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서면 제청’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안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 않은 ‘초유의 사태’라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어떠한 선택이든 후폭풍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21일 유튜브 채널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에 출연해 “(청와대가) 부글부글하고 있다는 것은 언론의 용어”라면서도 “차분하지만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헌법 개정 이후 많은 대법관 임명제청 과정에서 지켜왔던 ‘관례’를 지키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한 것 자체가 “헌정사 초유의 사태”라고 규정하면서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임명 제청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군을 추천한 지 약 5달 만에 이뤄진 결정이었으나 이는 곧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간 대법관 제청 과정은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 협의를 거친 뒤 진행하는 방식이었으나 이번에는 이러한 ‘관례’가 지켜지지 않았다. 청와대와 대법원은 이흥구 대법관 후임인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관련해서만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대면해 최종 제청을 했던 전례도 이번에는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서면 제청’ 방식은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한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대법관 제청에 대한 일반적 사안에 대한 논의였을 뿐 구체적 방식 등을 논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대응 방안 고심하는 청와대
청와대가 이번 사안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데는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상으로는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명시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명확한 기준을 세우긴 어렵지만, 기존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지켜져 온 관례가 양측의 권한을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던 만큼 일방적으로 이를 무시했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다. 사실상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범한 상황이라는 평가다.
이렇다 보니 여권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임명 제청을 ‘반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청와대 역시 이같은 문제의식엔 공감하는 모습이다. 다만 구체적 대응법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른 관례들과 법률을 충분히 먼저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했고, 성 수석도 이날 앞선 인터뷰에서 “숙고 중인 상황”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이렇듯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이 문제가 가져올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권한에 개입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야권은 이 지점을 공략하고 나섰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KBS ‘전격시사’ 인터뷰에서 “명백하게 행정부가 사법부에 ‘누구는 안돼’라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제청된 후보 2인 중 1인만 콕 집어 선택적으로 반려한다면 그야말로 헌정 농단”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를 수용하기에도 정치적 부담은 존재한다. 헌법기관 간 상호 존중의 원칙이 깨어지는 것을 용인하는 결과로 ‘잘못된 선례’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서 대통령의 ‘재제청’을 요구하며 ‘정상적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임명 제청을 수용할 때 잘못된 선례를 남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여당은 이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낼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모습이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전날(20일) 의원총회에서 “대통령님의 판단으로 판단하실 것”이라면서도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면 대법원장 제안에 대해 부동의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더라도, 민주당은 사실상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해 제청된 후보자에 대한 동의안을 부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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