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부가 코스닥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부실기업 퇴출과 우량기업 선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벤처업계에서는 성장 단계 기업의 특성을 반영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장 정화와 투자자 보호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코스닥 침체로 주가와 시가총액이 급락한 상황에서 향후 승강제까지 도입될 경우 이미 강화된 동전주·저시가총액 퇴출 기준과 맞물려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7월부터 코스닥 상장유지 시가총액 기준을 기존 1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높였다. 내년 1월부터는 300억원으로 추가 상향한다.
주가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도 새로 시행됐다.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1000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 코스닥 급락에 '가격 기준' 부담…"기업가치 함께 봐야"
벤처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제도의 방향보다 적용되는 시장 환경과 평가 방식이다. 코스닥지수는 지난 7월 한 달 동안 21.4% 급락했고, 지난 4월 말 연중 고점과 비교하면 8월 초까지 35% 넘게 밀렸다.
시장 유동성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코스피 대형 반도체주로 집중되면서 코스닥 중소형주의 거래와 주가도 동반 위축됐다. 지난달 29일 기준 주가 1000원 미만인 코스닥 상장사는 171곳으로, 6월 말 156곳보다 15곳 늘었다.
시가총액 기준 미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시가총액 기준 미달로 '관리종목 지정 우려'를 공시한 코스닥 상장사는 30곳으로, 상반기 6개월간 같은 사유로 공시한 기업 12곳의 2.5배에 달했다.
벤처업계에서는 이들 기업 모두의 경쟁력이 단기간에 악화됐다기보다 시장 전체의 투자심리와 수급 위축이 주가와 시가총액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시가총액은 시장이 평가한 기업가치라는 점에서 상장유지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다. 다만 주가는 실적뿐 아니라 유동성, 업종 선호도, 시장 환경, 기관·외국인 수급 등 외부 요인에도 크게 좌우된다.
반면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은 매출과 영업이익, 영업현금흐름, 보유 기술, 연구개발 성과, 수주와 사업 지속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게 벤처업계의 주장이다.
일정한 회복기간이 부여되더라도 기술력과 사업 지속 가능성을 별도로 심사하지 않은 채 시장가격만으로 상장 유지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특히 바이오·인공지능(AI)·로봇·우주·반도체 소재 등 딥테크 기업은 제품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적자를 감수하거나 임상시험과 인허가 일정에 따라 주가가 크게 움직일 수 있어 전통 제조기업과 동일한 정량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술특례상장의 취지와 상장유지 기준 간 정합성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장 당시에는 미래가치를 인정하면서 상장 후에는 단기 주가와 시가총액을 중심으로 퇴출 여부를 판단할 경우, 장기간 연구개발이 필요한 기술기업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으로의 수급 쏠림과 극심한 변동성 속에서 중소형주는 실적이나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소외되고 있다"며 "상장폐지 조건을 강화하기보다 신규 상장 문턱을 높이는 방안이 시가총액, 주가 등 측면에서 기준에 미달하는 사례를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코스닥 승강제의 득과 실…우량주 재평가 속 낙인효과 우려
정부는 코스닥을 프리미엄과 스탠더드 세그먼트로 구분해 승강제를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장폐지 우려 또는 거래위험 기업은 별도의 관리군으로 분리한다는 구상이다.
프리미엄 기업을 기반으로 대표 지수와 상장지수펀드(ETF)를 개발해 기관·외국인 자금을 유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승강제 도입을 통해 우량기업의 재평가를 유도하고 코스닥에 장기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20일 기준 코스닥150 추종 패시브 자금은 8조7000억원으로, 코스피200 추종 자금 61조1000억원의 14%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프리미엄 세그먼트 구성 종목 수가 코스닥150보다 줄어들 경우 편입기업 한 곳당 자금 유입 밀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그 반대편에 놓인 기업들이다. 프리미엄 세그먼트로 기관자금이 집중되면 스탠더드 기업은 실제 사업성과와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비우량기업'이라는 인식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탠더드 편입이 시장에서 비우량 신호로 받아들여질 경우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이후 주가와 시가총액 하락이 이어지면 별도의 상장유지 기준에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승강제 자체가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로 직접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장 구분에 따른 자금 재배분이 기업 간 유동성 양극화를 심화할 가능성은 살펴야 한다는 게 벤처업계의 입장이다.
권순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은 지금까지 승강제를 지수 전체의 호재보다 우량과 부실을 가르는 선별의 재료로 소화해 왔다"며 "시장 참여자가 기대하는 코스닥 이익의 성격과 정책적 우량주 선별 유인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승강제로 추종 대상이 압축되면 종목당 수급 밀도가 높아질 수 있다"면서도 "단기 설정 효과와 장기 투자 지속 수요는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화된 퇴출 기준은 기업들의 경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장폐지 개혁방안이 발표된 지난 2월12일부터 7월2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추진된 주식병합은 총 243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코스닥이 192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부 기업은 주식병합에 이어 계열사 합병까지 추진하며 시가총액 기준 충족에 나섰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장폐지 위험을 낮추기 위한 합법적인 자구책이지만, 제한된 인적·재무적 자원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보다 단기적인 상장지위 방어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퇴출 철회 아닌 보완 요청"…질적 심사·재도약 장치 필요
벤처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상장폐지 기준 강화나 승강제 도입의 전면 철회가 아니다. 주가와 시가총액뿐 아니라 기술성과 연구개발 성과, 영업현금흐름, 보유 현금, 수주, 임상 진행 상황과 계속기업 가능성을 함께 살피는 종합적인 심사체계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기술특례상장 기업과 장기간 연구개발이 필요한 업종에는 일반기업과 구분되는 유예기간이나 ‘기술성장성 트랙’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장 전체가 급락한 기간에는 일시적인 가격 하락의 영향을 보정하고, 기준에 근접한 기업에는 충분한 개선기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승강제 역시 상위·하위라는 수직적 서열보다 기업들이 실적과 기술개발 성과에 따라 이동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다.
진입 기준과 유지 기준을 분리하고, 스탠더드 기업의 자금 경색을 막기 위한 정책펀드와 연기금 등 별도의 유동성 공급 장치도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중소벤처기업부, 벤처업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제도 시행 전후의 영향을 점검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동훈코스닥협회 회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강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시장 현실을 반영한 세밀한 제도 설계"라며 "부실기업은 과감히 정리하되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상장유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코스닥은 대한민국 혁신기업의 성장 플랫폼"이라며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기업을 퇴출했는지가 아니라 부실기업과 아직 성장 중인 기업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분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