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조인성이 영화 ‘호프’에서 무술팀조차 쉽지 않다고 했던 고난도 액션을 직접 소화한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야 새로운 게 나오니까.” 그는 기술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화적 쾌감과 한국형 SF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끝까지 자신을 밀어붙였고 값진 결과물을 내놨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이 비상이 걸린 가운데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돼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극 중 조인성은 호포항의 청년 성기 역을 맡아 생존을 향한 인간의 본능과 두려움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인물의 처절한 생존 본능과 날것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쏟아내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조인성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액션을 직접 소화한 과정부터 나홍진 감독과의 작업, 캐릭터를 구축한 방식, 흥행에 대한 부담감과 작품을 향한 바람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고생을 정말 많이 했겠더라. 액션 난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특히 말을 타고 하는 액션이라 더욱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촬영은 어땠나.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숨을 몇 번 쉬니까 다들 ‘아, 알겠습니다’ 하더라.(웃음) 고생은 다 같이 했다. 몇몇 장면에서는 무술팀에 ‘이거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렇게까지는 안 해봤다’고 하더라. 승마하는 분들에게도 ‘이렇게 해봤냐’고 물어봤는데 ‘우리는 이렇게까지는 안 한다’고 하셨다. 그걸 내가 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싶었다. 위험해서라기보다 불가능한 걸 하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국ㄴ다나 말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계속 들썩이며 움직이니까 바운스가 되면서 몸이 튕겨 나갔다. 차 기준으로는 가드레인이 낮지만, 말을 타고 있으면 위치가 훨씬 높다. 체감상으로는 까딱하면 저쪽으로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말은 아스팔트에서 뛰는 동물이 아니다. 흙을 밟고 나아가게 돼 있는데 아스팔트에서는 미끄러진다. 그래서 발굽에 고무를 덧대긴 하지만, 원래 아스팔트에서 타는 건 좋지 않은 행위다. 시속 25~30km에 맞춰 차량이 붙어야 했다. 한 테이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은 컷을 계속 찍어야 하니까 대충 여섯, 일곱 번은 시도해야 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모두가 긴장했다. 모니터를 실은 차에 홍경표 촬영감독님과 나홍진 감독님이 타고 있었고, 특수촬영을 맡은 할리우드 팀도 함께했다. 먼저 출발하면 차 안에서 드론을 띄운다. 엄청 크고 대단한 특수장비를 활용해서 촬영 차량이 따라오고, 나는 제일 후미에서 말을 타고 출발했다. 내가 화면에 보이다가 어느 구간을 넘어가면 블루투스가 끊긴다. 그러면 소리만 들리는 거다. 그 소리로 사고가 났는지 안 났는지, 오케이인지 아닌지를 파악한다. 그러다가 ‘컷, 오케이’가 나오면 다 같이 박수를 쳐준다. 그런 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안전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 촬영했다.”
-그 장면을 해낸 뒤 나홍진 감독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다음 날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님, 이게 원래 안 되는 거라고 하던데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몰랐어요? 원래 안 되는 거래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걸 어떻게 한 거예요?’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하라고 하니까 했죠’라고 했다. ‘진짜 대단한 분이네’ 하더라.(웃음) 지금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액션을 소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더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그런데 우리 현장에는 더미 자체가 없었다. 만들지도 않았다.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욱한다.(웃음) 왜 직접 했냐면 그래야 새로운 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을 보기 위해 극장에 오는 것 아닐까. 특히 나홍진 감독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조차 없으면 무슨 재미로 영화적인 쾌감을 선사하고,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 수 있겠나. 어떤 힘이 없지 않나. 외계인을 보러 오라고만 할 수도 없는 거다. 클래식하게 인간이 직접 해내는 것, 예전에 스턴트를 직접 소화하던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적 쾌감을 줘야 관객도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게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인 것 같다. 기술의 힘으로 만드는 영화도 있고, 기술과 실제 액션을 함께 가져가는 영화도 있다. SF라는 장르도 부침이 많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더 큰 볼거리와 처절함을 보여줘야 한국형 SF 장르를 완성해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새로운 걸 만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다.(웃음)”
-시나리오 속 장면이 완성된 결과물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며 어땠나.
“이런 작품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강풀 작가의 작품도 머릿속에 있는 세계관을 구현해 낸 것 아닌가. 결국 현장에서는 그걸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싸움이다. ‘무빙’을 통해 한 번 경험해 봤지만, 기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만화적인 상상이 들어갈 수도 있고. ‘호프’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이게 완벽하게 구현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말을 타는 장면은 예전에도 시나리오에서 본 적이 있는데 결국 못 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걸 계속 고민해서 현장에서 구현했다. 구현 가능한 범위까지 최대치를 끌어올린 거다. 어디까지가 가능한지 나홍진 감독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능한 선을 정확히 잡고 달리다가 놓아주니까 그게 가능하더라. 그런 점들이 정말 놀라웠다. 그렇게 한 보람이 있으면, 하는 거다. 해놓고도 임팩트가 없을 때가 있다. 준비를 정말 많이 했는데도 막상 화면에서는 잘 안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느껴지더라. 그건 홍경표 촬영감독님과 무술팀 덕분이다. 그리고 모든 영광은 말에게 돌려야 한다.(웃음)”
-나홍진 감독과 작업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감독님의 전작만 봐도 스타일을 유추할 수 있지 않나. 집요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는 그게 나홍진 감독의 디폴트값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에 들어갔다. 후반부는 합천에서 촬영했다. 원래 한 달 정도 예상했는데 한 달 반이 넘어서 나왔다. 중간에 눈이 왔다. 눈이 오면 블랙아이스가 생기고, 그러면 나는 끝나는 거다.(웃음) 또 배경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CG가 마술처럼 다 해결해 주는 게 아니다.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항상 풀세팅을 하고 스탠바이했다. 분장만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아무것도 못 찍고 내려오는 날도 많았다. 하늘이 너무 맑아도 원하는 무드가 나오지 않아서 촬영을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에는 은색 구가 있었다. 그 구를 통해 빛을 어떻게 받는지 데이터를 만들어두고, 빛이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체크하면서 후반 작업을 한다. 빛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대낮에 크리처 영화를 찍는 건 정말 어려운 작업이다. 빛의 일관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런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는데도 그걸 선택한 나홍진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피해 가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용기와 뚝심이 있었다. 결국 날씨와의 싸움이었고,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성기라는 인물은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처음에는 외계생명체를 쫓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쫓기는 입장이 된다. 산으로 넘어가면서 그런 양가적인 모습을 영화에서 표현한 것 같다. 인간이 쫓기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미지의 생명체와 맞닥뜨렸을 때 생존에 대한 갈망으로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굉장히 본능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외계생명체가 여기 떨어졌다는 것부터가 우리가 만들어놓은 픽션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외계생명체를 상대로 얼마나 존엄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또 살려고 하면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실제 사례에서도 보지 않나. 부모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들도 있다. 암에 걸렸다가 수많은 기도와 염원 끝에 회복되는 사례처럼 그런 모든 것들이 결국 인간의 생존력이라고 생각한다. 감자를 먹는 장면도 그런 의미였다. 살려고 하는 의지 속에서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고,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다. 강하게 살아남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인간의 생존력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인물을 표현하는 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
“액션도 액션이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 성기와 그 무리의 관계가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했다. 거기에 범석도 있지 않나. 범석이 성기 무리를 대하는 방식과 나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런 관계들이 하나씩 축적되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냄새를 맡고 서로 낄낄거리는 장면이나 차 안에서 이동하며 웃고 떠드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이 쌓여야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자연스럽게 보이고, 연기의 자연스러움도 살아난다고 생각했다. 액션도 물론 중요하다. 운동 에너지로 채워지는 영역도 있다. 그걸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또 다른 영역으로,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신경 쓰였고 어려웠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마지막에 빅클로즈업이 들어왔을 때 캐릭터가 살아난다고 생각했다. 결국 리액션이 가장 중요하다. ‘밀수’에서도 나는 그냥 등장하지만, 김혜수 선배님의 반응에 따라 캐릭터가 살아난 거다. 그런 리액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 부분에 굉장히 집중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정호연은 어땠나. 어떤 강점이 있었나.
“영화는 처음이지만 연기를 처음 하는 배우처럼 느껴지게 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나도 놀랐다. ‘영화가 처음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시대가 정말 많이 변했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는 국내 시장 중심이었다. 해외 진출도 쉽지 않았고, 가까운 중국이나 선배들이 넓혀주신 일본 시장 정도가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 좋은 작품을 하면 한국 스타를 넘어 아시아, 더 나아가 글로벌 배우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장에서는 좋은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배우라는 자산도 필요하다. 정호연이 그런 배우라고 생각한다. 영어도 굉장히 잘하고 ‘슈퍼 코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쟁력을 가진 배우는 많지 않다. 나는 이제야 한국말을 잘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영어를 새로 배워 해외에서 활동하기는 쉽지 않다.(웃음) 하지만 정호연처럼 준비가 돼 있고 기회도 있는 배우라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장르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 것 같다. 어떤가.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관객이 재미있게 봐야 한다. 한국형 SF는 그동안 부침이 많았다. 장르가 가진 태생적인 어려움도 있고,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장르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영화도 나오지 않는 것 아닌가. 물론 ‘호프’가 한국형 SF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도약이자 시작은 될 수 있다. 어떤 결과물이든 실패가 있어야 더 좋은 결과도 나오는 것 아닌가. BTS도 하루아침에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전에 많은 선배들이 해외에 진출하며 실패도 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도 그런 과정에 있는 것 아닐까.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그것 또한 한국영화의 발전에 좋은 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선배 세대가 그런 도전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더욱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고, 기왕이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클 것 같다. ‘호프’가 관객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았으면 하나.
“나는 내 나름의 영역 안에서 영화를 해온 배우인데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황정민 선배나 나홍진 감독도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을 거다. 피부로 느껴지는 대외적인 상황들이 있잖나. 능소화라는 꽃이 있다. 그 꽃은 장마와 태풍 속에서도 피는 꽃이라고 하더라. 하늘을 비웃듯 활짝 핀다고 들었다. 우리 작품이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안팎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고, 한국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품속에서 활짝 피는 작품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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