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의 경고①] '석유 의존 구조' 민낯이 가져온 나프타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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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릴 경우 생활용품부터 산업재까지 생산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플라스틱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릴 경우 생활용품부터 산업재까지 생산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플라스틱은 우리 삶에서 공기처럼 익숙한 존재가 된지 오래다. 배달 음식을 담는 용기부터 생수병, 택배 포장재, 자동차 부품, 의료기기까지 현대인의 일상은 플라스틱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편리함 뒤에 잘 드러나지 않는 전제가 하나 있다.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결국 ‘석유’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나프타 공급 차질 우려가 제기되자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국제유가 변동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 전반이 얼마나 석유에 의존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 플라스틱 정책… 잘 버리기보다 덜 만들기로 전환 필요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다. 이를 다시 분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같은 기초유분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각종 플라스틱 원재료가 생산된다. 쉽게 말해 플라스틱 산업의 출발점이자 ‘뿌리’에 해당하는 자원이다. 생활용품과 포장재, 산업용 자재는 물론 의료기기와 전자제품 상당수도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나프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플라스틱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특정 산업에만 쓰이는 자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원료 가격이 오르면 포장재 가격이 오르고 이는 식품과 생활용품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또 제조업 원가 부담은 소비재 가격 전반을 자극하게 된다. 결국 석유화학 업계의 원료 문제가 산업계 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비와 물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 원료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가 민생 부담으로 직결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나프타 공급 불안을 단순한 일시적 위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산업 구조가 가진 고질적 취약성이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한다. 국제 정세나 원유 시장 상황이 흔들릴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반복되는 나프타 공급 불안은 한국 산업이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생산 체계에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진=김두완 기자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반복되는 나프타 공급 불안은 한국 산업이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생산 체계에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사진=김두완 기자

한정희 그린피스 캠페인 전문위원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나프타 위기 속 드러난 한계,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보완 방향’ 토론회에서 “플라스틱 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환경 이슈가 아니라 자원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문제”라며 “외부 공급망 의존 구조가 유지되는 한 비슷한 충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을 둘러싼 위기를 이제는 쓰레기 문제가 아닌 국가 산업 시스템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플라스틱 산업은 최근 몇 년 사이 공급 과잉과 공급 불안을 반복해왔다. 지난해만 해도 중동산 저가 나프타가 대거 유입되며 국내 석유화학업계와 재활용업계는 수익성 악화를 우려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분위기는 정반대로 변했다. 이번에는 공급 차질 가능성이 제기되며 산업계가 원료 부족을 걱정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공급 과잉과 공급 부족 우려가 짧은 주기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구조적 불안정성”이라고 진단했다. 특정 자원과 특정 지역에 대한 공급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만큼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금의 공급 위기가 지나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공급 과잉과 공급 부족이 반복되는 불안정한 구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잘 버릴 것인가’보다 ‘얼마나 덜 만들 것인가’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활용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잘 버릴 것인가’보다 ‘얼마나 덜 만들 것인가’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활용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 그래픽=이주희 기자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플라스틱 정책 한계로도 이어졌다. 국내 탈플라스틱 정책이 여전히 ‘폐기 이후 처리’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분리배출 확대, 재활용률 제고, 폐기물 감축 같은 사후 관리 정책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생산 단계에서 플라스틱 총량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상현 녹색연합 정책팀 활동가는 “지금까지 국내 플라스틱 정책은 재활용 중심의 폐기물 정책에 머물러 있었다”며 “생산 단계 자체를 관리하거나 감축하기 위한 제도는 사실상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은 세계 상위권 플라스틱 생산국으로 꼽히지만, 생산량 감축 목표나 원재료 규제는 부재한 상태다.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고, 이후 잘 처리하는 데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스템으로는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재활용만 확대하는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얼마나 잘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덜 만들 것인가’로 정책 방향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플라스틱 문제를 폐기물 관리가 아닌 산업 구조 전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나프타 쇼크가 던진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공급망 위기는 단순히 국제 정세가 불안 뿐만 아니라 한국 산업이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생산 체계에 깊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신호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문제를 ‘환경’이나 ‘분리배출’ 차원에서만 접근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위기가 남긴 질문은 하나다. 지금처럼 계속 만들고, 계속 소비하는 구조를 유지한 채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공급망 위기가 아닌 ‘플라스틱 경제 전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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