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투는 기록으로 남지만, 그날을 통과한 사람의 시간은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난 2002년 6월29일 서해 NLL을 지키던 참수리 357호정의 엔진은 멈췄다. 그러나 고(故) 한상국 상사를 떠나보낸 배우자 김한나 씨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다.
24년이 흘렀다. 하지만 큰 소리가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좋아하던 영화관과 뮤지컬 공연장도 멀어진지 오래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시간 속에서 잦아드는 듯 보였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우울, 반복되는 긴장은 일상 안에 다른 형태로 남았다.
김한나 씨는 그 시간을 "정신력으로 버티면 되는 줄 알았던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남편을 떠나보냈다는 사실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의 반응은 더 또렷해졌다. 뒤늦게 드러난 상처는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었다. 지연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문제였다.

그의 이야기는 한 유가족의 사적 고통에 머물지 않는다.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서해수호 사건을 겪은 생존 장병과 가족들이 오랫동안 마주해온 공백을 보여준다. 전사자의 이름은 국가 행사에서 반복해 호명됐지만,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은 제도 안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
◆"큰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김 씨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일상'이었다. 전투 이후의 상처는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지 않았다. 평범한 공간, 예상하지 못한 소리,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소리에 예민해져 20년 넘게 극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며 "뮤지컬과 영화를 좋아하던 평범한 일상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뒤로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전투의 상처는 전장에만 남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가족에게도, 생존 장병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상처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몸에 남은 흉터와 달리, 정신적 외상은 증명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김 씨는 "처음에는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왜 이러는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겪는 변화가 병리적 증상인지, 상실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고, 국가 차원의 안내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지연성 PTSD의 사각지대는 여기서 시작된다. 전투 직후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 증상은 제도 안에서 늦게 포착된다.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난 고통은 개인의 성격이나 적응 문제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김 씨는 "PTSD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전투의 후유증"이라고 못 박았다.
◆기억은 있었지만, 매뉴얼은 없었다
김 씨가 국가에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은 체계의 부재다. 그는 제2연평해전 이후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이 겪은 문제를 돌아보며 "당시 나라에 매뉴얼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없다는 말 뿐이었다"고 되짚었다.
이 말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부족을 뜻하지 않는다. 전투와 희생은 국가가 기억하지만, 그 이후의 정신적 후유증을 어떻게 확인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는 의미다.
김 씨는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서해수호 사건을 겪은 이들에게 PTSD 문제가 낯선 일이 아니라고 봤다. 전사자의 유가족뿐 아니라 생존 장병 역시 전투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이 겪는 불안과 우울, 공황, 회피 반응은 오랫동안 독립적인 정책 영역으로 다뤄지지 못했다.

그는 "군인 정신으로 견디라는 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군 조직 안에서 버티는 문화가 강할수록, 정신적 후유증은 더 늦게 드러날 수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약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작동한다. 결국 상처는 늦게 말해지고, 늦게 기록되고, 더 늦게 인정된다.
김 씨의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 전쟁①] 대한민국에서 'PTSD'는 왜 정책이 되지 못했나>에서 확인한 제도 공백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군인 PTSD 문제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문제다. 전투 이후 시간이 흘러 증상이 나타나도 이를 추적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부족하면, 피해자는 다시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설명해야 한다.
◆"배려가 불이익이 되어선 안 된다"
김 씨는 생존 장병들이 겪는 문제도 단순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군 내부에서 PTSD를 이유로 훈련에서 제외하는 방식이 오히려 또 다른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격이나 포격 소리로 인한 고통을 고려해 훈련에서 배려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훈련 미참가 이력이 인사와 진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상처를 보호한다는 조치가 결과적으로 군 안에서의 역할을 좁히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셈이다.
김 씨는 "업무에서 제외하는 것이 배려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경력에서 밀려나게 만들 수도 있다"며 "PTSD를 가진 군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열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군 안에서 계속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대목은 군인 PTSD 논의가 치료와 보상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PTSD를 가진 군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동시에 군 안팎에서 어떻게 계속 살아가고 일할 수 있게 할 것인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치료, 보직, 평가, 진급, 전역 이후 지원이 따로 움직이면 문제는 다시 개인에게 돌아간다.
김 씨는 미국 등 해외 사례와 비교하며 국내 대응 체계가 여전히 초기 단계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문 상담 인력과 전용 치료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며 PTSD를 개인의 상담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군 복무와 전투 경험에서 비롯된 국가 책임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6개월 시한 폐지, 끝이 아닌 출발점
제도 변화도 있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2025년 6월25일 대표발의한 '군인 재해보상법 일부개정안'은 2026년 4월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군 복무 중 교전이나 위험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PTSD가 퇴직 이후 뒤늦게 발현된 경우에도 장애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존에는 퇴직 후 6개월 이내에 심신장애 판정을 받은 경우에만 보상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지연성 PTSD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기준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전투와 위험 직무의 후유증이 반드시 6개월 안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개정안 통과 소식을 들은 뒤 "매주 국회에서 진행하던 지연성 PTSD 인정 촉구 시위를 멈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법이 통과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장에서 실제로 인정받고 치료와 보상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개정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뒤늦게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도 군 복무의 결과로 인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가 말하는 국가 책임은 보상금 지급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군 복무 중 겪은 정신적 외상이 늦게 나타나더라도, 국가가 이를 의심이 아닌 보호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가족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김 씨는 유가족을 향한 사회적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가족이라는 이름은 때로 또 다른 거리감을 만든다. 사람들은 위로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오히려 다가오지 못했고, 유가족은 동정과 침묵 사이에 놓였다.
그는 "사람들은 위로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히려 저를 피했다"며 "유가족이라고 특별한 사람처럼 보지 말고, 그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평범하게 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씨가 바라는 치유는 특별한 보상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전역 후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는 것, 유가족이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그는 "의무를 다한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PTSD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손실로 봐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투는 끝났지만, 그 이후의 삶은 계속된다. 누군가는 그날을 잊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그날을 꺼내야 한다. 김한나 씨의 인터뷰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국가는 희생을 기억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그 희생 이후의 시간까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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