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온 마을에 비상이 걸리고 범석은 믿기 어려운 현실을 만난다.
지원해 줄 인력들은 산불을 끄러 갔고 이젠 통신도 두절됐다. 범석과 순경 성애(정호연 분)는 노인들뿐인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놈을 쫓아 산으로 향했던 청년들과 성기(조인성 분)는 되려 사냥감이 된다. 무지가 빚어낸 불행의 씨앗은 입장의 차이를 거쳐 온 우주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베일을 벗었던 ‘호프’가 일부 편집을 거쳐 국내에서도 공개됐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익숙한 한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크리처와 액션, 재난 장르를 결합한 독특한 세계를 펼쳐낸다. 황정민과 조인성·정호연을 비롯, 테일러 러셀·알리시아 비칸데르·마이클 패스벤더 등 국내외 배우들이 출연했다.
칸에서 공개된 버전보다 약 4분가량 짧아진 ‘호프’는 156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무색할 만큼 순식간에 흘러간다. 특히 한 시퀀스가 빠지면서 리듬이 한층 응축됐다. 거대한 액션과 추격전, 예상치 못한 유머가 쉼 없이 이어지며 좀처럼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극장에서 만날 때 비로소 이 영화가 가진 장르적 쾌감이 제대로 살아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액션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영화는 전반과 후반을 책임지는 두 개의 굵직한 액션 시퀀스를 배치한다. 전반부는 범석의 시선을 따라 정체불명의 존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이다. 폐허가 돼가는 마을 곳곳을 누비며 흔적을 쫓는 비교적 단순한 흐름이지만, 그 안에 카체이싱과 총격전, 추격 액션 등을 촘촘히 배치하며 끊임없이 리듬을 바꾼다.
후반부는 완전히 반대다. 이번에는 인물들이 외계 생명체에게 쫓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사투가 이어진다. 결국 두 시퀀스 모두 ‘쫓고 쫓기는 이야기’지만 반복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반부가 ‘쫓는’ 긴장감이라면 후반부는 ‘쫓기는’ 공포를 내세우며 분위기를 뒤집는다. 같은 틀 안에서도 전혀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끝까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외계 생명체라는 소재 역시 의외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한국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설정이라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는 그 존재 자체보다 그것을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과 혼란에 집중한다. 한국의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공간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더 강한 긴장감을 만든다.
긴장감으로만 밀어붙이지 않는 점도 장점이다. 적재적소에 유머를 배치하며 완급을 자연스럽게 조절한다. 그중에서도 반가운 카메오가 등장해 괴물 목격담을 늘어놓는 장면은 가장 큰 웃음을 안기면서도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유머와 불안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이 영화만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신이다.
배우들도 호연을 펼친다. 황정민은 평범한 마을 출장소장 범석이 점차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맞닥뜨리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조인성은 거친 에너지와 강도 높은 액션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호연 역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안정적인 연기로 힘을 보탠다. 여기에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테일러 러셀 등 해외 배우들은 모션 캡처와 페이셜 캡처를 통해 외계 생명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한 번보다 두 번째 관람에서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거대한 스케일과 액션에 시선이 쏠린다면, 다시 볼 때는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무심하게 지나쳤던 대사, 초반에 심어둔 복선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한 번 보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다. 오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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