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홍진이라 가능한 ‘호프’라는 낯선 세계

시사위크
나홍진 감독이 영화 ‘호프’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나홍진 감독이 영화 ‘호프’로 돌아왔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10년 만에 돌아온 나홍진 감독은 이번에도 익숙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범죄 스릴러와 오컬트를 넘어 우주와 외계 존재, 크리처와 액션까지 장르의 외연을 확장하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한층 더 넓혔다. 집요한 여정 끝에 기어코 ‘호프’라는 낯선 상상을 스크린 위에 펼쳐낸 나감독이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지난 15일 뜨거운 관심 속에 국내 개봉해 본격적인 흥행 행보를 시작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나홍진 감독은 ‘호프’의 제작 과정부터 작품에 담긴 의미와 연출 의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이는 소감은.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든다. 일단 너무 긴 시간 동안 일이 많았던 작품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제도 작업했고 오늘도 할 예정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인 것 같다. 그런 작품을 선보이게 돼서 그런지 더 떨린다. 이런 시도 자체가 재미있지 않나.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 줄지도 궁금하고, 긴장된다. 내일 또 미국에 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영화가 완성된다. 잠이나 진짜 원 없이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다음 날 스케줄 하나 없이 잠 한 번 자보는 게 소원이다.”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공정 자체가 엄청나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더라. 촬영이 그렇게 길게 걸린 건 아니었다. 이전 작품보다 촬영은 더 빨리 끝났던 것 같은데,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일이 많았고 공정도 복잡하고 과정도 복잡했다. 익숙한 과정이었다면 단축시킬 수 있었을 거다. 사실 2018년도에 이 영화에 대해 스태프들과 논의를 시작했거든.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학습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고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도 있었다. 장비도 없어서 장비도 구비해야 했다.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 공정 자체가 많았다.”

나홍진 감독이 영화의 출발을 떠올렸다. 사진은 범석을 연기한 황정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나홍진 감독이 영화의 출발을 떠올렸다. 사진은 범석을 연기한 황정민.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일단 장르 영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뉴스를 보기도 하고 돌아가면서 현상을 마주하기도 하지. 그러면서 나 또한 밝고 아름답고 선한 상황에 이끌리는 건 당연한 건데 내가 어떤 작품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야기를 선택할 때는 내가 굳이 밝은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시절을 다시 한번 재조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네거티브한 쪽에 시선이 가는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을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해볼까 하는 고민을 했는데 처음엔 사이코패스가 무엇이고 이 사람이 왜 이러며 이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가에서 시작한 영화였다. 그런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까 초자연적인 곳까지 가서 거기서 이 현상을 바라보게 된 거다. 거기서 더 심화시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곡성’에서의 초자연적인 현상보다 더 나아가게 됐다. 그것이 공간은 우주지만 의미적으로는 다른 거다. 존재적일 수도 있고 거기까지 나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이 이야기가 얼마나 심플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난이도를 갖춰야 할까 고민했다. 난이도는 중요한 것인데 이번에 다른 개념으로 줄 때만 주고 전반은 심플하게 하자는 정도의 디자인을 했다. 외계인이 등장한 것은 이런 결정 끝에 초자연적인 존재 이상의 정점에 있는 존재의 시선에서 이 영화를 풀어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정서와 장르적 문법의 균형을 어떻게 가져가고자 했나.

“한국적인데 한국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영화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할 때였다.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영화를 만들어서는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뿐 아니라 새로운 수입원을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지 않으면 힘든 시기가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한 영화 안에 여러 장르가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요소들을 거둬내고 특정 장르의 특성과 색감을 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택은 장르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크리처물이면 더 좋겠다고 봤다. 그렇게 방향을 옮기다 보니 영화의 장르적 색채가 훨씬 강해졌다. 대신 그렇게 간 이상 그 방향성을 담보할 수 있는 퀄리티가 중요했다. 단순히 하나의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관객이 영화를 따라가도록 설계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고민을 했나.

“2시간 20분 동안 카메라는 그 인물을 쫓아가지만, 관객은 그 존재의 퍼스펙티브(시점)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 정보도 없는 채 범석과 같은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고 겪게 된다. 그러고 나면 한 노인을 만나는데 이것이 믿어도 될지 말아야 할지, 왜곡된 건지 아닌지, 오염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닐 수도 있는, 정의 내릴 수 없는 인물을 만나면서 워밍업을 시작한다. 괴물이 교차되는 장면 중 영화에서는 아직 그게 외계인인지 괴물인지 모른다. 영화적 정보만 놓고 보면 관객은 그 존재가 누군지 모른다. 어떤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관객이자 인간으로서 그런 시간을 보낸다. 관객에게 죄의식을 심어준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 목수를 등장시킨다. 이때쯤 우주선도 나오고 여러 정보가 나오면서 외계인이라는 걸 알려준다. 관객은 그때 알아야 정상이다. 마케팅 때문에 오염이 된 건데 순수하게 제로베이스에서 봤다면 그때 외계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관객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겠지. ‘어머’ 하게 될 거다. 그러고 나서 상황 파악을 다 하게 해준다. 짐작이긴 하지만 정보를 입체적으로 다 받은 다음 성기와 외계인의 액션을 보게 되는 거다.”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 스틸.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 스틸.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런 구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관객이 이 구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궁금했다. 어떤 입장 차이를 갖고 이 상황을 바라볼까 하는 구간을 넣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엔딩이 나온다. 외계인들의 대사를 그전까지는 자막으로 넣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도 그 애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이유를 모른다. 엔딩에 가서야 자막을 넣어 이들이 하는 말을 알려준다. 자막을 빼도, 그래도 괜찮을 거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한 일이다.”

-외계인의 비주얼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처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 보였으면 했다. 딱 보는 순간 ‘외계인이다’라고 느껴지기보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디자인이길 바랐다. 외계인들에게도 각자의 설정이 있다. 서로 아는 관계일 수도 있고 모르는 관계일 수도 있고, 각자의 신분과 역할, 출신이 모두 다르다. 그런 백스토리를 바탕으로 디자인도 모두 다르게 가져갔다.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수척하고 마르고 산화되고 썩은 모습으로 디자인했는데, 최종적으로는 그 부분을 완화했다. 지금도 이 행성에서 오랜 시간 고난을 겪고 있는 과정에 있는 상태를 담은 디자인이다.”

-관객의 해석에 맡긴 부분이 많은데, 의도한 지점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영화가 끝난 뒤 이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관객들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결은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를 내가 굳이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액션을 또 반복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객석을 채우는 관객들이 모두 다르다는 걸 항상 생각한다. 인간은 정말 다 다르다. ‘곡성’을 만들 때도 그랬다. 400석 객석을 채운 관객들은 종교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다. 같은 장면을 보여줘도 모두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다양한 관객들을 영화 안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관객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작업하게 된 거다. 명확하게 설명해서 오히려 오해를 사거나 부정당하는 것보다,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만의 이해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누구에게 묻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관객마다 이 영화는 모두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호프’로 지은 이유는.

“이미 모든 것이 침몰한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을 ‘호프’라고 지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희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성경 구절에도 나오듯 희망보다 믿음이 한 단계 위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간절한 희망이 믿음이 돼야 하고, 결국 확신이 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엔딩에서도 ‘믿음’을 ‘호프’로 바꿀까 고민했지만, 그 구절을 아는 분들이 조금 더 정확하게 그 구절을 떠올렸으면 해서 그대로 뒀다. 동화 같은 이야기다. 아주 따뜻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다.(웃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정호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정호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칸 국제영화제 이후 후반 작업에서 달라진 부분은 무엇인가.

“색이라도 맞추고 뭐라도 하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원래 개봉 일정이 있었는데 칸에 가는 바람에 시간적으로 두세 달 정도 손해를 본 셈이었다. 그걸 만회해야 했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치열하게 작업했다. 보완이라기보다 당시에는 중간 과정을 마무리한 거였다. 모델링은 실제 사이즈로 다 만들어놨고 애니메이션 작업도 끝난 상태였다. 영화제에는 그 단계에서 출품한 것이고, 다녀와서는 그 위에 라이팅을 얹는 등 원래 해야 했던 공정을 진행한 것이다. 새롭게 작업했다기보다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던 후반 작업을 이어간 셈이다. 사운드와 컬러도 마찬가지였다. 다녀온 뒤에는 편집도 바꿨다. 중간에 등장하는 영배의 삭제했던 장면을 다시 살렸고 몇 장면은 정리했다. 전체 러닝타임은 몇 분 정도 차이 나는 수준이었다.”

-목수 영배는 무엇을 의미하나.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공간을 제공하는 인물이고, 두 번째는 원흉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큰 충돌과 비극을 이야기하면서도 큰 악행을 저지른 인물에게 별 이유가 없었음을 설정해 준다. 악행이 꼭 거대한 악을 가져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물이다. 세상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어떤 현상을 이런 시선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했다.”

-짧은 콘텐츠 소비가 익숙한 시대에 긴 러닝타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나는 짧으면 돈 아깝던데.(웃음) 한 시간 반짜리 영화를 보면 돈이 아까워서 나가기 싫고, 하나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야기는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재탕할 수는 없으니까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플롯은 계속 길어질 수밖에 없다. 칸에 갔더니 4시간짜리 영화도 있더라. 그 이유는 결국 서사의 중요성 때문이다. 시리즈의 서사가 있고 영화의 서사가 있는데 영화의 서사는 어쩔 수 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물론 다른 감독들처럼 짧게 잘 만드는 분들도 계시니까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완성된 하나의 구조를 갖추고 그 안에 차별화된 것들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까지 담아 온전한 하나의 영상물이 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 안에 그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담아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영화를 향한 기대가 큰 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도 클 것 같다.

“10년 만에 영화인데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지 싶다.(웃음) 그래서 굉장히 부담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끝까지 최대한 하려고 한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인터뷰] 나홍진이라 가능한 ‘호프’라는 낯선 세계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