자료 탐색과 분석 시간을 약 90% 줄였고, 정비 지원 AI 서비스는 정비 대응시간을 약 42% 단축했다.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 Chat Pro’ 역시 지난 7월 기준 사용자 3만명을 넘어 일반·연구직 임직원의 약 80%가 활용하고 있다. AI를 자동차에 탑재하거나 로봇에 적용하기 전에 기업 내부의 일하는 방식부터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 회장이 말하는 피지컬 AI가 먼 미래의 로봇 사업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장의 생산효율과 연구개발, 정비, 사무업무에서 먼저 성과를 만든 뒤 자동차와 로봇 사업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7월 브라질 상파울루주 피라시카바에 위치한 현대차 브라질공장을 방문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 브라질→튀르키예…하반기에도 현장으로 답한 정의선

정 회장의 하반기 현장경영도 ‘지역 맞춤형’ 전략에 집중됐다.

그는 지난 7월 말 브라질 피라시카바 공장을 찾아 중남미 성장 전략을 점검했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브라질에서 9만6723대를 판매해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상반기 판매량을 기록했다. 향후 현지 특성에 맞는 플렉스연료 하이브리드(FFV-HEV)를 개발하고 소형 전기차 현지 생산도 검토한다. 수소 상용차와 그린수소 등 에너지 사업까지 확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곧이어 8월에는 현대차 튀르키예공장을 방문해 유럽 전략형 소형 전기차 ‘아이오닉 3’ 양산 품질을 직접 점검했다. 아이오닉 3는 하반기 유럽 시장에 순차 출시되며 현대차는 내년부터 연간 4만대 이상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과 미국, 인도를 돌았던 상반기와 마찬가지로 하반기에도 정 회장의 답은 현장에 있었다. 세계 시장을 하나의 전동화 전략으로 대응하기보다 북미에서는 현지 생산과 하이브리드, 유럽에서는 소형 EV, 브라질에서는 현지 연료 특성을 반영한 하이브리드를 앞세우는 방식이다.

재계 관계자는 "상반기에 방향은 충분히 보여줬고, 하반기에는 한발 더 나갔다"며 "정 회장이 직접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영남권 42조원 투자와 AX 확산, 글로벌 현지경영으로 실행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회장에게 하반기는 현대차그룹의 ‘현재’를 지키면서 동시에 ‘자동차 다음’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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