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수영을 끝내고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있는데 나보다 일곱 살 많은 어르신이 묻더군. “김 선생님은 주식은 안 해요?” 내가 가방끈이 좀 길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언제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르는 분이야. 내가 뭐라 대답했겠나? “형님. 저는 지금도 부자입니다. 일흔이 넘어서도 돈을 더 모으려고 하는 건 노욕이지요. 늙어서도 돈 욕심 부리면, 칠십 인생 잘못 산 것 아닐까요?”
요즘 주위에서 주식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 보면서 배 아파 죽겠다는 또래 노인들을 자주 보네. 물론 아직 복지제도가 미약해서 직접 노동을 해야 세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는 돈이 중요하지. 하지만 많은 연금을 받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욕심내는 노인들을 보면 측은할 때가 많아. 그래서 아파트 투기나 주식으로 큰돈을 번 사람을 부러워하는 지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다시 가지 않네. 일흔이 넘어서도 돈이야기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내 순수한 영혼마저 오염될 것 같아 두렵거든. 이왕 말이 나왔으니, 오늘은 돈 이야기나 해볼까? 먼저 고두현 시인의 <돈>부터 읽어보세.
“그것은 바닷물 같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목마르다고/ 이백 년 전,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한 세기가 지났다// 이십 세기의 마지막 가을/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93세로 세상을 뜨며 말했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그리고 오늘/ 광화문 네거리에서/ 삼팔육 친구를 만났다.// 한잔 가볍게/ 목을 축인 그가/ 아주 쿨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주머니가 가벼우니/ 좆도 마음이 무겁군!”
쇼펜하우어는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이 시를 읽으면서 알게 된 사람일세.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인 코스톨라니(Andre Kostolany, 1906~1999)는 18세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서 증권투자를 배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는군. 쉽게 말하면, 현대판 투기꾼이지. 네 번째 연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는 그 사람의 책 제목이라는군. 대학에서 철학과 예술사를 전공하고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사람이라 책 제목은 그럴듯하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 나도 인정하네. 자본주의 체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만물의 상품화’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돈을 매개로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버리는 게 자본주의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이 없어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뭘까?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건 이미 아무것도 없어. 날마다 들이마시는 공기는 공짜 아니냐고? 물론 공짜지. 하지만 가난하면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가 많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 가능성이 높아. 부자들은 공기정화기로 깨끗해진 공기를 마시거나 오염되지 않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거든. 사랑? 요즘은 돈 없으면 사랑도 못 해. 아직도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고? 물론 그런 사람도 간혹 있지만 원시인 취급을 받기 쉽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은 어떠냐고? 우리 사회는 이미 가난하면 부모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세상이야. 그러니 모든 게 상품화된 사회에서는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고 살려면 돈이 필요해.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에 기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걸세. 이른바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기면 필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올 수밖에 없어. 자본의 축적과 확장 욕망은 끝이 없거든. 돈은 “바닷물 같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목마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맞아. 평생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늙어 죽을 때까지 더 많이 가지려고 추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자본주의 세상이야. 그러니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어.
이 시에 나오는 “삼팔육 친구”들은 순진했던 사람들이야.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면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가 될 것으로 믿었지. 민주화된 세상이 이기심으로 오염된 인간들의 천국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야. 화폐라는 물신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어. 자본주의와 돈의 본질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1987년 이후 정치 민주화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재벌을 포함한 부자들이야. 경제영역에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역할을 줄이거나 추방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진짜 주인이 되었지. 그 결과 빈부격차는 지속해서 확대되었네. 이런 상황이니 “주머니가 가벼우니/ 좆도 마음이 무겁군!”이라는 “삼팔육 친구”의 푸념이 씁쓸하게 들릴 수밖에.
며칠 전에는 이른바 좌파 정부의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두 재벌 회장에게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하는 걸 보았네. “삼팔육”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산당 선언』에서 현대 국가의 집행부는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이익을 관리하는 위원회’라고 주장했던 마르크스의 말이 생각나서 <돈>의 마지막 행인 “좆도 마음이 무섭군!”을 반복해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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