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석 서울대 교수 인터뷰] 대학 연구실, ‘작은 인공태양’이 빛나다

시사위크
 핵융합로를 대학교, 그것도 작은 연구실에 만들어 낸 과학자가 있다. 바로 황용석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다. 그는 연구실 한편에서 ‘한국 대학 유일의 핵융합 실험로’를 완성해 냈다. / 사진=박설민 기자
핵융합로를 대학교, 그것도 작은 연구실에 만들어 낸 과학자가 있다. 바로 황용석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다. 그는 연구실 한편에서 ‘한국 대학 유일의 핵융합 실험로’를 완성해 냈다. / 사진=박설민 기자

“토니 스타크는 이걸 동굴에서 만들었어!(Tony Stark was able to build this in a cave!)”

“어, 죄송합니다만, 저는 토니 스타크가 아니에요.(Well, I'm sorry. I'm not Tony Stark)”

- 영화 ‘아이언맨 (2009)’ 中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영화 ‘아이언맨’에서 악역 오베디아는 토니 스타크가 만든 소형 핵융합로의 일종인 ‘아크리액터’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토니 스타크의 남다른 천재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핵융합’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 묘사처럼 핵융합의 구현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실험하기 위한 실험용 핵융합장치 역시 대부분 국가 혹은 대기업 단위로 진행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이 운영하는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 ‘KSTAR’만해도 주장치 5만5,500㎥의 체적을 가진다.

이런 핵융합로를 대학교, 그것도 작은 연구실에 만들어 낸 과학자가 있다. 바로 황용석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다. 그는 연구실 한편에서 ‘한국 대학 유일의 핵융합 실험로’를 완성해 냈다. ‘시사위크’에서는 한국의 ‘토니 스타크’라 말할 수 있는 황용석 교수를 만났다.

지난 14일 방문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물 내부 모습. 복도부터 여러 실험 자재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흡사 영화 속에서 아크리액터를 개발한 토니 스타크의 동굴에 들어온 듯하다. / 사진=박설민 기자
지난 14일 방문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물 내부 모습. 복도부터 여러 실험 자재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흡사 영화 속에서 아크리액터를 개발한 토니 스타크의 동굴에 들어온 듯하다. / 사진=박설민 기자

◇ 서울대 공대엔 한국의 ‘토니 스타크’가 있다

지난 14일, 관악산 북쪽 자락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매캐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복도부터 여러 실험 자재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흡사 영화 속에서 아크리액터를 개발한 토니 스타크의 동굴에 들어온 듯했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황용석 교수가 운영하는 ‘플라즈마 및 양자빔 공학 연구실’이다. 이곳에서는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와 핵융합로 공학, 구형 토카막 실험로 운전, 플라즈마 제어 및 진단 등 미래 에너지원인 핵융합 발전 연구를 진행하는 곳이다.

이곳을 이끄는 황용석 교수는 한국 핵융합·플라즈마 물리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9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플라즈마 물리학 박사를 졸업했다. 이후 프린스턴대 연구원과 선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조교수를 거쳐 1998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에 부임했다.

여러 연구 중 황용석 교수의 대표적 성과는 단연 VEST(Versatile Experiment Spherical Torus)’ 구축이다. VEST는 국내 대학 유일의 실험용 구형 토카막 장치다. 2008년 서울대 핵융합로공학선행연구센터에서 3년 동안 황용석 교수와 그의 연구실 학생들이 설계·제작을 거쳐 완성했다.

황용석 교수와 연구실 학생들이 제작한  VEST(Versatile Experiment Spherical Torus)’의 모습. VEST는 국내 대학 유일의 실험용 구형 토카막 장치다. / 사진=박설민 기자
황용석 교수와 연구실 학생들이 제작한  VEST(Versatile Experiment Spherical Torus)’의 모습. VEST는 국내 대학 유일의 실험용 구형 토카막 장치다. / 사진=박설민 기자

기자가 방문한 연구실 내부에는 VEST가 자리 잡고 있었다. 크기는 대형 냉장고 정도로 핵융합연의 KSTAR와 비교해선 매우 작았다. 하지만 은색 빛이 나는 원통형 챔버 구조, 주위를 둘러싼 초전도자석, 진공관 등으로 구성된 VEST의 모습은 마치 ‘나 역시 핵융합로’라고 말하는 듯했다.

황용석 교수는 “지난 1979년 고(故) 정기형 서울대 교수와 제자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핵융합 장치 ‘SNUT-79’를 개발했다”며 “제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 실험 장치들을 만드는 것을 직접 옆에서 봤고 이것이 학생들의 핵융합 연구에 있어 너무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이후 학교로 돌아왔을 땐 그 장치는 낡아 이미 사용하지 않는 장치가 됐다”며 “학생들의 핵융합 교육과 연구에 있어 직접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SNUT-79의 정신을 이어받는 연구장치를 만들고 했다”고 말했다.

황용석 교수는 핵융합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서울대 내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VEST다. 사진은 토카막 모형으로 VEST의 원리를 설명하는 황용석 교수. / 사진=박설민 기자
황용석 교수는 핵융합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서울대 내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VEST다. 사진은 토카막 모형으로 VEST의 원리를 설명하는 황용석 교수. / 사진=박설민 기자

◇ 대학교 연구실서 거대한 ‘우주현상’을 관측한 VEST 

많은 연구 성과를 얻는 VEST지만 구축 과정은 험난했다. 가장 직접적인 난관은 ‘연구비 부족’이었다고 황용석 교수는 회상했다. 대학 규모의 작은 핵융합 실험장치라 하더라도 제작비가 일반 연구비 수준에서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제작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황용석 교수는 “특히 메인 진공챔버와 초던도 제작비만 2억~3억원 정도가 필요해 한 해 연구비로 모두 충당하기엔 여력이 부족, 해를 나눠 지불하기도 했다”며 “뿐만 아니라 진공펌프는 업계에서 기증받기도 해 말 그대로 장비를 하나하나 긁어모아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VEST는 우리나라 최초의 핵융합장치이자 서울대 핵융합 연구의 상징인 ‘SNUT-79’을 계승하게 됐다. 학생 누구나 쉽게 핵융합 연구를 해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때문에 VEST를 통해서 여러 연구 성과도 실제로 도출되고 있다.

대표적 성과는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다. 연구 내용은 ‘핵융합 실험과 우주 플라즈마 이론의 융합연구를 통한 다중 스케일 연계(Multiscale Coupling) 현상’의 입증이다. 이는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의 대표적 난제로 꼽힌 문제다.

VEST를 이용한 대표적 성과는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다. 연구 내용은 ‘핵융합 실험과 우주 플라즈마 이론의 융합연구를 통한 다중 스케일 연계(Multiscale Coupling) 현상’의 입증이다. 다중 스케일 연계 현상이 발생하는 곳은 바로 우주의 태양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VEST를 이용한 대표적 성과는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다. 연구 내용은 ‘핵융합 실험과 우주 플라즈마 이론의 융합연구를 통한 다중 스케일 연계(Multiscale Coupling) 현상’의 입증이다. 다중 스케일 연계 현상이 발생하는 곳은 바로 우주의 태양이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황용석 교수 연구팀은 VEST 장치에서 구형 핵융합로의 시동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때 기존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장 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발견했다. 이에 그 원인을 추적한 결과, 플라즈마 안에서 발생한 아주 작은 자기장의 소용돌이가 자기재연결(자기재연결, Magnetic Reconnection)을 발생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자기재연결은 플라즈마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자기장 선들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VEST 내부의 서로 나뉘어 있던 플라즈마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전체 자기장구조까지 크게 변화했다. 쉽게 말해 계곡 물줄기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모여 전체 물 흐름이 바뀐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황용석 교수는 “실험 과정에서 플라즈마를 가두는 큰 규모의 닫힌 자기장 구조가 형성됐고 이러한 모든 변화가 작은 규모의 난류 소용돌이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핵융합 플라즈마 물리학의 난제였던 다중 규모 스케일 연계를 직접 확인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다중 스케일 연계 현상이 발생하는 곳은 바로 우주의 태양”이라며 “작은 대학교의 연구실 안에서 태양 플레어나 지구 자기폭풍과 같은 거대한 우주현상을 관측·연구한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황용석 교수는 서울대 공대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서울대학교 ‘2026년도 훌륭한 공대교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년 교수직에서 물러나 외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 중심에는 ‘이터나퓨전(Eterna Fusion)’이 있다. / 사진=박설민 기자
황용석 교수는 서울대 공대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서울대학교 ‘2026년도 훌륭한 공대교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년 교수직에서 물러나 외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 중심에는 ‘이터나퓨전(Eterna Fusion)’이 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학계를 넘어 ‘더 넓은’ 곳을 바라보는 과학자

수많은 연구 성과와 VEST 구축, 우수한 강의 평가 등으로 황용석 교수는 서울대 공대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서울대학교 ‘2026년도 훌륭한 공대교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2년 설립된 훌륭한 공대교수상은 대학 내 연구 활동 진작과 산업기술 선진화를 위한 공대 학술상과 기술상을 제정한 데에서 시작됐다.

현재 황용석 교수의 임기는 올해 1년이 남은 상태다. 공대 교수상 수상과 우수 성과를 이룬 그가 교수직 연임을 할 가능성은 높아보였다. 그럼에도 황용석 교수는 기자에게 내년 학교를 떠난 것이란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후학들에게 연구를 이어갈 공간을 남기고 밖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함이다.

황용석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자기가 이룬 자리에 더 남아지고 싶어지게 되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저의 생각”이라며 “어쩌면, 아니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수십 년간 품어온 핵융합 상용화라는 마지막 도전을 학교가 아닌, 밖에서 이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구 인생의 뿌리였던 학교를 떠나 황용석 교수는 ‘산업체’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이터나퓨전(Eterna Fusion)’이 있다. 서울대 VEST 연구진들이 창업한 핵융합 기술 스타트업이다. 현재 이터나퓨전의 대표는 김경태 연구원이 맡고 있다. 황용석 교수는 이곳에서 CSO(최고전략책임자)를 맡고 있다.

이터나퓨전은 VEST에서 쌓은 10여년 간의 연구와 시행착오를 산업체로 옮긴 회사라고 볼 수있다. 핵심 목표는 ‘토카막 인젝션(Tokamak Injection)’ 기술의 개발이다. 이는 토카막 내부 플라즈마 전류를 높은 효율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향후 핵융합 발전소 상용화의 핵심인 ‘연속운전’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황용서 교수는 “핵융합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전력 생산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먀 “과거에는 핵융합 발전을 실현하려면 정부가 주도하는 대형 장치를 통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스타트업을 통한 새로운 길의 가능성을 봤다”고 이터나퓨전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VEST의 연구 분야 및 이터나퓨전의 향후 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김경태 연구원. 현재 이터나퓨전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황용석 교수는 이곳에서 CSO(최고전략책임자)다. / 사진=박설민 기자
VEST의 연구 분야 및 이터나퓨전의 향후 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김경태 연구원. 현재 이터나퓨전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황용석 교수는 이곳에서 CSO(최고전략책임자)다. / 사진=박설민 기자

그간 황용석 교수 연구실의 연구 성과, 높은 기술 기대감으로 이터나퓨전은 외부로부터 많은 투자를 유치 받고 있다. 지난 7월에는 23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컴퍼니케이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서울대기술지주가 참여한 이 시드 투자는 토카막 인젝션 개념 실증, 핵심 기술 검증에 투입될 전망이다.

물론 황용석 교수와 이터나퓨전, 나아가 국내 핵융합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특히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과학기술 선진국들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때문에 정부와 민간 스타트업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핵융합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황용석 교수의 조언이다.

황용석 교수는 “핵융합로를 소형화해 보다 빠르게 전력 생산 단계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VEST를 통해 연구해 온 구형 토카막 기술이 이런 소형 핵융합로를 구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민간 핵융합 투자가 확대되고 국내에서도 과학분야 창업을 지원하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정부에 특별히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기보다는 민간에서 진행되는 연구와 정부 주도의 연구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 즉 핵융합 생태계의 마련과 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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