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전동차 입찰 논란] ‘타사 실적 인정’ 적법성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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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다원시스의 장기 납품 지연 문제를 지적하며 철도차량 입찰과 계약 관리 체계 전반의 개선 필요성을 주문했다.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다원시스의 장기 납품 지연 문제를 지적하며 철도차량 입찰과 계약 관리 체계 전반의 개선 필요성을 주문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공공입찰에서 ‘납품실적’은 계약이행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핵심 기준이다. 특히 다수 시민이 이용하는 전동차는 설계와 제작, 형식승인, 유지보수까지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실적평가의 의미도 일반 물품과 다르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의 전동차 구매 입찰에서는 협약서를 통해 타사의 납품실적을 인정한 평가기준을 둘러싸고 적법성 논란이 불거졌다. 입찰에서 탈락한 우진산전은 입찰공고의 직접생산 조건과 평가기준이 함께 적용되는 과정에서 법률적 쟁점이 발생했다며 지난달 29일 코레일을 상대로 가처분(‘임시지위 확인 및 절차진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 납품실적 없어도 타사와 협약하면 실적 인정?

코레일은 지난 5월 22일 월곶판교선(48칸), 인덕원동탄선(92칸), 대경선(4칸) 등 신규 전동차 144칸 구매 입찰을 공고했다. 이번 입찰은 기술평가를 통과한 업체를 대상으로 가격입찰을 실시하는 ‘2단계 규격(기술)·가격분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지난달 23일 개찰 결과 로만시스가 낙찰예정자로 선정됐다. 기술평가에서는 우진산전과 로만시스가 모두 기준점수인 85점을 넘겼고, 이후 가격입찰에서 로만시스가 낮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최종 낙찰예정자가 됐다.

하지만 우진산전은 낙찰 결과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로만시스가 자체 전동차 형식승인과 납품실적이 없는 상황에서도 현대로템과 체결한 기술지원협약서와 물품공급확약서를 근거로 기술평가를 통과한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코레일은 이번 입찰에서 △입찰자가 자기 명의의 형식승인과 △납품실적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해당 실적을 가진 업체와 계약 이행 과정에서 협력하기로 약정한 경우 협약서를 제출하면 그 업체의 납품실적을 입찰자의 실적으로 인정하는 평가기준을 적용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직접 생산’과 ‘실적 인정’이라는 두 기준이 하나의 입찰에서 함께 적용됐다는 점이다. 입찰공고는 계약을 따낸 업체가 직접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평가에서는 전동차 납품실적이 없는 업체라 하더라도 해당 실적을 보유한 업체와 협약을 맺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그 업체의 납품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우진산전은 이 같은 평가 방식이 계약상대자의 계약이행 능력을 검증하는 취지와 부합하는지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 5월 22일 월곶판교선, 인덕원동탄선, 대경선에 투입할 신규 전동차 144칸 구매 입찰을 공고했으며, 지난달 23일 개찰 결과 로만시스를 낙찰예정자로 선정했다. / 나라장터 홈페이지 갈무리
코레일은 지난 5월 22일 월곶판교선, 인덕원동탄선, 대경선에 투입할 신규 전동차 144칸 구매 입찰을 공고했으며, 지난달 23일 개찰 결과 로만시스를 낙찰예정자로 선정했다. / 나라장터 홈페이지 갈무리

◇ 실적은 빌리고 책임은 누가?

공공입찰에서 납품실적은 단순히 과거 계약 실적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발주기관이 계약상대자의 기술력과 계약이행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핵심 평가 요소다.

특히 전동차는 수백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철도차량으로, 설계와 제작, 형식승인, 성능시험,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이 안전과 직결된다. 이 때문에 전동차 입찰에서는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계약상대자가 차량을 안정적으로 제작·납품하고 유지관리할 역량을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과정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꼽힌다.

국가계약법도 이런 취지에서 계약이행 능력을 입찰 평가의 핵심 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계약법은 경쟁입찰에서 계약이행능력을 심사해 낙찰자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계약예규인 ‘적격심사기준’은 이행실적과 기술능력 등을 주요 심사항목으로 두고 있다. 결국 납품실적은 단순한 과거 실적이 아니라 계약상대자가 해당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인 셈이다.

이번 논란은 공동수급 제도(컨소시엄)와도 비교된다. 국가계약법은 둘 이상의 업체가 실적과 기술력을 결합해 입찰에 참여할 경우 공동수급체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공동수급체 구성원은 계약 이행에 대한 연대 또는 분담 책임을 함께 부담하고, 실적 역시 참여 비율 등에 따라 인정받는다. 즉, 실적을 인정받는 만큼 계약상 책임도 함께 지는 구조다.

반면 이번 입찰은 공동수급체를 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협약서를 근거로 다른 업체의 납품실적을 인정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협약을 맺은 업체는 기술지원 등을 약정했지만 계약 당사자는 아니다. 이 때문에 공동수급처럼 실적은 인정하면서도 계약 이행과 하자보수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은 동일하게 부담하지 않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가처분 신청에서 제기된 핵심 법률 쟁점이다.

올해 3월 KTX 누적 이용객이 12억3,000만명을 넘어섰다. 수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철도차량인 만큼 계약이행 능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입찰 절차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 뉴시스
올해 3월 KTX 누적 이용객이 12억3,000만명을 넘어섰다. 수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철도차량인 만큼 계약이행 능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입찰 절차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 뉴시스

◇ 우진산전 “책임 불명확”… 코레일 상대 가처분 신청

우진산전은 협약서를 통해 기술지원을 약정한 업체와 실제 계약상대자가 다른 구조에서는 차량 결함이나 중대한 하자가 발생할 경우 설계와 제작, 품질보증 책임의 범위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협약을 체결한 업체가 계약 당사자가 아닌 만큼 공동수급체와 같은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지난 3일 배포한 해명자료를 통해 직접생산 조건과 평가기준은 서로 다른 단계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직접생산 조건은 계약 체결 이후 계약상대자가 해당 물품을 직접 제조·납품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사항이며, 이번 사업 역시 계약 체결 후 낙찰예정자가 직접 제작·납품할 예정이라고 했다.

코레일은 또 이번 평가기준이 특정 업체를 위한 예외가 아니라 기존 전동차 입찰에서 일관되게 적용해 온 기준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형식승인 수행 경험이 있는 업체와 협력하기로 약정한 경우 납품실적으로 인정하도록 기준을 보완했고, 올해 전동차 144칸 입찰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계약 체결 전 현장실사와 외부 전문가 평가를 통해 기술지원 방안과 계약이행 보증 방안을 확인한 뒤 계약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가처분은 계약 체결 이후 이행 과정이 아니라 입찰 단계에서 계약이행 능력을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를 둘러싼 법률적 다툼이라는 점에서 양측의 시각차가 크다. 특히 전동차는 다수 국민이 이용하는 철도차량으로 설계와 제작, 형식승인, 유지관리 전 과정이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계약이행 능력을 검증하는 절차 역시 객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향후 법원의 판단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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