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희망이 생기는 순간[곽명동의 씨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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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플러스엠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나홍진 감독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을 탐구했다. 그는 데뷔작 <추격자>부터 자신의 세계관을 확실하게 구축했다. 이 영화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파헤치는 게 아니라 '범인을 알고도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짙은 무력감'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엄중호(김윤석)는 세상의 모든 범죄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전직 형사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지영민(하정우)을 만나면서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악과 마주한다. 그는 단일한 악의 존재와 마주 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관의 초석을 닦았다.

<추격자>가 개인 대 개인의 구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악"을 다룬다면, <황해>는 통제 불가능한 악이 복잡하게 얽힌 "불가해한 운명과 세계의 시스템"에 휘말린 이야기로 외연을 확장한다. 구남(하정우)은 돈을 벌어 빚을 갚고 아내를 찾기 위해 면가(김윤석)가 제안한 청부살인을 수락한다. 사람을 한 명 죽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계속 뒤바뀌고, 자신을 이용한 사람들조차 그를 죽이려 한다.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사건은 점점 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구남은 자신의 선택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정체 모를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 파멸해가는 존재로 전락한다. "나는 이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순진한 신념은 <황해>의 정글 같은 세계 속에서 완전히 산산조각 난다.

'호프'./플러스엠

세 번째 영화 <곡성>에 이르러 이 부조리는 "왜 아무 죄도 없는 나에게 이런 비극이 찾아왔는가"라는 절망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영화 속 일광(황정민)의 대사처럼, 낚시꾼이 무슨 고기가 낚일지 알고 미끼를 던지는 것이 아니듯 비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온다. "왜 하필 내 딸인가"라는 종구(곽도원)의 간절한 외침에도 세계는 어떠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종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경찰이라는 직업적 무기, 무속의 힘, 성당 신부의 권위까지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모든 권력과 신앙에 의지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를 구원하지 못한다. 신과 악마와 인간이 뒤얽힌 혼돈 속에서 끝내 '의심'을 거두지 못했던 종구를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특히 종구는 외지인(쿠니무라 준)이라는 '타자'를 끝내 이해하거나 규명하지 못하고 악마화함으로써 스스로 비극의 수렁에 빠졌다. 네 번째 작품 <호프>의 범석(황정민)과 성기(조인성)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호포항에 나타난 외계 크리처와 마주한다. 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에 왜 외계 존재인 바미기르가 찾아와 온 마을의 사람과 소를 죽이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범석과 성기, 성애(정호연)는 목숨을 건 추격전 끝에 마침내 바미기르를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피 흘리며 도망치는 바미기르의 슬픈 눈을 본 범석은 상대를 단순한 '제거해야 할 괴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 균열이 생긴다. <곡성>이 의심과 불신으로 타자를 악마화해 파멸에 이르렀다면, <호프>에서 범석이 마침내 타자의 '슬픈 눈'을 톺아보고 그 고통을 이해하려 시도하는 것은 이전 작품들의 원죄적 비극을 극복하려는 감독의 서사적 응답으로 풀이된다.

외계 존재의 슬픈 눈을 마주한 순간 범석이 느낀 혼란은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를 타자에 대한 연민과 존재적 이해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다. 이전 작품들이 타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함으로써 스스로의 비극을 완성했다면, <호프>는 전혀 마주친 적이 없는 아득한 존재의 눈빛 속에서 비로소 타자의 고통을 감지하는 인류애적 시선을 제시한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장 1절)라는 대사는 눈앞의 공포와 불신을 넘어 보이지 않는 타자의 슬픔과 존재 가치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곧 비극으로 점철된 원죄적 세계를 구원할 열쇠임을 암시한다.

나홍진 감독은 부조리한 세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세계를 견디는 인간의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왔다. 의심과 불신, 혼돈과 체념으로 시작했던 그의 영화는 마침내 타자의 슬픈 눈을 바라보는 자리까지 도달한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믿어보는 것, 보이지 않더라도 손을 내미는 것. 그의 영화가 말하는 희망은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기적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아주 작은 용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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