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자율주행 화물차가 실제 택배 물류망 안으로 들어왔다. 기술을 보여주는 실증 구간이 아닌, 실제 화물을 싣고 운임을 받는 상업 운송 구간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물류 현장에 적용되는 방식도 시험도로 중심에서 간선 운송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진(002320)은 25톤 자율주행 화물차를 활용한 유상운송을 국내 최초로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로부터 유상화물운송 허가를 취득한 데 따른 것으로, 자율주행 화물차가 실제 택배 화물을 싣고 상업 운송에 투입되는 첫 사례다.
운행 구간은 전라북도 군산항에서 한진 전주택배터미널을 거쳐 대전 메가허브까지 이어지는 편도 118㎞다. 자율주행 화물차는 이 구간을 주 3회 운행한다. 안전을 위해 운전석에는 전문 안전요원이 탑승하며,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개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번 운행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자율주행 차량이 투입된 장소다. 택배업계에서 25톤 대형 트럭은 터미널과 허브를 오가며 대량 화물을 옮기는 간선 트럭 역할을 맡는다. 소비자 집 앞까지 배송하는 1톤 차량과 달리, 정해진 거점 사이를 반복적으로 이동하는 물류의 뼈대에 해당한다.
자율주행 기술이 물류에 들어올 때 간선 운송이 초기 적용처로 꼽히는 이유다. 간선 운송은 노선이 비교적 일정하고, 운행 패턴을 예측하기 쉽다. 터미널과 허브를 중심으로 물동량이 모이고, 야간 운행 비중도 크다. 자율주행 기술을 상업 운송에 적용하기 위한 데이터 확보와 운영 검증이 가능한 구조다.

그동안 국내 화물차 자율주행은 기술 실증 성격이 강했다. 차량이 스스로 달릴 수 있는지, 관제 시스템과 도로 인프라가 제대로 연동되는지 확인하는 단계였다. 이번 한진의 유상운송은 여기에 실제 화물과 운임 구조가 붙었다. 기술 검증을 넘어 물류 서비스 안에서 자율주행을 운영하는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다만 이번 운행을 곧바로 무인 화물 운송의 본격화로 해석하기는 이르다. 운전석에는 안전요원이 탑승하고, 운행 구간도 군산항~전주택배터미널~대전 메가허브로 제한된다. 주 3회라는 운행 빈도 역시 상용화 초기 단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현재의 핵심은 운전자를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실제 도로와 터미널 환경에서 자율주행 화물차를 어떻게 관리하고 운용할지 경험을 쌓는 데 있다.
한진 입장에서도 당장의 효율 개선보다 중요한 자산은 운영 데이터다. 자율주행 화물차가 터미널에 진입하고, 대기하고, 하역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도로 주행만큼 복잡하다. 차량의 위치와 속도, 주변 교통 상황, 터미널 내 동선, 관제 시스템의 개입 기준 등이 축적돼야 향후 자율주행 물류 운영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
한진은 자율운송 차량이 택배터미널 입차부터 대기, 하역장 진입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관제와 인지장비를 갖춘 터미널 체계를 마련했다. 자율주행 트럭 한 대의 운행보다 이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와 운영 경험이 향후 경쟁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율주행 보편화 이후 물류기업 간 격차는 차량 도입 여부보다 실제 운송망에서 얼마나 많은 운영 사례를 확보했는지에 따라 갈릴 수 있다.
이번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새만금 자율운송 상용차 실증지원인프라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한진은 2023년 9월 자동차융합기술원(JIAT), 엘엑스공간정보연구원(LX공간정보연구원), 한국통합물류협회와 공동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단계별 실증을 거쳐 국토교통부 유상화물운송 허가를 취득했고, 실제 상업 운송으로 이어졌다.
참여 기관의 역할도 분명하게 나뉘었다. 한진은 물류 운영 인프라와 상업 운송 물량을 제공했다. JIAT는 자율주행 실증 도로 인프라와 실증 차량 구축을 맡았고, LX공간정보연구원은 자율주행 관제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는 협력 체계와 운영 지원을 담당했다.
자율주행 화물 운송은 물류업계가 마주한 구조적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간선 운송은 장거리·반복 운행 비중이 크고, 운전자 확보 부담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여기에 택배 물동량 증가와 허브 중심 물류망 확대가 맞물리면서 운송 효율을 높일 기술 수요도 커졌다.
자율주행 화물차는 이 흐름 속에서 비용절감과 안전 관리, 운송 안정성을 함께 검증해야 하는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현장 적응력이 관건이다. 고속도로와 일반도로, 항만과 터미널, 도심 접근 구간은 각각 다른 운행 변수를 갖고 있다. 날씨, 야간 시야, 주변 차량의 돌발 움직임, 하역장 혼잡도까지 고려하면 자율주행 화물차의 상업 운송은 차량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제, 터미널 운영, 운송 스케줄, 비상 대응 체계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한진이 이번 유상운송을 통해 확보하려는 것도 이 종합 운영 능력이다. 실제 화물을 싣고 정해진 노선을 반복 운행하면 기술 실증에서 얻기 어려운 데이터가 쌓인다. 운행 시간대별 도로 상황, 터미널 진입 패턴, 안전요원 개입 빈도, 관제 시스템 반응 등이 축적되면 향후 자율주행 화물차 확대의 기준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진 관계자는 "이번 자율주행 화물차 첫 상업 운송을 계기로 향후 미래 물류 시장에서의 대응력을 강화하고,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현장 적용을 통해 스마트 물류 혁신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한진의 자율주행 화물차 유상운송은 완전 무인 물류의 도착점보다 실제 물류망 안에서 시작된 상업 운송 데이터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율주행 트럭이 얼마나 잘 달리는지를 보여주는 단계에서, 물류기업이 이를 어떻게 배차하고 관제하고 터미널 운영과 연결할지 검증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택배 간선망에 들어온 자율주행 화물차의 진짜 가치는 운행 거리보다 그 안에서 쌓이는 현장 데이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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