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리포트] “골목 약국이 생명 잇는다···부산시, 맞춤형 자살예방 촘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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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율 부산시 시민건강국장이 17일 오후 2시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6 생명존중 원년, 자살예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선영) ⓒ포인트경제
조규율 부산시 시민건강국장이 17일 오후 2시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6 생명존중 원년, 자살예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선영) ⓒ포인트경제

[포인트경제] 지방선거와 개발 이슈에 묻혀 주목받지 못하지만 부산의 자살률은 매년 전국 평균을 웃돌고 고독사 사망자는 전국 3위, 은둔청년은 4년새 두 배로 늘었다. 본지가 2026년 부산시 자살예방대책을 집중 분석한 결과 16개 구·군이 각자의 지역 데이터로 맞춤형 안전망을 설계하고 전국 최초 약국 거점 자살예방·AI 위험감지·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 등 질적으로 다른 시도들을 본격 가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복합위기 앞에서 부산이 내놓은 해법, 정책의 무게중심이 시스템에서 사람 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자살률 높은 도시, 부산의 현실

부산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23년 29.1로 매년 전국 평균보다 1.7~3.2가량 높다. 2020년 잠시 낮아졌다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고독사는 2024년 367명으로 경기·서울에 이어 전국 3위다. 부산의 1인 가구 비중은 37.2%로 전국 평균(36.1%)을 웃돈다.

여기에 은둔형 외톨이 문제까지 겹친다. 부산시 2025년 은둔형 외톨이 지원 시행계획에 따르면 부산 은둔청년은 2020년 2만 2507명에서 2024년 4만 1903명으로 4년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청년인구 대비 5.2%가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 상태다. 고립·은둔의 장기화는 가족 해체, 경제활동인구 감소 등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며 자살 고위험군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다. 자살·고독사·고립이 하나의 복합위기로 연결되고 있다.

대응 속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일각에서는 자살률 상승에도 부산시가 2025년 자살예방센터 사업 예산을 전년 대비 30% 가까이 삭감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대책은 그 논란을 딛고 나온 방향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 기존 방식으로는 닿을 수 없다

자살 고위험군의 가장 큰 특징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도 마찬가지다. 고독사 최초 발견자 중 가족·지인 비중은 최근 5년간 줄어드는 반면 임대인·경비원 등 비가족 발견 비율은 2020년 28.4%에서 2024년 43.1%로 급증했다. 가족이 먼저 알아채는 시대가 끝났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영도구 중장년 남성 자살사망자는 2024년 여성 대비 3.6배였다. 강서구는 관내 중장년 남성 자살이 전체의 48%다. 연제구는 경제생활 문제가 자살 원인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스스로 센터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안전망이 먼저 그들 곁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 찾아가는 안전망, 일상을 파고들다

서구의 생명존중약국은 이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서구 전체 약국 57%인 57개소가 협약을 맺고 약사 2279명이 생명존중 교육을 받았다. 고위험군은 병원을 꺼리지만 단골 약국엔 간다. 그 일상의 접점을 안전망으로 바꾼 것이다. 전국 어느 지자체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영도구는 시장 상인을 생명지킴이로 만들었다. ‘당찬당신’ 사업으로 남항시장 반찬가게·식당 상인들과 협약을 맺고 비닐봉투·물티슈에 홍보물을 넣어 중장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강서구는 산업체 협약으로 직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 연(열)락’ 사업으로 16개 산업체 5234명을 스크리닝했고 2026년엔 18개 산업체로 확대한다. 고위험군이 먼저 찾아오길 기다리지 않는다. 안전망이 먼저 이동했다.

곽지철 부산시 시민건강국 팀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꼭 공공기관이 아니더라도 종교든 시민운동이든 다층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공동체가 다 같이 사업을 하자는 취지”라며 “부서 간 칸막이도 낮추고 유관기관들끼리도 함께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 데이터가 설계한 구·군별 처방

같은 자살예방이라도 구마다 타깃과 전략이 다르다. 수영구는 청장년층 자살 증가 추세에 주목해 카페·음식점에 정신건강 선별검사 QR코드를 배치하는 ‘마음시그널’로 청장년 3760건 선별, 고위험군 335명을 발굴했다. 동래구는 1인 가구 자살 생각 경험률 46.6%라는 자체 분석을 토대로 ‘일인단독가구 나온나’ 사업을 설계해 고위험군 75명을 등록했다.

북구는 취약계층 밀집 아파트 990세대를 직접 찾아가 전수조사로 고위험군 127명을 발굴했다. 사상구는 4년간 노인 자살사망 비율이 가장 높다는 분석을 토대로 노인 특화사업을 집중 운영해 선별검사 2320명, 고위험군 187명을 찾아냈다. 지역 취약 지점을 데이터로 짚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설계한 결과다.

◆ 시스템도 달라진다, AI가 온다

AI 기반 자살예방 위험감지 시스템이 신규 도입된다. 전화상담 내용을 실시간 분석해 위험도를 측정하고 SNS·커뮤니티의 자살유발 정보를 24시간 모니터링한다. 사람이 놓치는 신호를 기술이 보완하는 구조다.

자살 사고 발생 후 24시간 내 전담인력이 현장에 출동해 장기 심리회복까지 책임지는 자살유족 원스톱 서비스도 올해 7월 시행된다. 자살시도자 치료비 소득기준도 2026년부터 완전히 폐지된다. 소득과 무관하게 누구든 1인당 100만원 한도의 치료비를 지원받는다. 위기 앞에서 경제적 조건을 따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방향은 맞다, 지속가능성이 관건

안전망의 설계 철학이 달라졌다. 수요자가 시스템을 찾아오길 기다리던 방식에서 시스템이 수요자의 일상으로 먼저 들어가는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은 과제다. 민관협력이 담당자의 헌신에 기대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다음 예산 시즌에 또 후퇴할 수 있다. 좋은 모델이 일부 구에 그치지 않으려면 시 차원의 일관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곽지철 팀장은 “자살예방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전문가를 더 양성해 밀착 지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계속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규율 부산시 시민건강국장은 “자살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과제”라며 “통합 대응체계를 통해 시민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데이터로 문제를 진단하고 일상으로 안전망을 확장하는 이 접근이 쌓이면 부산의 자살률 곡선은 달라질 수 있다. 시장 약사와 반찬가게 상인이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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