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정수미 기자] 보험사들이 올해 1분기 수조원대 순이익을 냈지만, 정작 이익보다 더 많은 규모의 해약환급금준비금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 국제회계 기준(IFRS17) 도입 이후 회계상 이익은 늘었지만 법정준비금 부담이 빠르게 커지면서 배당 등 주주환원 여력은 오히려 제약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주요 보험사 9곳(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신한라이프·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의 올해 1분기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은 총 3조7452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이들 보험사의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3조5773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특히 생명보험업계의 부담이 두드러졌다. 생보사 4곳의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액은 2조3122억원으로 손보사 5곳(1조4330억원)보다 많았다. 1분기 말 기준 해약환급금준비금 잔액은 전체 36조4705억원에 달했다.
해약환급금준비금은 보험계약자가 계약을 중도 해지할 경우 지급해야 하는 환급금에 대비해 보험사가 별도로 적립하는 법정준비금이다. IFRS17 도입 이후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면서 보험부채가 해약환급금보다 적을 경우 그 차액만큼 준비금을 쌓아야 한다.
문제는 이 준비금이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산정 과정에서 차감된다는 점이다. 회계상 순이익이 늘어도 상당 부분이 준비금으로 묶이면 실제 배당 재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보험사들이 호실적에도 배당 확대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배경이다.

일부 보험사는 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준비금으로 적립했다. 교보생명은 1분기 순이익 3301억원을 냈지만 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6051억원을 쌓았다. 한화생명도 순이익 2478억원 대비 준비금 적립액이 6009억원에 달했고, 신한라이프 역시 순이익 1120억원보다 많은 2868억원을 적립했다.
준비금 잔액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삼성화재의 올해 3월 말 해약환급금준비금은 4조6651억원으로 지난해 말(4조1301억원)보다 13.0% 늘었다. 한화생명은 2023년 말 2조원대였던 준비금 잔액이 올해 1분기 7조1086억원까지 불어났다. 삼성생명 역시 지난해 4분기부터 준비금 적립 부담이 본격화되며 잔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IFRS17 체제 이후 치열해진 신계약 경쟁이 준비금 부담을 키운 배경으로 보고 있다. 보험사들은 미래 수익성을 나타내는 보험계약마진(CSM)을 확대하기 위해 단기납종신보험과 환급형 건강보험 판매를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이 과정에서 법인보험대리점(GA) 채널 중심의 설계사 수수료·시책 경쟁이 과열되면서 사업비 부담도 함께 커졌다는 분석이다.
주요 보험사들의 신계약 CSM은 늘고 있지만 준비금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삼성생명의 올해 1분기 신계약 CSM은 84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0% 증가했다. 한화생명도 6110억원으로 25.1% 늘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신계약 CSM의 약 97% 수준인 8194억원을, 한화생명은 98% 수준인 6009억원을 각각 해약환급금준비금으로 적립했다. 새 계약으로 확보한 미래이익 대부분이 준비금으로 묶이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상품 판매가 늘수록 초기 몇 년간 준비금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라고 보고 있다. 신계약 확대가 장래이익 증가로 이어지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준비금 부담이 배당가능이익을 잠식하는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지급여력비율(K-ICS) 170% 이상 보험사에 대해 해약환급금준비금 적립 비율을 80% 수준으로 완화하고 있다. 다만 자본비율 개선만으로는 준비금 부담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도한 사업비 경쟁과 GA 중심 판매 구조가 이어질 경우 준비금 부담 역시 계속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7월 시행되는 ‘1200%룰’에 쏠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GA 채널에서 지급되는 첫해 수수료를 월납보험료의 120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제를 확대 시행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번 제도가 과열된 선지급 수수료 경쟁을 완화하고 사업비 부담을 낮춰 장기적으로 해약환급금준비금 증가 속도를 둔화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정무 삼성생명 채널마케팅팀장은 콘퍼런스콜에서 “설계사 스카우트와 시책·프로모션 경쟁이 과도해지며 업계 판매비가 크게 늘었다”며 “7월부터 GA에 1200%룰이 적용되고 판매수수료 총량 규제가 강화되면 판매비 중심 물량 경쟁은 완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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