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얼마 전 방문한 컨택센터에서 상담팀 슈퍼바이저와 VOC 전담팀의 언쟁을 들었다.
'고객이 책임자 바꿔달라고 하면 슈퍼바이저가 받으시면 되죠. 그걸 왜 저희한테 넘기십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결국 불만 건 아닙니까. 그런 전화 받으라고 VOC팀이 있는 거 아닙니까.' 양쪽 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액면으로는 책임자를 바꿔달라는 요청이고, 이면에는 고객 불만이기 때문이다.
액면을 읽으면 슈퍼바이저의 일이고 이면을 읽으면 VOC팀의 일이다. 그래서 양쪽 다 규정을 펼쳐 보이며 상대에게 공을 넘긴다.
이런 핑퐁은 센터 곳곳에 있다. 신입이 한 달 만에 그만두면 교육이 부실했던 것인지 배치 후 관리가 없었던 것인지를 두고 강사와 슈퍼바이저가 갈린다. 저성과자 코칭을 QA가 해야 하는지 슈퍼바이저가 해야 하는지도 애매하다.
어려운 스킬 물량을 어느 쪽이 더 받았는지를 두고 부산센터와 서울센터가 셈을 한다. 한두 번은 업무 이야기지만 반복되면 사람 이야기가 된다. 감정이 얽히고 오기가 생기면, 나중에는 옳은 일이라도 저쪽이 먼저 하자고 하면 하기 싫어진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역할과 책임을 정교하게 쪼개왔다. 책임이 흐릿한 조직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난장판이 되기에 명확한 업무 분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세밀해진 업무 분장은 역설적으로 '문서에 적히지 않은 영역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는 공식 승인서가 된다. 업무기술서는 내가 할 일의 목록이면서, 동시에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의 목록이기 때문이다.
지금 센터의 문제는 구성원의 충성도나 열의 부족이 아니다. 각자의 선이 또렷해지고 담이 높아져, 서로의 영역이 포개지던 회색 지대가 아무도 밟지 않는 빈 땅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야구의 '텍사스 안타'와 비슷하다. 유격수와 좌익수 사이, 아무도 없는 잔디밭에 툭 떨어지는 공이다. 처음에는 둘 다 뛴다. 다만 상대가 잡을 것이라 생각한 순간 둘 다 멈춘다. 아무도 야단맞지 않고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점수는 내어준다. 사이에 떨어진 공을 두고 선수의 열의를 탓하는 감독은 없다. 컨택센터의 빈틈으로 떨어지는 공을 받아내기 위해 세 가지 교정이 필요하다.
첫째, 그늘 속 업무에 이름을 붙이고 우선순위를 정해주자. 카네기멜런대의 린다 뱁콕 연구팀은 승진과 연결되지 않는 업무를 '비승진 과업'이라 부른다. 조직에 꼭 필요하지만 해내도 남는 것이 없어 늘 거절 못 하는 사람에게만 몰리는 업무다.
이를 방치하면 묵묵히 헌신하던 에이스가 먼저 지쳐 떠난다. 타 부서와의 애매한 인계 기준, 오안내 정정 및 DB 제보, 신입 멘토링 같은 회색 업무를 선의에만 맡겨두지 말고 공식 직무로 정의해야 한다. 중견수의 수비 우선권은 공이 뜬 후가 아니라 시즌 전에 정해두는 법이다.
둘째, 무엇을 셀 것인지 '평가의 기록지'를 교정하자. 평균처리시간(AHT)이나 처리 건수 같은 속도 지표에만 매달리면 사이의 공을 잡으려는 사람은 사라진다. 남을 돕고 복잡한 문제를 끝까지 추적할수록 내 숫자는 나빠지기 때문이다.
빨리 끊었는지가 아니라 한 통에 끝냈는지, 그 고객이 다시 걸어오지 않았는지를 함께 세어야 한다. 무엇을 세는지 바꾸지 않으면 무엇을 당부해도 소용이 없다.
셋째, 끝까지 추적해 올바른 신호를 보내자. 얌체처럼 자기 콜만 골라 받아 실적을 챙긴 사람이 우수자가 되고, 남의 실수를 수습하고 신입을 돌보느라 시간이 지체된 사람이 면담 대상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찾는 즉시 교정하고, 바로잡았다는 사실을 조직 전체에 알려야 한다. 한 번의 공지는 이벤트로 끝나지만 반복된 교정은 강력한 신호가 된다. 우리 조직이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는 구호가 아니라 이 신호로 전달된다.
'서로 좀 도와라'라는 말은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싼 지시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 공이 떨어졌다. 그 공을 잡게 만드는 방법은 선수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뛰어도 손해 보지 않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선수는 감독의 말이 아니라 감독의 기록지를 보고 뛴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성신여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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