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전두성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갈등이 ‘8·17 전당대회’를 계기로 증폭되고 있다. ‘6·3 지방선거 책임론’으로 시작된 갈등은 전당대회가 본격화하면서 확산했다.
김민석 당 대표 후보의 정청래 후보를 겨냥한 ‘자기 정치’ 발언으로 당권 주자들이 충돌했고, ‘적통 논쟁’은 후보들의 과거 이력까지 거론되며 ‘파묘 논쟁’으로 번졌다. 이후엔 ‘전당대회 룰’을 두고 계파 간 공방이 오갔고, ‘반명(반이재명)’ 발언을 두고 후보들은 다시 충돌했다. 최근엔 김 후보가 ‘신천지 전당대회 개입설’을 제기하며 갈등은 폭발한 상태다.
이 같은 갈등은 정치인들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지층 간의 ‘멸칭 논란’에 이어 후보 차량 파손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유시민 작가의 ‘재건축론’, ‘필패론’ 등은 민주당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러는 사이 여당 당권 주자들이 토론해야 할 민생·경제 문제는 설 자리를 잃었다. 후보들이 당의 혁신이나 청년·노동 정책에 대한 공약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갈등이 증폭되며 이 같은 공약은 주목받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선 여당 전당대회에서 평가·분석할 만한 게 별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중재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작은 차이를 넘어서고 공동의 목표를 넓히는 길이 승리의 길”(우원식 전 국회의장) 등 당내 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왔지만, 이는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나 ‘단합’을 강조했고 “경쟁이 전쟁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며 중재에 나섰지만, 이 또한 현재로선 당내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당 안팎에선 ‘이해찬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같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다. 지난 1월 별세한 이 전 총리는 역대 민주당 정부에서 국무총리·장관·여당 대표를 지내며 민주진영의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하며 ‘운동권 1세대’로 분류되는 이 전 총리는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첫 교육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에선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4년 총리로 임명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우는 등 실세 총리이자 책임총리로 불리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에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이후엔 이 대통령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2021년 20대 대선 경선에서 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거나, 2024년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총선 대승을 이끄는 등 이 대통령을 지원했다. 또 이재명 정부 출범 후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았다.
이처럼 이 전 총리는 역대 민주당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거치면서 특정 계파색이 없는 ‘킹메이커’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유 작가의 이 대통령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도 이 전 총리의 부재와 무관치 않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이 집권 초 갈등이 증폭되고 이를 중재할 수 있는 인물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진보 진영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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