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이라 불러도 좋다. 방망이를 휘두를 수만 있다면...잠실에서 다시 핀 손아섭의 '웃음꽃' [유진형의 현장 1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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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손아섭이 잠실에서 첫 홈경기를 준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마이데일리 = 유진형 기자]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조연이 되기도 하고, 마지막일 거 같던 오렌지색 유니폼이 한순간에 낯선 색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그 차가운 비즈니스 논리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간절함이 기회를 만났을 때다.

17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를 앞둔 두산 베어스의 훈련 시간에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고 2군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그러나 이제는 남색 유니폼이 제 옷처럼 익숙해진 '안타 머신' 손아섭(38)이었다.

두산 손아섭이 잠실에서 첫 홈경기를 준비하며 타격 훈련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손아섭이 누구인가. KBO 리그 통산 2,618안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2007년 롯데로 시작해 NC를 거쳐 한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방망이는 쉼 없이 돌았고 수많은 안타를 만들어냈다. 통산 타율 0.319. 그 정교함은 세월도 비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 좁았다.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가 설 곳은 타석이 아닌 벤치였고, 단 한 번의 대타 기회가 다였다. 누구보다 일찍 그라운드로 나와 성실하게 훈련하던 베테랑의 자존심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14일, 전격적인 트레이드 소식이 들려왔다. 좌완 유망주 이교훈과 현금 1억 5,000만 원. 손아섭이라는 이름 석 자에 붙기엔 어색한 숫자들일지 모르지만, 그는 간절했다. 서른여덟의 나이, 누군가는 그를 지는 해라 부르며 저니맨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적 후 첫 경기에서 보란 듯이 홈런포를 가동하며 무력시위를 한 손아섭은 기록보다 기회가 고팠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17일 잠실 그라운드에서의 표정은 한화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훈련 내내 코치와 후배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활짝 웃는 모습에서, 억눌려있던 야구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훈련 도중 배팅 케이지에 들어선 그의 눈빛은 이내 날카로워졌다. 공 하나하나에 온 힘을 실어 돌리는 특유의 풀스윙은 비록 유니폼 색은 바뀌었지만, 안타 하나를 위해 온몸을 내던지던 그 독기 어린 손아섭의 열정 그대로였다.

두산 손아섭이 잠실에서 첫 홈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지만, 손아섭의 미소는 성적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자신을 믿어주는 팀에서 마음껏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다는 행복. 두산이라는 새로운 둥지에서 다시 한번 날개를 편 '안타 머신'의 엔진은 이제 막 예열을 마쳤다. 잠실의 밤공기를 가르는 그의 타구음이 유독 경쾌하게 들리는 이유는 아마도 다시 뛰기 시작한 베테랑의 심장 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산에서 첫 홈팬들을 만나는 오늘 경기에서 손아섭은 선발에서 제외됐다. 두산 김원형 감독은 "상대 선발투수를 고려한 라인업이다. 타격 파트에서 우타자 위주로 라인업을 배치하면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을 제시해서 오늘과 같은 타선을 꾸렸다"라며 손아섭이 선발 제외된 이유를 설명했다.

[두산 손아섭이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 첫 홈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 잠실 = 유진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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