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준규의 ESG 모델링44] 부의 사다리를 재설계下 프랑스 개인활동계좌(CPA)가 증명하는 역량이 곧 자산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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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컨설턴트 심준규] 퇴근 후 유튜브를 켜면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에이전트 구축 방법이나 관련 강의 광고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끊임없이 올라온다. 관심이 생겨 수강료를 알아보면 몇십만원은 기본이고, 괜찮은 부트캠프는 수백만원을 훌쩍 넘는다.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월급에서 고정 지출을 빼고 나면 그 비용을 선뜻 쓰기가 쉽지 않다.

AI가 빠르게 직업 지형을 바꾸는 시대에 이 문제는 더 무거워진다. 지금 하는 일이 5년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환경에서, 통장 잔고보다 더 오래가는 자산은 변화에 적응하는 역량이다. 그런데 이는 저절로 쌓이지 않고 시간과 비용을 모두 투입해야 한다. 청년이 당장 생활비를 감당하며 재교육 비용까지 스스로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프랑스는 청년의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개인활동계좌(CPA, Compte Personnel d'Activité·콩트 페르소넬 다크티비테)를 도입했다. 돈 대신 노동 시간을 적립하는 제도다. 16세 이상 모든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고용 형태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일을 하면 그 경험과 시간이 온라인 계좌에 자동으로 쌓이는 구조다. 정규직이든 아르바이트든 프리랜서든, 심지어 실업 상태에서 자원봉사를 해도 그 활동이 기록된다.

CPA는 크게 세 가지 계좌로 구성된다.

가장 중심이 되는 개인훈련계좌(CPF, Compte Personnel de Formation)는 근로 시간에 비례해 교육 크레딧이 쌓이는 구조다. 정규직으로 풀타임 근무하면 연간 500유로(77만원)씩 적립되고, 최대 5000유로(770만원)까지 누적된다. 직장을 바꾸거나 실직해도 적립된 금액은 그대로 유지된다. 저숙련 노동자나 장애인으로 인정받으면 연간 800유로(123만원)로 적립 속도가 빨라진다.

적립된 크레딧의 사용 방식이 독특하다. 현금으로 인출할 수는 없지만, 코딩·데이터 분석·AI 활용·외국어·창업 준비 등 국가가 인증한 수천개 교육 과정 중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직접 골라 수강료를 결제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다. 어떤 기술이 자신 미래에 필요한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직접 선택하는 구조다. 교육 필요성을 회사나 국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주도권을 갖는다는 점이 기존 직업 훈련 제도와 다른 부분이다.

여기서 CPA가 설계한 논리가 드러난다. 일을 하는 행위 자체가 교육 자산 적립으로 이어지고, 그 자산은 다시 더 나은 직업을 위한 역량으로 전환된다. 노동으로 소득뿐 아니라 미래 경쟁력도 함께 쌓이는 구조다. CPA는 인적자본 투자를 개인이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제도가 판을 깔아준 사례다.

고용 형태나 직장이 바뀌어도 권리가 이어지도록 설계돼 CPA는 특정 회사에 종속되지 않는 개인의 독립적 경력 자산으로 기능한다. 과거 직업 훈련은 회사가 필요할 때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회사 이해관계와 개인 성장 방향이 엇갈릴 때 개인은 선택권이 없었다. CPA는 그 구조를 바꿔, 직장을 떠나도 쌓아온 교육 권리는 사라지지 않도록 설계됐다.

물론 제도가 처음부터 순탄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교육 시장에 부실한 업체가 몰려들면서 사기성 교육 상품이 급증했다. 프랑스 정부는 2024년부터 CPA 내 개인훈련계좌를 활용해 교육을 신청할 때 본인 부담금 150유로(23만원)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했다. 무료라서 아무 과정이나 등록하는 행동을 줄이고, 진짜 필요한 교육에 집중하도록 구조를 손봤다. 제도가 현실에서 부딪힌 문제를 수정하면서 진화한 과정 자체가 CPA의 가치를 보여준다.

프랑스 CPA를 한국 청년 지원 구조와 견주어 보면 차이가 뚜렷해 진다. 국내에도 ‘국민 내일 배움카드’처럼 직업 훈련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그 금액이 1인당 200만~300만 원 수준에서 소진되면 끝나고, 신청 가능한 교육 과정 폭도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일을 하는 행위 자체가 교육 자산 적립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CPA처럼 노동 시간과 교육 권리가 자동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없으니,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껴도 비용과 시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벽은 그대로다.

AI 전환이 빠른 산업일수록 이 격차는 더 크게 작동하게 된다. 제조업, 물류, 금융, 서비스업 할 것 없이 반복적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같은 방식으로 일해서는 고용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재교육 타이밍을 놓치면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 재교육을 개인에게만 맡겨두면 결국 이미 여유가 있는 사람만 적응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청년미래적금이 목돈을 만들어주는 출발점이라면, 영국 Lifetime ISA는 그 돈을 자본 시장과 연결하려 했고, 프랑스 CPA는 돈이 아닌 인적자본 역량 자체를 자산으로 쌓는 구조를 설계했다. 세 나라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하려 한 셈이고,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결되지 않는다.

비용 지원과 성장할 조건 조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출발점이 생겼다면, 자본 시장으로 향하는 경로와 역량 자산을 쌓는 경로가 함께 설계될 때 부의 사다리는 위층으로 이어진다. 지금 한국 청년 정책 논의가 얼마나 줄지에 집중돼 있다면, 그 다음 논의는 어떻게 성장하게 할 지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야 할 때다.

|심준규.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 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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