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회복’ 평가에도… 정당 신뢰는 최하점

시사위크
​국회입법조사처 분석 결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지수 세계 22위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정당 신뢰도는 평가척도상 최하점에 머물러 제도적 성과와 시민이 체감하는 정치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 / 사진=김두완 기자​
​국회입법조사처 분석 결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지수 세계 22위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정당 신뢰도는 평가척도상 최하점에 머물러 제도적 성과와 시민이 체감하는 정치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 / 사진=김두완 기자​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한국 민주주의가 12·3 비상계엄에 따른 헌정 위기를 딛고 국제평가에서 회복세를 보였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이 제도적 절차를 통해 위기에 대응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지위도 되찾았다. 하지만 정당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국제지수 평가에서 최하점에 머물렀고, 정치참여 평가점수도 17년째 제자리걸음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를 막아낸 제도의 힘과 시민의 요구를 일상 정치에 반영하는 역량 사이의 간극이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캐나다·일본보다 앞선 22위… ‘완전한 회복’은 유보

국회입법조사처는 11일 발간한 ‘한국 민주주의, 지수로 읽는 성과와 한계’ 보고서에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민주주의 지수와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 지수, 프리덤하우스 세계 자유 지수를 비교했다.

세 지수는 평가 기준이 다르다. V-Dem은 선거·법치·권력기관 견제와 참여·숙의를, EIU는 정부 기능과 정치문화까지 평가한다. 프리덤하우스는 개인이 실제로 누리는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에 초점을 맞춘다. 보고서는 평가 방식이 다른 세 기관이 공통으로 지적한 취약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V-Dem이 평가한 2025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준은 세계 22위였다. 전년도 41위에서 19계단 상승하며 체제 분류도 ‘선거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복귀했다. 세계 1위는 덴마크였고 스웨덴과 노르웨이, 스위스, 에스토니아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북유럽 중심의 최상위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캐나다와 일본보다 앞서며 주요 민주주의 국가 중 상위권에 자리했다.

한국의 2025년 민주주의 수준을 세계자유지수(FIW), EIU 민주주의지수, V-Dem 민주주의지수의 세부 항목별로 비교국가군 평균과 대조한 결과. 빨간색은 대한민국, 청록색과 회색은 각 비교국가군 평균을 나타낸다. / 자료=국회입법조사처,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한국의 2025년 민주주의 수준을 세계자유지수(FIW), EIU 민주주의지수, V-Dem 민주주의지수의 세부 항목별로 비교국가군 평균과 대조한 결과. 빨간색은 대한민국, 청록색과 회색은 각 비교국가군 평균을 나타낸다. / 자료=국회입법조사처,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이번 반등에는 비상계엄 이후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 등 헌법기관이 제도 안에서 위기에 대응한 과정이 반영됐다. 한국은 독재화 진행국 목록에서도 제외됐다. 다만 V-Dem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단정하지 않고, 다시 강화될 가능성이 나타난 ‘잠재적 유턴 사례’로 분류했다.

1년 사이 나타난 개선 폭이 공식적인 ‘민주화 진행국’ 판정 기준에는 근소하게 미치지 못했고, 자유민주주의 수준도 2019∼2021년보다 낮기 때문이다. 위기를 막아낸 성과는 확인됐지만 이를 민주주의의 안정적인 회복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의미다.

EIU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냉정했다. 한국은 세계 32위로 전년도와 같은 순위에 머물렀으며 체제 유형도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미국 역시 같은 유형에 속한 반면 프랑스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복귀했다.

한국은 선거의 자유와 공정성, 야당의 경쟁 가능성을 평가하는 ‘선거과정과 다원주의’와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살피는 ‘시민의 자유’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태도와 평화적인 정권교체 수용 여부 등을 평가하는 정치문화는 가장 취약한 분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은 비교적 견고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문화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다.

한국의 정당 신뢰도 항목은 2013년을 제외하면 2008년 조사 시작 이후 줄곧 평가척도상 최하점인 0점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 뉴시스
한국의 정당 신뢰도 항목은 2013년을 제외하면 2008년 조사 시작 이후 줄곧 평가척도상 최하점인 0점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 뉴시스

프리덤하우스 조사에서도 한국은 83점으로 ‘자유’ 국가 지위를 유지했다. 일본의 96점보다는 낮았지만 미국의 81점보다는 높았다. 중국은 9점으로 ‘비자유’ 국가에 분류됐다. 한국은 비상계엄 당시 하락했던 선출 대표자의 정책결정권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1년 만에 회복했다.

그러나 정부 운영의 투명성은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난 2017년 이후, 사법부 독립성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진 뒤인 2019년 이후 낮아진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상계엄으로 일시 하락한 항목은 빠르게 회복됐지만 정부 투명성과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평가는 장기간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 공개 논의는 세계 7위… 제도적 참여는 44위

한국 민주주의의 불균형은 시민의 정치적 관심과 이를 수용하는 제도의 격차에서도 확인됐다. V-Dem 평가에서 한국의 숙의 역량은 세계 7위였지만 참여 역량은 44위에 그쳤다. 숙의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비상계엄 이후 헌정질서와 정치적 책임을 둘러싼 논의에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언론, 시민사회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로 분석됐다. 정치적 쟁점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정부 행위에 대한 비판과 해명 요구가 활발하게 제기됐다는 것이다.

반면 시민의 요구를 실제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제도적 통로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시민사회 활동과 지방정부의 제도적 기반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주민투표와 주민발안 등 직접 참여를 평가하는 항목은 현저히 낮았다. 시민이 거리와 공론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것과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의미다.

한국은 집회와 공론장에서 시민 의견이 활발하게 표출됐지만 이를 주민투표와 주민발안 등 제도적 참여와 정책 결정으로 연결하는 통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 뉴시스
한국은 집회와 공론장에서 시민 의견이 활발하게 표출됐지만 이를 주민투표와 주민발안 등 제도적 참여와 정책 결정으로 연결하는 통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 뉴시스

EIU 조사에서 한국의 정치참여 점수는 2008년 이후 한 차례도 달라지지 않았다. 투표율과 여성 의원 비율, 정당·시민단체 가입률, 시민의 정치참여 의식, 당국의 참여 촉진 노력 등 5개 세부 항목도 0점·0.5점·1점으로 나뉘는 평가에서 같은 기간 0.5점에 머물렀다.

특히 정당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 항목은 2013년을 제외하면 조사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줄곧 평가척도상 최하점인 0점을 기록했다. 이는 국민의 정당 신뢰도가 0%라는 뜻은 아니다. EIU가 적용하는 평가척도 가운데 최하점을 받았다는 뜻이다. 정당 정치자금 조달의 투명성과 부패 통제 역시 조사 기간 내내 중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한 지도자가 의회와 선거를 우회하는 정치 방식에 대한 시민의 태도를 살피는 항목도 2022년 이후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방향의 최하점에 머물렀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최고 정치기관으로 기능하는지를 평가하는 항목 역시 2023년 최하점으로 떨어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

입법조사처는 정당 간 갈등을 정치적 협상보다 사법적 판단에 의존해 해결하는 경향도 의회와 정당의 갈등 조정 역량을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투표와 주민발안 등 기존 참여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시민의 의견이 정당 간 협의와 국회 숙의, 정책 조정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비상계엄이라는 위기를 제도 안에서 막아내며 방어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국제지수가 보여준 회복이 시민이 체감하는 정치의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정당과 의회가 신뢰를 되찾고 갈등을 정책 경쟁과 타협으로 전환해야 한다. 위기 때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넘어 평상시에도 시민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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