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유진형 기자] KBO 역대 최고 구속 161.7km를 찍은 괴물 투수가 경기 직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상대 팀 최고참 타자를 향한 정중한 인사였다.
지난달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의 새 외국인 투수 약셀 리오스는 팀이 2-0으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올라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삼진으로 솎아 내며 데뷔 첫 세이브를 수확했다.
이날 리오스는 단순히 세이브를 추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KBO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가장 높은 곳에 새겨 넣었다.
리오스가 9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삼성 김영웅을 상대로 던진 3구째 패스트볼이 KBO 공식(트랙맨) 구속 기준 161.7㎞를 마크했다. 이는 지난해 9월 한화 문동주가 수원 KT전에서 기록했던 종전 최고 구속인 161.44㎞를 단숨에 갈아치운, KBO 구속 측정 사상 정규시즌 최고 신기록이었다.
잠실구장 전광판에 찍힌 경이로운 숫자에 야구팬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터져 나왔고, KBO 첫 세이브와 최고 구속 신기록이라는 겹경사를 맞이한 리오스 역시 기쁨을 만끽할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기 전, 리오스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바로 1루 베이스를 밟고 있다가 3루 원정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던 삼성의 리빙 레전드 최형우였다.
리오스는 쓰고 있던 모자를 손으로 잡고, 최형우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국경과 팀을 초월해, 마흔셋의 나이에도 리그 최정상급 타격을 과시하는 대선배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의 표시였다.
이날 리오스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첫 타자 박승규를 상대로 160.9㎞를 꽂아 넣으며 3구 삼진을 잡아냈고, 전날 자신에게 3타점 싹쓸이 적시타를 안겼던 디아즈는 139㎞의 날카로운 커브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삼성 타자들의 스트라이크존을 폭격하는 리오스의 강속구는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하지만 2사 후 마주한 최형우는 완전히 달랐다. 초구 158km 패스트볼에 타이밍이 늦자, 최형우는 다음 159㎞ 패스트볼을 파울로 걷어내며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과감하게 당겼다.
볼카운트 1B-2S에서 리오스는 결정구로 147㎞의 고속 포크볼을 선택했다. 웬만한 투수들의 전력투구 패스트볼 구속으로 뚝 떨어지는 변화구였기에, 보통의 타자라면 배트가 허공을 갈랐을 것이다.
그 순간 베테랑의 클래스가 빛났다. 최형우는 공이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자, 본능적으로 배트를 쥔 왼손을 놓으며 결대로 공을 쳤다. 배트 컨트롤 하나로 160km의 잔상을 지워내며 1.2루 간을 깨끗하게 가르는 안타를 만들어낸 것이다. 왜 그가 KBO 역사상 가장 많은 안타를 친 리빙 레전드인지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리오스는 다음 타자인 김영웅마저도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끝냈지만, 최형우가 보여준 정교한 타격 기술이 그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듯했다.
KBO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와, 그 공을 가장 노련하게 받아 친 최고령 타자. 경기 종료 후 팀 승리 세리머니를 하기 전 리오스의 고개 숙인 인사는 현장을 지켜본 야구팬에게 가슴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강속구라는 압도적인 무기로 리그를 평정하러 온 외국인 괴물 투수, 그리고 세월을 거스르는 베테랑을 향한 그 정중한 리스펙. 치열한 승부 세계의 이면에 감춰진 야구의 낭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잠실의 밤이었다.
[LG 리오스가 승리 세리머니를 하기 전 삼성 최형우을 향한 정중한 리스펙으로 시선을 끌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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