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어느 날부터 아이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춘기라 그럴 수 있다고 넘기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행동은 점점 변해갔습니다. 아이의 몸에 멍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주변 아이들과 돈 문제로 얽히는 일도 생겼어요. 어느 순간부터 제게 대신 돈을 갚으라는 연락까지 오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성장통이 아닐 것 같다는 불안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무 일도 없다며 되려 화를 냈고 더는 묻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부모인 박지연(가명)씨는 19일 서울 서초구 BTF푸른나무재단에서 진행된 ‘2026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발표’ 현장에서 어렵게 입을 열어 자녀가 겪은 학교폭력 피해를 털어놨다. 박씨 자녀의 사례처럼, 학교 폭력 가운데에서도 신체적 폭력이 재확산되는 양상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BTF푸른나무재단이 지난해 1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8,4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학교폭력 유형 가운데 언어폭력이 23.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신체폭력 17.9% △사이버폭력 14.5%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체폭력 비율은 2023년 10.6%에서 2025년 17.9%로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해 201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초등학생 가운데 신체폭력을 학교폭력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55.3%에 그쳤다. 저연령 학생들이 폭력과 장난의 경계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신체적 방식으로 갈등을 표출하고 있을 가능성이 드러난 셈이다.
김석민 BTF푸른나무재단 과장은 “실제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같은 학급 또래로부터 멍이 들 정도로 꼬집히거나 다리에 걸려 넘어져 타박상이 생기는 등 지속적인 신체폭력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며 “피해 직후 학생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호소했지만, 가해학생은 ‘장난으로 그러다 생긴 것’으로 행동을 축소해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학년 학생 간 사안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폭력의 심각성이 신속하게 다뤄지지 못해 대응이 지연됐다”며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피해 학생은 전문적인 심리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대응 과정에서의 소진과 치료비용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함께 호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게임 기반 사이버폭력 피해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사이버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생 가운데 온라인게임 내 피해 비중은 2024년 16.2%에서 2025년 39.9%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온라인게임은 사이버 갈취‧강요(36.6%)와 사이버 성폭력(30.4%)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공간으로도 조사됐다.
특히 전체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 가운데 온‧오프라인 중복 피해를 겪었다는 비율은 40.2%였지만, 온라인게임 피해를 경험한 학생들의 중복 피해 경험률은 95.7%에 달했다. 이는 온라인게임에서 시작된 폭력이 게임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학교생활과 또래관계, SNS 등 현실 관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석민 과장은 “과거 사이버 폭력은 아이들이 많이 사용했던 SNS, 메신저, 단체 채팅방 중심으로 설명됐지만, 최근에는 실시간 음성 대화나 팀플레이가 결합된 온라인 게임 공간에서 갈등과 폭력이 나타난 양상이 두드러졌다”며 “온라인게임은 실시간 감정 표출이 쉽게 일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욕설, 패드립, 조롱, 성적 괴롭힘 등이 게임 중 감정 표현이나 장난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피해 해결의 핵심 요소로는 ‘가해학생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꼽혔다. 이번 조사에서 학교 폭력 피해가 해결된 이유 1위는 ‘가해학생에게 사과를 받아서’(51.8%)였으며, 반대로 피해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 역시 ‘가해학생에게 사과를 받지 못해서’(50.8%)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김미정 BTF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장은 “피해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이 좀 풀릴 것 같나’라고 물어보면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사과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다”며 “가해 학생 역시 ‘어떻게 하면 다시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물으면 처벌받고 법적으로 가기 전에 피해 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고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부모들이 자칫 사과하면 꼬투리가 잡힐까봐 오히려 만류하더라”라며 “학교폭력이 법적 공방으로서의 해결이 초점이 돼서는 안 되며, 초기에 정말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오갈 수 있는 교육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BTF푸른나무재단은 지방선거 교육감‧광역자치단체장에게 학교 안 다중 보호체계 구축‧확대를 비롯해 △AI기반 학교폭력 예방‧보호‧회복 통합플랫폼 구축 △교사가 안심하고 개입할 수 있는 학교폭력 초기대응 환경 정비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센터 및 가해학생 교정치료 특화센터 설립‧운영 △학교급별 특성을 반영한 참여형‧체험형 예방교육 확대 등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 정책으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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