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선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에선 중동 지정학적 불안과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행렬이 진정되지 않는 한, 당분간 고환율 상황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1,550원대 선까지 위협한 원·달러 환율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4원 오른 1,539.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49.1원까지 치솟으면서 1,550원 선을 위협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5일(주간 거래 종가 기준) 이후 이날까지 14거래일 연속으로 1,500원대 이상을 유지 중이다. 환율은 중동 사태 이후 높은 변동성을 보여왔다. 3월 말 종가기준으로 1,530.1원까지 치솟았다가 이후로는 진정 흐름을 보여 한동안 1,400원 중반에서 등락했지만 지난달 중순 들어 다시 치솟았다. 5일에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0일(장중 1,561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환율 급등 배경을 놓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그중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 확대와 외국인 순매도세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최근 중동 내에선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휴전 합의가 무색하게 양측 간의 군사적인 충돌이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근엔 이란이 쿠웨이트를 공격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주식시장에선 외국인의 주식 매도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은 이날까지 20거래일 연속 순매도에 나서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외국인의 매도세 여파로 전장 대비 5.54% 하락한 8,160.59에 장을 마쳤다. 시장에선 외국인의 매도세를 놓고 차익 실현 수요와 리밸런싱(일시적 투자 비중 조정) 수요가 겹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또한 미국 국채 상승 흐름도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5일 리포트를 통해 고환율 원인에 대해 “물가 불안에 따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우려가 이어지고 있고,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가 확대됐으며, 엔화 약세 압력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도 더해지며, 대내외 환경이 원화에 더욱 더 비우호적으로 바뀐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중동 정세 불안·외국인 매도세 여파… 고환율에 물가 위험↑
그는 주요 원인들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먼저 미국의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란과 미국 간의 종전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내에선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상하고 있다. 이에 중앙은행인 연준이 긴축 정책을 고려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최 연구원은 “미국 소비자물가가 단기적으로 4%대에 진입할 수 있는 만큼, 연준이 한동안 금리 인하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미국과 이란의 대치 양상을 고려할 때 종전 협상이 당장 타결되기 어렵다는 점 역시, 긴축 통화 정책 우려를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고, 반도체 업종 중심의 리밸런싱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신호도 강하지 않다”며 “또한 수출업체의 네고 물량 출회만으로는 환율 상단을 꾸준하게 눌러주기 역부족인 모습이며, 원화 수급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선 중동 지정학적 불안과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진정되지 않는 한 당분간 고환율 상황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당국 측이 “과도한 쏠림에 대해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치솟은 환율을 진정시키는데 한계가 있는 모습이다.
이택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사위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정부의 구두개입 메시지가 시장에 잘 먹히지 않고 있다”며 “현재의 고환율 상황은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고환율 기조가 지속될 시엔 물가 상승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환율은 수입 원자재 비용 부담을 키워 생산자비용 물가를 높인다. 이는 소비자물가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과거 금융 위기 시절과 비교하면 기업들이 환율 충격을 잘 흡수하고 있다”면서도 “고환율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시점에선 시장의 불안 심리를 안정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외환당국의 긴축 정책이 환율 및 물가 불안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하반기 통화긴축 정책을 예고한 상황이다. 고환율과 고물가 우려를 반영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을 나설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시장에선 연내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한국과 미국 금리차 역전폭이 지금보다 축소될 전망이다. 현재 한미 간 금리차는 상단 기준으로 1.25%p(퍼센트포인트)를 유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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