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박단비] 주로 서문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공들인 서문 몇 줄만 읽어봐도, 이 책을 덮을지 말지가 결정 나기 때문이다. 성진 스님의 신간 <버티는 시간을 위하여>는 이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했다.
“파도치는 배 위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처럼, 인간관계는 늘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서문 속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졌다.
나는 꽤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이 관계를 즐겁고, 자연스럽게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약속은 끊이지 않았고, 이벤트가 계속되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꼭 그런 순간이 있다.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관계 속에서 묘한 삐꺼덕거림을 느낄 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몸과 마음이 멀어질 때.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다. 관계가 흔들릴수록 더 애썼고, 가끔은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전제를 바꿔버렸다. 성진 스님은 인간관계가 원래부터 흔들린다고, 파도 위에 올라탄 배처럼 애초에 안정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흔들림 자체를 문제로 볼 필요가 없다.
결국 나를 괴롭혔던 건 관계 자체가 아니라, ‘우리 관계는 흔들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었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관계가 존재할 리가 없는데! 흔들리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해결 방법 역시 서문에 있다. “서로 눈높이를 맞추고, 자존심 대신 자비심을 앞세울 때 그 흔들림은 평화로운 항해의 일부가 된다.” 흔들림은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위에서 어떻게 서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뿐 아니라,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고민과 불안에도 해당한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미묘한 거리감, 쉽게 풀리지 않는 감정, 이유 없이 커지는 불안까지. 흔들림을 ‘당장 해결할 문제’로만 여기지 말고,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버텨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배 위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책을 읽을수록 더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관계가 매끄러울 필요도 없고, 모든 상황이 명확하게 정리될 필요도 없다. 지금 느끼는 불안과 고민 역시 특별히 이상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다. <버티는 시간을 위하여> 속 성진 스님은 계속해 이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요즘 여러 가지를 잘 버텨내고 있다. 일도, 관계도, 나 자신도. 어느 하나 명확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지만, 열심히 흔들거리며 버티고 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흔들리되 쓰러지진 않으려고 한다. 흔들림에 맞춰 잘 서 있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완전히 안정된 상태보다, 어딘가 불안정한 상태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삶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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