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어 주겠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
시사위크=김두완 기자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둘러싼 박상용 검사 녹취록이 논란이다. 박상용 검사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 변호인인 서민석 변호사 간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주범 자백’과 보석·영장 여부가 함께 거론된 발언을 두고 진술 유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대목만 놓고 보면 플리바게닝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지만, 우리 형사사법 체계에는 이러한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발언의 성격과 맥락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3년 만에 공개된 녹취… 진실 공방의 시작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 변호인이었던 서민석 변호사가 지난 2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박상용 검사와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공개된 녹취에는 △“법정까지 유지될 진술이 필요하다” △“이재명 씨가 주범이 되고 이 사람이 종범이 되는 식의 자백이 있어야 한다” △“보석이나 추가 영장 여부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특정 결론을 전제로 진술을 유도한 것 아니냐며 ‘조작기소’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국민의힘과 박상용 검사 측은 “변호인 측 요구에 대한 설명 과정이 일부만 공개된 것”이라며 ‘짜깁기’라고 반박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거액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해당 자금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등을 대납하기 위한 것이란 의혹을 둘러싸고 수사가 진행된 사건이다. 검찰은 이화영 전 부지사가 이를 주도하거나 관여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또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도 사건 관여 여부를 두고 수사를 이어왔다. 반면 이화영 전 부지사 측은 진술 번복 등을 거치며 검찰 수사 과정의 적절성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녹취는 당시 검찰과 변호인 간 접촉 과정에서 오간 대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검찰이 이화영 전 부지사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규명하고, 이재명 대표의 관여 여부까지 수사를 확대하던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특히 녹취에는 ‘법정까지 유지될 진술’, ‘주범·종범의 자백’과 함께 보석·영장 여부까지 언급되면서 플리바게닝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플리바게닝은 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수사에 협조(주요 증언 등)하는 대가로 검사가 더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줄여주는 일종의 '유죄협상제도'를 뜻한다. 따라서 해당 녹취는 형량 거래를 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 형사사법 체계에는 이러한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해당 발언이 단순한 법리적 설명인지 아니면 피고인의 진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전략인지에 대해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통화는 2023년 6월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공개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 국회 국정조사를 앞둔 시점에서 이뤄졌다. 서민석 변호사는 녹취 파일을 뒤늦게 확인해 공개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개 시점이 정치적 판단과 무관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던 녹취 파일이 국정조사 국면과 맞물려 공개되면서, 녹취 내용 자체뿐 아니라 공개 경위와 의도를 둘러싼 논쟁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 박상용과 서민석의 통화 공방… 5가지 쟁점
녹취 공방의 첫 번째 쟁점은 발언의 성격이다. ‘조작기소’를 주장하는 측은 “주범이 되는 자백이 있어야 한다”는 표현 자체가 이미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진술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봤다. 특히 “법정까지 유지될 진술이 필요하다”는 대목은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라, 공판에서 유지 가능한 형태의 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박상용 검사 측은 해당 발언이 변호인 측 요구에 대한 설명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종범 처벌을 전제로 할 경우 법리적으로 어떤 진술이 필요한지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동일한 발언을 두고 ‘설명’과 ‘유도’라는 상반된 해석으로 맞서고 있다.
두 번째는 처우 언급의 의미다. 녹취에는 보석, 공익제보자 인정, 추가 영장 여부 등 피의자 처우와 관련된 요소가 함께 등장한다. 이를 두고 ‘조작기소’를 주장하는 측은 진술 내용에 따라 처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반면 박 검사 측은 변호인 측이 먼저 제안한 조건을 전제로 가능 여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언급이라고 했다. 다만 설명하는 맥락이라고 해도 수사 검사와 변호인 간 대화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함께 거론되는 것이 적절했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남는다. 특히 이런 경우라면 검찰은 관련 제안이나 접촉 경위를 수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해당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됐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된다
세 번째는 녹취 공개 범위와 맥락이다. 현재 공개된 것은 통화의 일부 발언이다. 전체 대화의 흐름이나 상대방 발언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조작기소’를 주장하는 측은 발언 자체로 충분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박 검사 측은 앞뒤 맥락이 빠진 채 일부만 공개돼 의미가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전체 녹취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문장만으로 의도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 번째는 실제 수사와 재판에 미친 영향이다. 녹취에 담긴 발언이 부적절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그것이 실제 진술 변화나 수사 방향, 공소 유지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조작기소’ 주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발언과 결과 사이의 개연성이 입증돼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다섯 번째는 박상용 검사 해명의 설득력이다. 박 검사 측은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실제로 이뤄진 것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개된 발언은 단순한 거절이라기보다 조건과 가능성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읽힐 수 있어, 해명이 발언의 수위와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안 된다’는 취지였다면 보다 명확한 선 긋기가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논란은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결론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 공개된 녹취는 일부에 불과하고, 해명 역시 그에 대응하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공방만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쪼개진 녹취가 아니라 전체 맥락을 확인할 수 있는 원본 공개, 그리고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접촉과 판단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 여부다.
수사 과정이 정당했다면 기록으로 설명될 것이고, 문제가 있었다면 역시 기록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확인의 문제다. 녹취든, 기록이든 공개되면 공방은 어렵지 않게 끝날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시사위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