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CCP②] 수만 년, 기후변화를 추적하는 ‘수사관’들

시사위크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IBS ICCP)’은  과거의 단서에서 미래 기후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연구기관이다. 마치 수사관들처럼 오랜 시간 축적되고 숨겨진 기후변화의 단서를 찾아낸다. / 사진=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기후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인지, 아니면 예상보다 좋아지게 될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과거’엔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지구 곳곳에 숨겨진 ‘단서’들을 통해서다.

수억, 수만 년 세월에 걸쳐 퇴적된 돌, 동굴의 석순, 얼어붙은 빙하는 지구의 과거 기후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기후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은 ‘고기후학(古氣候學)’이라 부른다.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IBS ICCP)’은 한국, 나아가 전 세계 핵심 고기후학 연구센터 중 하나다. 악셀 팀머만 단장을 중심으로 IBS 연구원들은 과거의 단서에서 미래 기후변화의 흐름을 읽어낸다. ‘시사위크’에서는 IBS ICCP를 방문, 우리가 마주할 기후변화의 미래 모습을 살펴봤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의 연구원들이 샘플들을 분석하는 모습. 마치 미국드라마에 등장하는 ‘범죄수사대’에서 증거물을 수집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 사진=박설민 기자
IBS 기후물리연구단의 연구원들이 샘플들을 분석하는 모습. 마치 미국드라마에 등장하는 ‘범죄수사대’에서 증거물을 수집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 사진=박설민 기자

◇ 기후변화를 추적하는 ‘수사관’들

4월 봄답지 않은 뙤약볕이 내리쬐던 21일, 부산대학교 기계관 10층의 한 연구 실험실에 방문했다. 실험실에선 과학자들이 분주하게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돌처럼 보이는 샘플을 들고 다니는 사람부터 현미경, 컴퓨터를 눈이 빠져라 쳐다보는 연구자들의 모습은 흡사 미국드라마에 등장하는 ‘범죄수사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실험실도 ‘수사’를 하는 곳이었다. 물론 범죄자를 찾는 것은 아니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IBS의 ‘기후물리연구단(ICCP)’ 연구소다. 이곳에서는 약 60명의 과학자들이 범인의 행적을 좇는 수사관들처럼 ‘기후변화’의 단서를 추적하고 있었다.

IBS 기후물리연구단은 지난 2017년 설립됐다. 과거, 현재, 미래의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지구 시스템의 요소들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기후변화를 유발하는지도 분석한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인간이 유발한 지구온난화가 미래 극한 기후와 인류의 삶에 미칠 영향을 예측한다.

과거 기후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는 동굴의 ‘석순(石筍, Stalagmite)’이다. 석순은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기후변화의 타임캡슐’과 같다. / 사진=박설민 기자
과거 기후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는 동굴의 ‘석순(石筍, Stalagmite)’이다. 석순은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기후변화의 타임캡슐’과 같다. / 사진=박설민 기자

이곳 연구자들은 미래 기후변화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여러 과거의 흔적을 추적·분석했다. 이때 연구단의 수장 악셀 팀머만(Axel Timmermann) 단장은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가 동굴의 ‘석순(石筍, Stalagmite)’이라고 말했다. 석순은 석회동굴 바닥에 죽순 모양으로 자라난 탄산칼슘기둥이다.

토양수에는 석회 성분이 녹아 있다. 이 물방울이 한 방울씩 아주 오랜 시간 떨어지면 석회 성분이 차곡차곡 쌓여 기둥 모양의 석순으로 자라난다. 이 과정에서 석순에는 토양수, 대기 속 수증기에 포함된 여러 물질도 함께 축적된다. 다시 말해 석순은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기후변화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팀머만 단장은 “동굴 석순의 길이, 성분을 분석함으로써 과거의 기후와 온도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며 “한국의 동굴들에서 발견한 석순을 통해서도 지난 40만 년간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과거의 기후변화도 현재처럼 폭우를 유발했는데 남아프리카 보츠나와의 박쥐 동굴의 석순들에는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며 “실제 연구단이 내달 현장을 찾아 추출하려고 하는 샘플에는 수만년 전 발생한 ‘엘니뇨’ 현상의 신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석순 샘플 중엔 한국의 동굴에서 채취한 것들도 있었다. 팀머만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샘플들은 충북 단양의 온달동굴과 강원도 동해시의 천곡 황금박쥐동굴에서 채집한 것들이다. / 사진=박설민 기자
석순 샘플 중엔 한국의 동굴에서 채취한 것들도 있었다. 팀머만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샘플들은 충북 단양의 온달동굴과 강원도 동해시의 천곡 황금박쥐동굴에서 채집한 것들이다. / 사진=박설민 기자

◇ 기후변화의 타임캡슐 ‘석순’

팀머만 단장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연구소 내부엔 수많은 석순 샘플들이 전시돼 있었다. 모두 최소 1만년에서 길게는 40만년 전 생성된 것들이었다. 마치 영화 속 FBI나 CSI의 과학수사대가 수집한 증거들을 분류해 놓은 모습처럼 보였다.

여러 샘플 중엔 한국의 동굴에서 채취한 것들도 있었다. 팀머만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샘플들은 충북 단양의 온달동굴과 강원도 동해시의 천곡 황금박쥐동굴에서 채집한 것들이다. 이 동굴 안에는 여러 박테리아들이 서식한다. 이로 인해 석순 속의 ‘유기분자(organic molecules)’ 길이가 변한다. 기온이 상승하면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낮아지면 길어진다. 이를 통해 과거 한반도의 40만년 간 온도변화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연구실 한 켠에서는 석순을 자르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었다. 가느다란 와이어가 석순의 가운데 부분을 갈랐다. 이 작업은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 팀머만 단장은 하나의 석순을 자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천천히 자르는 이유는 잘린 면이 매끄럽고 완전한 평면이어야 정확한 연구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석순 샘플을 와이어로 잘라내고 있는 모습. 하나의 석순을 자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이상이 걸린다. 잘린 면이 매끄럽고 완전한 평면이어야 정확한 연구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진=박설민 기자
석순 샘플을 와이어로 잘라내고 있는 모습. 하나의 석순을 자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3시간에서 길게는 5시간 이상이 걸린다. 잘린 면이 매끄럽고 완전한 평면이어야 정확한 연구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진=박설민 기자

절단 작업이 완료된 석순 샘플은 유리 창문처럼 매끄러웠다. 잘린 석순의 단면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이는 층들이 드러났다. 수만, 수십만 년에 걸쳐 층층이 쌓인 것들이었다. 이 빼곡한 층들은 사이사이에 그 시절의 대기와 토양수 성분을 품고 있었다.

이때 IBS의 오유나 기술원은 석순 샘플의 일부를 현미경처럼 보이는 기기로 관찰하고 있었다. 이 작업은 ‘파우더링(powdering)’이다. 석순의 특정 층을 아주 조금씩 긁거나 깎아서 미세한 가루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렇게 하면 석순의 연도별 층에서 산소·탄소 안정동위원소를 채취·분석할 수 있다.

팀머만 단장은 “연구단에서는 첨단기기들을 활용해 석순의 붕소부터 우라늄까지 모든 미량 원소의 농도를 측정한다”며 “예를 들어 희토류인 란타넘(La)의 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동굴 외부에서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IBS의 오유나 기술원이 석순 샘플의 ‘파우더링(powdering)’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 사진=박설민 기자
IBS의 오유나 기술원이 석순 샘플의 ‘파우더링(powdering)’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 사진=박설민 기자

◇ 슈퍼컴퓨터 활용한 ‘전지구적 시뮬레이션’ 연구도 진행

IBS 기후물리연구단 실험실에는 첨단장비들도 연구에 활용한다. 대표적으로는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가 있다. 2019년 IBS 리서치솔루션센터(RSC)에 도입된 모델이다. 알레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첫 글자로 알파벳에선 ‘A’다. 수학에서는 수학 용어로는 ‘무한(∞)’을 뜻한다. IBS의 첫 번째 슈퍼컴퓨터 알레프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과학연구의 상징이 될 것이란 의미다.

IBS에 따르면 알레프의 연산속도는 1.4377페타플롭스(PF)다. 1초에 약 1,000조번 이상의 데이터 연산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저장 용량은 약 8,740테라바이트(TB)로 2019년 구축 당시 국내 공공기관 보유 슈퍼컴퓨터 중 세 번째로 높은 성능이었다.

현재 알레프는 기후물리연구단에서 전지구 시스템 모형 ‘복합지구시스템모델(Community Earth System Model, CESM)’ 연구에 활용된다. 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다. 팀머만 단장 연구팀은 알레프와 CESM를 이용, 지난해 11월 극지 빙하 융해가 전 세계 해류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기도 했다.

IBS 기후물리연구단 실험실에는 첨단장비들도 연구에 활용한다. 대표적으로는 2019년 IBS 리서치솔루션센터(RSC)에 도입된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가 있다. 이를 활용해 기후물리연구단에서는 ‘복합지구시스템모델(Community Earth System Model, CESM)’ 등을 진행한다. / 사진=박설민 기자
IBS 기후물리연구단 실험실에는 첨단장비들도 연구에 활용한다. 대표적으로는 2019년 IBS 리서치솔루션센터(RSC)에 도입된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가 있다. 이를 활용해 기후물리연구단에서는 ‘복합지구시스템모델(Community Earth System Model, CESM)’ 등을 진행한다. / 사진=박설민 기자

지난해 7월에는 독일 ‘알프레드 베게너 연구소-헬름홀츠 극지해양연구센터(AWI)’ 연구팀과 함께 ‘9km ICCP-AWI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AWI의 지구시스템 모델 ‘AWI-CM3’과 IBS의 슈퍼컴퓨터 알레프,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구루(GURU)’를 활용해 전 지구의 해양 및 기후 기후변화 시뮬레이션을 한 것이다.

프로젝트 이름에서도 명시돼 있듯,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대기 9km, 해양 4~25km 해상도로 기후 시뮬레이션이 이뤄졌다. 지금까지 전지구 기후모델 시뮬레이션이 약 100~200km 수준으로 진행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더 세밀한 모델링이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매든-줄리안 진동(MJO)’, ‘북대서양 진동(NAO)’, ‘엘니뇨-남방진동(ENSO)’ 등 온실효과로 인한 기후변화 현상을 정확히 관측할 수 있다.

팀머만 단장은 “실제 현장에서 채취한 샘플과 이론적 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활용해 분석한다”며 “이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기후변화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 각 요소가 현재 기후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슈퍼컴퓨터 기반의 초정밀 기후 시뮬레이션을 이용, 인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지구 위에 시뮬레이션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며 “각각에 유전자 태그를 표시한 후 ‘밀란코비치 사이클(지구 공전 궤도와 자전축 변화로 인해 수만~십만 년 주기로 기후가 바뀌는 현상)’에 따라서 유전 분포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예측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lert

댓글 쓰기 제목 [IBS-CCP②] 수만 년, 기후변화를 추적하는 ‘수사관’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