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 기술과 품질로만 경쟁하던 시대는 끝났다. 미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폭탄이 빚은 보호무역주의와 파편화된 공급망이 기업 경영의 핵심 변수로 부각하면서 기업의 생산과 수출, 투자 전략 등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 전쟁이 낳은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암초까지 기업 경영의 새로운 상수(常數)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마이데일리는 우리 기업들이 맞닥뜨린 지정학적 위기의 실체를 진단하고, 기업들의 대응 전략과 하반기 경영 환경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국내 주요 철강사들이 올해 2분기 판매가격 인상과 판매량 확대에 힘입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물류비·원가 상승과 중국발 철강 공급 과잉,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까지 겹치면서 실적 회복세 지속 여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올해 2분기 판매가격 인상과 판매량 확대를 통해 1분기 대비 일제히 개선된 영업이익을 거뒀다.
포스코는 별도 기준 2분기 매출 9조4150억원, 영업이익 2740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 대비 매출은 5.4%, 영업이익은 28.5% 늘었다. 탄소강 제품 판매가격이 1분기 톤당 92만원에서 2분기 96만2000원으로 오르고 판매량도 72만톤 증가한 영향이다. 다만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5.2%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46.6% 줄었다. 환율 약세와 유가 상승에 따른 원료 단가 상승, 글로벌 수요 둔화, 시장 경쟁 심화가 겹친 탓이다.
현대제철은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577억원을 내며 전분기(157억원) 대비 267.5% 증가했다. 봉형강 제품 판매량이 늘고 주요 제품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다. 다만 전년 동기(1018억원) 대비로는 43.3%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121억원으로, 전분기 393억원 순손실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동국제강 역시 별도 기준 2분기 영업이익 456억원을 달성하며 선방했다. 전분기 대비 112.5%, 전년 동기 대비로도 52.3% 늘었다. 계절적 성수기 진입과 반도체·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대형 산업 인프라 수요 확대로 주력 품목인 봉형강류 수익성이 개선된 결과다.

◇ 홍해 막히자 솟구치는 운임…물류비 부담 불어난다
문제는 하반기 악재다. 올해 초부터 이어진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철강업계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는 수출 물류와 제조 원가다.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유럽·중동향 강재 수출선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하면서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운임이 큰 폭으로 올랐다. 철강재는 화물 특성상 해상 운송비 비중이 높아 물류비 상승이 수출 채산성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설상가상 최근 중동발 리스크가 더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봉쇄를 공식 선언하면서 미·이란 갈등으로 이미 불안정해진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지난달 21일 중국·인도행 원유 270만 배럴을 실은 유조선 2척은 홍해 진입을 앞두고 유턴했다. 이 가운데 인도행 사우디 원유 약 70만 배럴을 실은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로도스’는 항로를 되돌려, 수에즈운하를 거쳐 지중해·지브롤터해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을 도는 우회로로 방향을 틀었다. 홍해를 거치지 않으면 이처럼 아프리카를 크게 돌아야 해 운송 기간이 수 주 이상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류비 상승은 운임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공표하는 한국형 건화물선 운임지수(KDCI)는 지난달 7일 2만6989를 기록했고, 국제 지표인 발틱건화물선운임지수(BDI)도 같은 날 2875포인트까지 올랐다. 동남아시아발 시멘트·철강제품 운송 수요가 늘면서 수프라막스급 선박의 일일 용선료는 1만4000~1만5000달러 수준까지 올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내 철강사들의 유럽·중동향 수출 역시 우회 항로 이용이 불가피해지면서 물류비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 탄소 규제·관세 장벽 겹쳐…수출 환경 악화
철강업계의 수출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올해 1월 본격 시행되면서 국내 철강사들은 탄소 비용이라는 새로운 무역 장벽에 직면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내 철강업계의 CBAM 인증서 비용 부담이 향후 9년간 2조644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EU는 철강 무관세 수입 쿼터(TRQ)를 기존 3053만톤에서 1870만톤으로 47% 줄이고, 할당량을 넘는 물량에 대한 관세율은 25%에서 50%로 두 배 올리는 조치를 올해부터 본격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50% 고율 관세도 여전히 변수다.
중국발 리스크는 다소 완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중국이 올해 1월 도입한 철강 수출허가제 영향으로 1~4월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251만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 감소했다. 특히 열연강판 수입량은 1분기 기준 3만3000톤으로, 전년 동기(36만톤) 대비 90.8% 급감했다. 중국의 상반기 조강 생산량 역시 전년 대비 3% 줄어든 4억9995만톤을 기록했고, 강재 수출도 5.6% 감소한 5487만톤으로 집계됐다.
다만 중국발 공급 과잉 우려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중국 조강 생산량은 전년 동월 대비 0.4% 증가하며 올해 들어 처음으로 증가세로 전환했고, 강재 수출도 6.6% 늘었다. 과거 중국이 감산을 예고한 이후에도 실제 생산량이 다시 증가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최근의 감산 기조가 하반기까지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 하반기 실적 회복세 전망…AI 데이터센터 수요 호재
전문가는 하반기 철강 업황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신규 수요에 힘입어 회복 흐름을 보일 수 있지만, 물류비 상승과 중국발 공급 과잉이 실적 개선을 제한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로 용선료와 보험료가 상승하면 수출 비용이 늘어나고, 결국 국내 철강사들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이 저가 물량을 밀어내면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판매처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철강 산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가동률이 유지돼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공급 과잉이 장기화할 경우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대해서는 신중한 평가를 내놨다. 이 교수는 “현재는 전반적으로 수요가 위축된 상황”이라며 “AI 데이터센터향 수요가 일부 버티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중국이 과잉 생산 물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환경 철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아직 친환경 제품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당장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아니다”며 “중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봐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고품질·고부가가치 강재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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