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몇 년간 의료 인공지능(AI)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AI가 CT와 MRI 영상을 판독하고, 질병 위험도를 예측하며, 환자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시대가 현실이 됐다. 정부 역시 AI를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며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의료 AI 기업이 존재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도 적지 않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은 미국 FDA 승인과 유럽 CE 인증을 획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AI 산업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기술 부족을 원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업을 운영해본 경험으로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날 의료 AI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보상체계다.
아무리 뛰어난 AI 솔루션이라도 병원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면 시장은 형성되지 않는다.
의료기관은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조직이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뿐 아니라 병원 운영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상당수 의료 AI 제품은 의료진의 업무를 줄이고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건강보험 수가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의료진은 기존 방식을 유지하게 되고, 병원 역시 새로운 기술 도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AI 기반 의료기기에 대한 별도 보상체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유럽 역시 가치 기반 의료(Value-Based Healthcare) 관점에서 혁신 기술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경제적 환경까지 함께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인허가 중심의 접근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의료 AI 기업들은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을 완성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까지 획득한다. 하지만 그 이후 단계에서 적절한 수가 체계를 확보하지 못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수많은 기업들이 '인허가를 받았지만 팔리지 않는 기술'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다.
이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데이터와 의료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인해 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AI는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혁신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지 못한다면 결국 환자도, 의료진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이제 정책의 방향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좋은 기술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앞으로는 '좋은 기술이 실제 사용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허가 이후의 사업화 과정, 임상현장 적용, 보험급여 연계, 성과 기반 보상체계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의료 AI의 미래는 더 이상 기술 자체에 달려 있지 않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혁신 기술이 의료현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보상체계다. 의료 AI 산업의 성패는 결국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니라, 그 기술이 지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송민영 SHMD 대표/서울대보건대학원 보건정책최고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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