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의사의 눈이 흐려지는 데 걸린 시간은 석 달이었다.
인공지능(AI) 보조 탐지 시스템을 도입한 폴란드 4개 내시경 센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폴란드의 의사들로 구성된 연구진이 그 현장을 추적해 2025년 10월 연구내용을 발표했다. AI가 도입되기 전 2000건 이상의 시술 경험을 가진 숙련 내시경 의사 19명이 검사 100건 중 대장암 전 단계인 선종을 얼마나 찾아냈는지 측정했다. 그 비율은 28.4%였다. AI와 함께 일한 지 석 달 뒤, AI 없이 같은 검사를 진행했다. 발견율은 22.4%로 내려앉았다. 6%포인트 절대 감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하락이었다.
능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2000번 넘게 현장에서 쌓아온 단련된 눈과 손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따로 있었다. AI가 먼저 신호를 보내는 환경에서, 의사들은 스스로 먼저 나서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화면이 반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기 눈이 움직여야 할 자리가 조금씩 비어갔다. 그 빈자리가 석 달 만에 수치로 드러났다. 이것을 탈숙련화(deskilling)라 부른다. 쓰지 않아서 잃는, 능력의 조용한 침식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스위스·독일의 대학교 연구진이 2025년 8월 내놓은 분석은 탈숙련화보다 한 층 아래의 위협을 짚는다. 연구진은 안과 수련 현장을 추적한 기존 연구들을 들여다보면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눈 속 세밀한 구조를 영상으로 찍어내는 진단 장비인 OCT(Optical Coherence Tomography)가 도입된 이후 수련 중인 안과의사들이 환자를 직접 진찰하기보다 장비가 찍어낸 영상만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에 '업스킬링 억제(upskilling inhibit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의학 수련은 원래 쉬운 사례에서 어려운 사례로 한 단계씩 올라가며 진단 감각을 익히는 과정이다. 그런데 AI나 정밀 장비가 그 단계를 건너뛰게 해주면, 수련의는 어려운 사례를 직접 부딪혀볼 기회 자체를 빼앗긴다. 탈숙련화가 이미 손에 익은 감각이 무뎌지는 것이라면, 업스킬링 억제는 그 감각이 손에 익을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탈숙련화와 업스킬링 억제, 이 둘은 결이 다른 위협이다. 탈숙련화는 한때 잘하던 것을 못하게 되는 것이고, 업스킬링 억제는 잘할 수 있었던 기회 자체를 놓치는 것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둘 다 AI가 먼저 나서는 환경에서, 인간이 스스로 나설 자리가 줄어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두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지금 AI에게 맡기고 있는 그 판단을, 나는 한 번이라도 직접 해본 적이 있는가.
AI는 오늘의 성과를 높인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과가 쌓이는 동안 우리가 혼자 설 수 있는 능력이 조금씩 줄어든다면, 그 편리함을 마냥 좋은 것이라 부를 수 있는가. AI에게 기대는 만큼 스스로 부딪혀볼 기회가 사라지고, 그 기회가 사라진 만큼 감각이 자랄 자리도 줄어든다. 성과가 빨리 쌓일수록, 그 성과를 혼자 만들어낼 능력은 더디게 자란다.
이것은 의료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AI를 쓰는 방식도 정확히 같은 구조를 따른다. 회의 전에 AI에게 먼저 아이디어를 물어보는 사람, 글을 쓰기 전에 AI에게 먼저 구성을 짜달라고 하는 사람, 판단이 서지 않을 때 AI의 답을 먼저 보고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 이들이 당장 내놓는 결과물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빠르고 그럴듯하다. 문제는 그다음에 온다. AI 없이 같은 종류의 일을 마주했을 때,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내시경 의사의 발견율이 떨어졌던 것처럼, 그 막막함은 감각을 쓰지 않은 시간이 쌓인 결과다.
같은 AI 앞에서도 사람마다 서는 자리가 다르다. 텍스터처럼 한 발 물러서거나, 컨텍스터처럼 먼저 나서거나.
텍스터는 AI가 먼저 답을 내면 그 자리에서 물러선다.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제시된 답의 테두리 안을 맴돈다. AI가 먼저 구성을 짜주면 그 구성 안에서 내용을 채우고, AI가 먼저 방향을 잡아주면 그 방향 위에서 디테일을 더한다. AI 신호를 기다리며 화면을 바라보던 내시경 의사처럼, 먼저 움직였어야 할 감각이 그 자리에 멈춰 있다. 결과물은 완성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자신의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 AI가 그린 테두리 안에서 나온 것인지 점점 흐릿해진다. 한 번의 물러섬은 작다. 그러나 그 물러섬이 습관이 될수록 스스로 먼저 나서는 능력은 조용히 뒷자리로 밀려난다.
컨텍스터는 먼저 나선다. AI를 열기 전에 이 문제를 자신이 어디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막히는 지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정의한 뒤에야 AI를 불러들인다. AI는 그 과정의 마지막 도구다. 이것은 AI를 더 잘 쓰기 위한 준비다. 스스로 먼저 나서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짧더라도 그 시간 안에서 감각은 가동된다. 가동된 감각은 쌓인다. 결과물에서 당장 차이가 보이지 않더라도 다음번에 혼자 같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컨텍스터가 AI를 도구로 쓸 수 있는 것은 AI 이전에 자신의 감각을 먼저 써왔기 때문이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AI에 기대는 사람은 겉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둘 다 AI를 쓰고, 둘 다 결과를 낸다. 그러나 AI가 사라지는 순간, 그 차이는 단번에 드러난다. 텍스터와 컨텍스터를 가르는 것은 AI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가 아니다. AI 앞에서 먼저 나선 적이 있느냐 없느냐다.
감각은 쓴 사람에게만 남는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